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1 가장 사소한 구원 (라종일 김현진 / 알마)
에세이스트 김현진이 묻고, 라종일 교수가 답한 편지글을 책으로 펴냈어요. 2,30대의 고민을 70대 원로 교수가 생각해보는 형식입니다. 마침 제가 고민하던 문제를 김현진 작가가 물었어요.
'요즘의 연애는 만혼이 일상화된 만큼 서로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요. 결혼을 전제로 만날 때는 더욱 그런데, 데이트를 하려해도 온통 돈 드는 일밖에 없으니 돈 없는 젊은이들은 연애하기가 너무 고달픕니다. "돈 안 들이고 연애하는 방법 없을까요?"'
(63쪽 김현진의 편지)
'돈 들지 않는 데이트에 관한 질문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째서 이성 친구와 만나는데 반드시 돈이 필요한지요. 자기가 돈이 없다는 것을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상대라면 시간을 쓰고 만날 이유가 있을까요?'
(66쪽 라종일의 편지)
어떤 사람이 사기 결혼을 당했어요. 남자가 돈이 많다고 속였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여자는 자신의 학력을 속였대요. 재산 사기와 학벌 사기가 만나 쌍방 사기 결혼. 결국 그 엔딩은 이혼이었어요.
이 이야기를 듣고 좀 안타까웠어요. 결혼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비극이에요. 결혼은 원래 사기성이 좀 농후합니다. ^^ 사람은 연애 기간 동안 가장 예쁘고 멋있습니다. 20대 가장 빛나는 시기에 만났잖아요. 결혼 후 늙어가다보면 '나를 가슴 뛰게 했던 그 예쁜 여자는 어디로 갔지?' '세상 무슨 일이든 다 웃으며 해줄 것 같던 그 멋진 남자는 어디로 갔지?' 하게 됩니다. 이게 자연스러운겁니다.
연애 과정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최선을 보여주려고 노력합니다. 가장 멋지고 예쁜 모습 말이에요. 결혼 후, 본색이 드러납니다. 아침에 화장기 없는 신부의 맨얼굴을 보는 순간, 술 취한 남자의 주정을 보는 순간, 확 깨지요. 그때 상대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아야합니다. '아, 이 여자가 나를 만나려고 아침마다 꾸미는데 공을 참 많이 들였구나. 힘들었겠구나.' '아, 이 남자가 내 눈치 보느라 좋아하는 술도 참았구나. 참 힘들었겠네.'
결혼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걸 이해해주는 게 사랑이지요.
'연애에 돈이 왜 드나요?'라는 라종일 선생님의 답에 김현진 작가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불과 십 년 전만 해도 동네마다 평상 같은 것이 있지 않았습니까? 주로 구멍가게 앞에 놓여 있던 평상은 세찬 추위가 오는 겨울만 빼고는 봄부터 가을까지 이웃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막 시작하는 커플이 바나나우유에 빨대를 꽂아 나눠 마시면서 잠시 다리를 쉬어가는, 여러 세대가 친화적일 될 수 있었던 장소였다고 기억합니다. 하지만 특히 서울의 지금은, 평상이 모두 사라지고 그 자리에 뭐가 생겼을까요? 저는 스타벅스가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있을수록, 또 돈이 있어야 멋진 데이트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사회 전반이, 아니 그들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확성기를 들고 외치듯 말하고 있는데 어떻게 거기에 쉽게 저항할 수 있겠습니까?'
(김현진의 편지 70쪽)
영화광인 저는 얼마전 CGV의 가격 인상 이후 영화관 나들이를 삼가하고 있습니다. 혼자 하는 파업이지요. 기업의 가격 정책을 소비자 입장에서 감히 왈가왈부할 수 없지만, 같은 극장, 같은 시간, 같은 영화를, 자리에 따라 다른 가격을 받는다? 이건 전형적인 자본의 횡포에요. 가격에 따라 고객의 등급을 나누겠다는 거거든요.
영화관에 누가 가나요? 주로 데이트하는 청춘들이 갑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썸타는 후배에게 잘 보이기 위해, 혹은 여자친구 기죽이지 않으려고 울며 겨자먹기로 비싼 자리를 끊어야하는 청춘을 생각하면 이런 좌석 차별 가격 책정은 정말 불공평해요. 가뜩이나 연애하기 힘든 시대에, 데이트하는 청춘을 응원하진 못할 망정, 시장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서 삥을 뜯나요? CGV의 가격 인상, 저는 반대입니다.
네, 죄송합니다. 짠돌이의 협량한 소견 탓에 순간 울컥했네요.
요즘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연애를 하기가 참 쉽지 않지요. 그렇기에 저는 검소한 삶의 가치가 더더욱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돈 많은 사람 만나지 말고, 검소한 사람을 만나세요. 돈은 있다가도 없어지지만, 절약하고 저축하는 품성은 사라지지 않아요.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라종일 선생님의 말씀.
'효도란 궁극적으로 부모님에게 잘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충실하는 것입니다. 마약이나 음주 같은 나쁜 습관에만 빠지지 않아도 효도하는 것입니다.
효의 근본은 자기 자신의 존재에 관한 큰 긍정이라고 생각합니다.'
(177쪽 라종일의 편지)
맞습니다. 자식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게 부모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입니다. 또 자기 자신에 관한 가장 큰 긍정은 연애입니다. '이렇게 멋진 내가 너를 외로움에서 구해줄게.' 사랑은 사랑에 빠진 나를 구원하고, 상대를 외로움에서 구원하는 가장 위대한 구원입니다.
연애는 자기 계발에 있어 최고의 동기부여입니다. '너에게 어울리는 더 멋진 내가 될게.' 또는 자긍심의 최고 표현이고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다른 이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거든요.
북한산 둘레길로 소풍나온 유치원 병아리들. 이들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빛나는 사랑의 증명입니다. 볕 좋은 봄이에요. 사랑의 꽃을 활짝 피워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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