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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

유학 대신 배낭 여행

by 김민식pd 2016. 7. 17.

2016-168 공부논쟁 (김대식 김두식 / 창비)

 

괴짜 물리학자와 삐딱한 법학자 형제의 '공부 논쟁'

 

공부 정말 잘 하는 두 형제가 한국 사회의 교육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형은 서울대 물리학과, 버클리대 물리학 박사, AT & T 연구소를 거쳐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가 되고, 동생은 고려대 법대를 다니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 변호사로 일하다 미국 유학 갔다 와서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있지요. 이렇게 공부를 많이하신 두 분은 이제 유학은 그만 보내자고 말씀하십니다.  

 

'한국의 발전단계에서 보면 대량유학은 옛날에 접었어야 해요. 전체 공부하는 학생 중 5퍼센트 미만이 유학을 간다면 문제될 게 없겠지만, 우리나라 정도의 국력을 가지고 아직도 우르르 미국으로 몰려가는 건 이상한 일이죠. 세계에서 거의 유일할 거예요. (중략)

지난 30년간 우리가 얼마나 빨리 발전했는지 몰라요. 우리 세대만 해도 유학 가야 할 필요가 조금은 남아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라고 봐요. 그래서 그런 주장을 하는 거죠. 배워 와야 할 시기가 지난 이후에도 유학을 계속하는 건 종속이거든요.'

(위의 책 116쪽)

 

저 역시 유학은 권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유학을 다녀오면 그래도 영어라도 늘지 않느냐 하시는데요. 영어는 국내에서 혼자 공부해도 충분히 잘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시대는 남의 것을 배우는 것보다, 내 것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일본의 경우를 보아도, 유학을 통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시기가 있고, 다음에는 내부에서 자신들만의 것을 만드는 시기가 있어요.

 

두식: 공부 좀 한다고 소문이 나면 당연히 유학을 생각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은 해외유학파가 별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죠?

 

대식: 일본은 희한하게도 20세기 초반이 되면 이미 유학파의 자취를 찾을 수 없어요. (중략) 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이 전화에 휩싸이면서 사실상 유럽 유학할 길이 막혔고, 2차 세계대전 때는 아예 미국하고 전쟁을 했기 때문에 미국에서 뭘 배울 기회도 많지 않았죠. 유학을 가는 대신에 도쿠가와 시대부터 자리 잡은 전통적인 장인 씨스템이 작동해요. 그 기초 위에서 15명이 노벨상을 탄 거예요. 15명 중에서 13명은 일본에서 박사를 딴 사람들이고, 그것도 대부분 지방 국립대 출신이에요. 첫 노벨상은 물리학 분야로 교토대에서 받았지만, 교토뿐만 아니라 나고야 등 다양한 학교 출신들이 뒤를 이었죠. 2008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는 노벨상을 탈 때까지 외국을 다녀온 적이 없어서 아예 여권이 없었잖아요.

두식: 일본에서 노벨상이 그렇게 많이 나온 이유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대식: 일본에서 노벨상이 많이 나온 것은 인브리딩 inbreeding, 즉 동종교배 덕분입니다. 학문의 세계에서 다른 종이 생기려면 다윈주의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섬에서 고립된 상태에서 인브리딩이 일어날 필요가 있어요. 남과 다른 독특한 애들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이 봤을 때 일본에서 만들어진 학자들은 뭔가 달라요. 내용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고 씨스템도 달라요.‘

(위의 책 128~130쪽 요약 정리)

 

과학을 잘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사람에게 몰아주기보다 여러 사람에게 나눠주는  기회균등이 중요하답니다. 과학의 발견에는 운의 요소가 많이 작용하기에 한 사람이 100억을 갖는 것보다, 100명이 1억 씩 갖고 각자의 연구를 해서 그 중 운 좋은 사람이 뭔가를 터트리면 그걸로 전체 학계가 발전하는 구조.

전 이게 문화 콘텐츠 분야에도 적용되는 말씀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드라마나 어떤 콘텐츠가 뜰 지 아무도 몰라요. 다양성을 가진 창작자들이 각자 꽂힌 아이템을 만드는 거죠. 기회 균등이 창의력의 발전을 가져옵니다. 창작자는 업계 1위로 잘 나가는 1인을 부러워할 게 아니라, 나 역시 재미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자긍심을 키우는 게 중요합니다.  

 

 

지난 주말 저는 신촌 물총 축제에 다녀왔습니다. 신촌역에서 연세대까지 이르는 길을 막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물총 들고 나와 놀더군요. 남들 노는 거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어요. 이 나이에 끼기는 좀 민망하여 어정쩡하게 구경하는데, 누가 제게 물총을 쐈어요. 순간 가서 얼싸안고 고맙다고 하고 싶었어요. 지나가는 아저씨가 아니라, 같은 축제의 일원으로 봐줘서 정말 고마워요. ^^ 

 

신촌 물총 축제를 보니 몇 년 전 태국 방콕 여행 갔다가 본 송크란 축제가 떠올랐어요. 송크란 축제도 정말 즐거웠거든요. 그때 저는 툭툭이를 한 대 대여해서 온 가족이서 방콕의 골목을 누비며 사람들에게 물총을 쏘고 물세례를 받았지요. 낯선 이방인들에게 아낌없이 물을 뿌려주며 웃는 모습에서, '아, 이런 게 진짜 축제지.' 했어요. 언젠가 태국 여행을 간다면 송크란 축제 기간에 한번 들러보세요.

 

이제 유학의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에 가서 크게 배워올 게 별로 없어요. 오히려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서 배워가야지요. '어떻게 한국 사람들은 저렇게 열심히 일하고, 저렇게 열심히 공부할까?' 실상을 들여다보면 슬프지요. 노동 시간은 세계에서 가장 긴데, 일에서 얻는 만족도는 바닥권. 중고생들의 학습 시간 역시 세계 최장인데, 아이들의 행복 지수는 역시 최하.

 

이제 우리는 '어떻게 일하고 공부할 것인가' 보다 '어떻게 놀아야 잘 노는가?' '어떻게 인생을 즐길 것인가'를 외국에서 배워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산티아고를 걷고 와서 올레 길을 만들고, 해외 배낭 여행을 다녀온 이들이 게스트하우스를 만들며 여행의 즐거움을 한국에 이식하고 있어요. 저는 앞으로 유학 대신 배낭 여행을 다녀야한다고 믿습니다.

'어떻게 인생을 즐길 것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공부는 거기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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