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여행을 꿈꾸며 삽니다. 여행을 하거나, 여행기를 읽거나, 둘 다 좋아합니다. '쉬 트래블스' '화내지 않고 핀란드까지' '용을 찾아서' 등의 여행기를 쓴 박정석 작가의 근황이 문득 궁금해져서 그분의 책을 찾아봤어요. 여행에서 돌아온 박정석 님은 요즘 동해 바닷가에서 집을 짓고 살고 있네요.

어느날 문득 찾아간 동해 작은 마을에서 집을 지으며 생긴 일들,

2016-189 하우스 (박정석 / 웅진씽크빅)

그 바닷가 집에서 개와 닭을 키우며 사는 생긴 일들, 

2016-190 바닷가의 모든 날들 (박정석 / 중앙북스)

세계 방방곡곡을 다닌 후, 박정석 작가는 우리나라만큼 아름다운 곳도 없고, 이곳만큼 살기 좋은 곳도 없다고 말합니다. 책 두 권을 이어 읽었더니 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대천으로 떠났습니다.

 

올라올 때는 오랜만에 무궁화 열차를 탔는데요, 아, 무궁화가 이렇게 좋은 기차인 줄 미처 몰랐네요. 3명씩 한 줄에 서로 마주 보고 앉던 옛날의 무궁화가 아니에요. 좌석도 세련되고, 열차도 깔끔하고, 연착도 없고. 아주 좋아졌어요.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그 느린 속도였어요.

드라마 연출을 하면 항상 시간에 쫓깁니다. 밤샘 촬영을 극도로 싫어하는 터라 시간관리를 최우선 과제로 삼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내 몸 안의 시계는 계속 바쁘게 째깍거리고 있는지 몰라요. 하루 책 한권, 하루 글 한편. 다람쥐 쳇바퀴 돌듯 나를 굴리지요...

여름이면 KTX 타고 해운대 앞에 사시는 어머니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KTX를 타고 부산에 가면 주위 풍광이 보이지 않아요. 서울에서 부산까지 전국이 휘리릭 스쳐 지나가갑니다. 대천에서 용산으로 오는 장항선 무궁화 열차를 탔더니, 낯선 이름의 기차역에 자주 서더군요. 정차하기위해 열차가 속도를 늦출 때마다 창밖 풍경을 지그시 감상할 수 있었어요. '아, 여기 이런 마을이 있구나.' 창밖 논과 밭의 풍광을 보면서 결심했어요.

'언젠가는 무궁화 열차를 타고 전국의 이름없는 마을을 찾아다녀야지. 서울 대전 대구 부산, 대도시만 서는 고속열차여, 안녕. 난 느린 삶으로 환승할거야.'

박정석 작가는 집을 짓는 기간 동안, 바닷가 펜션이나 모텔에서 월방을 얻어 생활합니다. 시골 할머니가 살던 집을 월세 15만원에 얻어 살기도 하고요. 저는 집을 짓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럴 돈도, 욕심도 없어요.) 애완동물을 키울 마당 넓은 집도 필요없고요. 그냥 밤에 책 한 권 펼 수 있는 작은 방 하나면 만족입니다. 이번에 대천 해수욕장에 가보니 펜션이 정말 많더군요. 그 많은 펜션이 비수기에는 다들 텅텅 비겠지요?

 

비수기 바닷가를 찾아 월방을 얻어 한적한 해변에서 책을 읽으며 노후를 보내고 싶습니다. 책에 두리틀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동물을 워낙 좋아해서 동물과 말하는 두리틀 박사 캐릭터에서 별명을 따왔대요. 저도 두리틀이 되어 살 겁니다. 다만 동물들을 돌보는 두리틀이 아니라, '아주 적게 일하는' Do little 두 리틀.

 

바닷가 한적한 펜션에서 방을 얻어, 적게 일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게 내가 꿈꾸는 노년이에요.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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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테어 2016.08.21 1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

  2. 첨밀밀88 2016.08.21 22: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리틀은 어떤 외국 어린이 드라마 주인공 이름 이었는데요. Do little 이러니까 이런의미였나 봅니다. ㅋㅋㅋ
    왠지 두리틀 엄청 끌리는 이름인데요.

    제가 초밥왕 되려고 어디라도 들어가서 경력을 쌓고자 급하게 알아본다는게. 어떤 횟집을 알게 됐습니다. 나이가 이렇게 많은데 (1970년생 만46세) 써준다고 하길래 혹했었거든요. 근데 조건이 대단합니다.

    Give 오후4시 ~새벽2시 주5일 근무(무급)
    Take 회뜨는법 물고기 고르는법 물관리법 전수
    돈을 안받고 일을 해드리는 대신에 노하우를 배우는 것이지요.

    저는 "그래 이게 말로만 듣던 도제식 교육인가부다. 몇년 후면 나도 도사가 되는거네" 라고 생각하고 집사람한테 이렇게 할꺼라고 얘기했더니, 말도 안된다며 서두르지 말고 두리틀하라네요.

    이생각 저생각 잡생각이라도 좀 하면서 시간을 좀 보내야 할것 같습니다. ㅋㅋ

    • 김민식pd 2016.08.24 06: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마님이 참 현명하십니다.
      서두르지 말라는 말씀...

      저는 무급이라는 대목이 걸립니다.
      10시간 가까이 사람이 일을 하는데
      그 일에 대한 대가를 한 푼도 주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런 분에게 일을 배우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떤 일이든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배우는 기간이라 하더라도요.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를 한 건지도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이런 식의 조건이 문화산업이든 어디든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도 강요되는 분위기던데 참 씁쓸하네요...
      일을 하기 위해 무급으로 일을 배워야한다는 사회 분위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