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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

내가 꿈꾸는 바다

by 김민식pd 2016. 8. 21.

항상 여행을 꿈꾸며 삽니다. 여행을 하거나, 여행기를 읽거나, 둘 다 좋아합니다. '쉬 트래블스' '화내지 않고 핀란드까지' '용을 찾아서' 등의 여행기를 쓴 박정석 작가의 근황이 문득 궁금해져서 그분의 책을 찾아봤어요. 여행에서 돌아온 박정석 님은 요즘 동해 바닷가에서 집을 짓고 살고 있네요.

어느날 문득 찾아간 동해 작은 마을에서 집을 지으며 생긴 일들,

2016-189 하우스 (박정석 / 웅진씽크빅)

그 바닷가 집에서 개와 닭을 키우며 사는 생긴 일들, 

2016-190 바닷가의 모든 날들 (박정석 / 중앙북스)

세계 방방곡곡을 다닌 후, 박정석 작가는 우리나라만큼 아름다운 곳도 없고, 이곳만큼 살기 좋은 곳도 없다고 말합니다. 책 두 권을 이어 읽었더니 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대천으로 떠났습니다.

 

올라올 때는 오랜만에 무궁화 열차를 탔는데요, 아, 무궁화가 이렇게 좋은 기차인 줄 미처 몰랐네요. 3명씩 한 줄에 서로 마주 보고 앉던 옛날의 무궁화가 아니에요. 좌석도 세련되고, 열차도 깔끔하고, 연착도 없고. 아주 좋아졌어요.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그 느린 속도였어요.

드라마 연출을 하면 항상 시간에 쫓깁니다. 밤샘 촬영을 극도로 싫어하는 터라 시간관리를 최우선 과제로 삼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내 몸 안의 시계는 계속 바쁘게 째깍거리고 있는지 몰라요. 하루 책 한권, 하루 글 한편. 다람쥐 쳇바퀴 돌듯 나를 굴리지요...

여름이면 KTX 타고 해운대 앞에 사시는 어머니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KTX를 타고 부산에 가면 주위 풍광이 보이지 않아요. 서울에서 부산까지 전국이 휘리릭 스쳐 지나가갑니다. 대천에서 용산으로 오는 장항선 무궁화 열차를 탔더니, 낯선 이름의 기차역에 자주 서더군요. 정차하기위해 열차가 속도를 늦출 때마다 창밖 풍경을 지그시 감상할 수 있었어요. '아, 여기 이런 마을이 있구나.' 창밖 논과 밭의 풍광을 보면서 결심했어요.

'언젠가는 무궁화 열차를 타고 전국의 이름없는 마을을 찾아다녀야지. 서울 대전 대구 부산, 대도시만 서는 고속열차여, 안녕. 난 느린 삶으로 환승할거야.'

박정석 작가는 집을 짓는 기간 동안, 바닷가 펜션이나 모텔에서 월방을 얻어 생활합니다. 시골 할머니가 살던 집을 월세 15만원에 얻어 살기도 하고요. 저는 집을 짓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럴 돈도, 욕심도 없어요.) 애완동물을 키울 마당 넓은 집도 필요없고요. 그냥 밤에 책 한 권 펼 수 있는 작은 방 하나면 만족입니다. 이번에 대천 해수욕장에 가보니 펜션이 정말 많더군요. 그 많은 펜션이 비수기에는 다들 텅텅 비겠지요?

 

비수기 바닷가를 찾아 월방을 얻어 한적한 해변에서 책을 읽으며 노후를 보내고 싶습니다. 책에 두리틀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동물을 워낙 좋아해서 동물과 말하는 두리틀 박사 캐릭터에서 별명을 따왔대요. 저도 두리틀이 되어 살 겁니다. 다만 동물들을 돌보는 두리틀이 아니라, '아주 적게 일하는' Do little 두 리틀.

 

바닷가 한적한 펜션에서 방을 얻어, 적게 일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게 내가 꿈꾸는 노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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