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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by 김민식pd 2016. 10. 18.

('샘터'에 '청춘 멘토링'이라는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군복무 중인 장병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인데요. 그동안 블로그에서 해온 이야기를 다듬어 칼럼을 씁니다. 11월호에 실은 글입니다.)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친 후,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무엇일까? 물건보다 오래 가는 건 추억이다. 물건을 소비하는 것보다 경험을 소비하는 것이 남는 장사다. 20대에 즐길 수 있는 최고의 경험 세 가지는 독서, 연애, 그리고 여행이다. 셋 다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모험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책을 펼치면 끝까지 읽기 전에는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모른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새로운 우주를 만나는 일이다. 여행이란 한 번도 가지 못한 곳을 찾아가는 일이다. 셋 중에서 군 제대 후라면, 나는 여행을 권하고 싶다. 책은 나중에도 읽을 수 있고, 연애는 혼자 마음먹는다고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여행은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배낭여행을 가면 독서와 연애는 덤으로 따라온다. 책을 읽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 혼자 여행하는 순간이다. 기차를 기다리는 역 대합실, TV도 없는 배낭족 숙소, 혹은 한국 사람이 하나도 없는 바닷가 해변, 이런 장소들이 다 책 읽기에 최고의 공간이다. 연애는 어떤가? 인도 배낭여행 중 만난 어느 여대생은 이런 말을 하더라.

배낭여행이 좋은 건요, 하루하루가 소개팅의 연속이기 때문이죠. 숙소나 기차, 유명 관광지에 가면 한국 배낭족을 만나게 되요. 또래의 여행자끼리 만나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같이 구경도 다니죠. 그러다 마음이 맞으면 계속 같이 다니고, 아니면 다음 장소로 갈 때 자연스럽게 헤어지면 됩니다. 이성 친구를 만나는데 있어 이렇게 좋은 기회도 없어요.”

여행을 가서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또 어떠랴. 여행을 떠나 만나야 할 사람은 바로 자신이다. 세상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을 아는 일이다. 군 생활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렸다면 이제 낯선 타지로 떠나 그곳에서 를 찾아보자. 명령과 규칙에 따라 하루하루를 살았으니, 이제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사는 거다. 여행을 가면,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싶을 때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을 때 먹는다. 걷고 싶을 때 걷고, 자고 싶을 때 잔다. 인생에 이런 호사가 없다. 장기 배낭여행을 가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 바로 군 제대 후 인생 전환기이다. 돈이 없다는 게 문제인데, 그 점에 대해서는 힌트를 하나 드리겠다.

몇 년 전 초등학생인 큰 딸과 히말라야 트레킹을 갔다가 혼자 배낭여행을 온 어느 여대생을 만났다. 그 여학생이 처음 떠난 해외여행인데, 너무 좋아서 돌아가면 돈을 벌어 부모님도 여행을 보내드리고 싶다고 말하더라. 참 기특한 생각인데, 나는 좀 삐딱한 어른인지라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 연세가 올해 어떻게 되나요? 예순 살? 죄송하지만 그 연세에 배낭여행 다녀오신다고 남은 인생이 바뀌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십대인 학생이 다음 방학에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온다면, 그 경험은 남은 인생을 바꿔줄 겁니다. 혼자서 한 달간 여행을 다녀보면 인생에 자신감이 생기고요. 무엇보다 평생 가는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지요. 살다가 힘들 때면 그 추억이 힘이 될 거예요. 부모님 여행 보내드리는 일은 자리 잡은 다음에 해도 괜찮아요. 그러니 지금은 부모님께 돈을 타서라도 유럽 배낭 여행을 다녀오세요.

나는 지금도 매년 추석이면 아버지를 모시고 해외여행을 떠난다. 차례를 지내지 않느냐고 묻는 이도 있지만, 나는 돌아가신 조상님보다 살아계신 부모님을 더 잘 모시고 싶다. 조상님에 대한 감사는 자손이 하루하루 즐겁고 행복한 날을 보내는데서 온다고 생각한다. 여러분 중에 제대하면 열심히 일을 해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다는 기특한 생각을 가진 이도 많을 것이다. 제대하자마자 바로 일이나 공부를 시작하기보다는, 먼저 즐거운 여행을 권한다.

2년 가까이 군 생활을 하면서, 나라와 가족을 지켜온 여러분이다. 나라에서 퇴직금을 거하게 챙겨주면 좋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부모님께 돈을 타서 한 달간 배낭여행을 다녀오시기 바란다. 그것이 국방의 의무를 다한 아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댓글9

  • 샘터 읽어보는 군인들은 복 있네요. 멋진 조언이세요.. 짝짝짝!
    답글

  • 첨밀밀88 2016.10.18 08:19 신고

    제사 군 제대했을때 (저는 방위병이라 제대가 아니라 소집해제라고 하지만 ㅋㅋ) 이 글을 봤다면 진짜로 베낭여행을 갔을것 같네요. 멋진글 같습니다.
    이 글을 읽다보니 만46세인 저도 베낭여행을 해보고싶네요. 아직은 두다리 멀쩡하니까 ㅋㅋ.
    답글

  • 섭섭이 2016.10.18 08:45

    안녕하세요.
    샘터라는 잡지는 오늘 처음 알게 되었네요. 멋진 글입니다.. 여행은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같이 가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선물이죠 ^^

    "이십대인 학생이 다음 방학에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온다면, 그 경험은 남은 인생을 바꿔줄 겁니다."

    이 말은 정말 100배 공감합니다. 전 지금도 여행가면 가슴이 벅차고 신나는데, 더 젊을때 간다면 그 경험은 두고두고 오래 남을거 같아요.. 인생을 바꿀 수도 있고요. 군 제대할 후배들에게 이글은 필독하라고 알려줘야겠어요.




    답글

  • imioi 2016.10.18 08:45 신고

    취업이 되었을 때, 연수원 들어가기 전까지 한달반 남짓이 남았어요. 동아리 선배가 당시 제게는 꽤 큰 돈을 빌려주며 "월급 받기 시작하면 갚아! 일단 입사 전에 이 돈으로 여행해!"라고 말했어요.

    엉겁결에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아일랜드를 한달 조금 넘게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시차적응도 못한채로 연수원으로 달려갔어요.

    그로부터 십수년이 지난 지금, 그 선배의 막무가내 여행론(?)이 얼마나 고마운지. 김PD님 글보며 다시 생각났습니다. 이 글에 저도 1000% 공감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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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식pd 2016.10.18 11:58 신고

      와우 그런 멋진 선배가 있엇군요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 후배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알것 같아요 ^^

  • 수린 2016.10.21 03:05

    피디님의 여행예찬은 늘 저의 가슴을 뛰게합니다.
    얼른 여행가고싶어져요
    돌아가신 조상보다 살아계신 부모님께 더 잘하라는 말씀과 조상에 대한 감사는 후손이 즐겁게사는거라는 말씀은 여성으로서도 너무 반갑고 고마운 말이구요(명절스트레스 제사스트레스~^^)
    진리인것같아요~ 피디님의 멋진인생 본받고싶어요~^^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