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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법륜 스님의 '건국절' 이야기

by 김민식pd 2016. 9. 6.

'건국절'을 집요하게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어요. 저게 뭐 그리 중요한 문제인가? 그러다 법륜 스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8월15일이 대한민국 건국절이냐,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이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것을 상해임시정부라고 하면 대한민국이 출발할 때의 목표가 ‘나라의 독립’이 됩니다. 이 때는 나라의 독립에 기여한 사람은 모두 독립운동 유공자가 되고, 독립에 기여하지 않고 친일 행위를 한 사람들은 모두 민족의 배신자에 속하게 됩니다. 현재 공식적으로는 1945년 8월15일은 광복절이고, 1948년 8월15일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입니다. 

 

그런데 8월15일을 대한민국 건국절로 정해버리게 되면, 대한민국이 1948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되기 때문에 독립이 국가의 최대 목표가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독립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일이 되니까요. 그래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도 건국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된 사람들이 되고, 친일을 한 사람들도 건국에 도움이 된 사람들이 됩니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되고 나서부터 대통령도 맡고, 장관도 맡고, 군대도 만들고, 경찰도 만들면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왔으니까 이 사람들은 친일 행적에 관계없이 다 건국유공자가 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건국유공자가 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일 세력들입니다. 왜 그럴까요? 해방 직후에 정부를 새로 수립해서 학교를 운영하려니까 일제 강점기 때 선생 했던 사람을 데려와서 선생을 시켜야 할 것 아니겠어요? 법원을 운영하려고 해도 아무나 데려와서 판검사를 시킬 수가 없으니까 일제 강점기 때 판검사 했던 사람들을 시켜야 할 것 아니겠어요? 경찰서를 만들었는데 서장이나 간부들도 일제 강점기 때 경찰했던 경력이 있던 사람을 데려와야 할 것 아니겠어요? 군대를 만들어도 일본 군대에 있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을 장교로 시켜야 할 것 아니겠어요? 행정 관료를 시키더라도 일제 강점기 때 면서기라도 한 번 해본 사람을 시켜야 할 것 아니겠어요?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렇게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하니까 현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러다보니까 친일 청산이 제대로 안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사람들을 다 빼버리고는 국가를 운영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이런 사람들이 필요는 했어요. 그러나 8월15일을 건국절로 만들어버리면 이런 사람들이 다 건국유공자가 되어버리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과거 일제 강점기 때 친일했던 내용을 모두 없앨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나와 있는 상해임시정부의 법통과 3.1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한다는 문구도 다 빼야 되겠죠. 그런데도 사람들은 건국절과 정부수립일의 이 엄청난 차이를 잘 모르니까 그냥 넘어가고 있는 건데요. 사실 이것은 대한민국의 국체를 뒤흔드는 어마어마한 사건에 해당하는 겁니다."

본문보기

http://www.jungto.org/buddhist/budd8.html?sm=v&b_no=74889&page=1&p_no=74

 

가끔 뉴스를 보면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과연 역사가 진보하는 게 맞을까요? 창비에서 나온 '공부의 시대' 중 마지막으로 '내 인생의 역사 공부'를 읽었습니다. 80년을 살아오신 역사학자 강만길 선생님은 '역사는 이상의 현실화 과정이다'라며, 희망을 말씀하십니다.

 

'뒤돌아보면 지난 20세기까지의 세계사는 '선교사의 피 한방울 흐르는 곳에 제국의 땅 한치 늘어난다' 할 만큼 종교마저 침략에 이용된 냉혹하고도 파렴치한 시대였습니다. 피로써 한치 땅을 다투고 추악한 제국주의 세계대전을 두번이나 치렀으며, 그러고도 또 냉혹한 동서 냉전을 겪은 20세기는 전세계가 침략과 전쟁과 대립의 광란에 빠졌던 불행하고도 불행했던 세기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20세기가 미처 다 가기 전에 천년만년 갈 것처럼 얼어붙었던 냉전체제가 거짓말같이 하루아침에 해소되었습니다. (중략)

역사가 변하려면 이렇게도 쉽게 변하는 거라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역사학을 전공한 '행복감' 같은 것을 느끼게도 됩니다.'

2016-203 내 인생의 역사 공부 (강만길 / 창비)

(위의 책 107쪽)

팔순의 노학자가 말하는 '행복감'을 맛보려면, 저는 아직도 멀은 것 같아요. 공부가 필요합니다. 역사가 진보한다는 믿음에 대한 공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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