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면서 몇 번의 행운을 만나는데요, 퇴직 후 전업작가를 꿈꾸는 제게 찾아온 가장 큰 행운은 위즈덤하우스와의 만남입니다. 1월 첫 주 책이 나온 후, 출판사에서는 꾸준히 프로모션과 마케팅을 하고 있어요. MBC 라디오에 광고도 나오고요. (MBC 직원의 한 사람으로, 회사 광고 매출에 기여했다는 보람을 느낍니다. ^^) MBC 라디오 앱 미니에도 광고가 나오고, 예스 24 앱 푸쉬 광고에, 교보문고 메인 웰컴 광고에, 피키캐스트 앱 광고에, 다수의 팟캐스트 광고에, 정말 열심히 밀어주십니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들어요. '니 책 광고는 정말 많이 나오더라.' 

공짜를 좋아하는 저자의 특성을 간파하셨는지, 무료 증정 책자도 만들어 사은품으로 주시는데요, 지난번에는 '어린 왕자' 원서 한 권을 끼워주셨다가, 이번에는 '그레이트 스피치'라는 영어 연설문 소책자를 만들어주셨어요. 디자인을 보고 탄성을 질렀습니다. 

'아니, 위즈덤하우스에서는 무료 증정본도 어쩜 이렇게 고급스럽게 만든단 말인가!'

 

끊임없이 새로운 프로모션의 아이디어를 내고 또 실행하는 위즈덤하우스 관계자 여러분께 고개 숙여 감사인사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의 새로운 별책 부록, 'Great Speechs 암송하기 좋은 영어 연설문' 지금 YES24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아래 글을 누르면 링크로 연결됩니다.)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 어린 왕자 영문판, 혹은 그레이트 스피치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존 케리 대선 후보 출정식이 열립니다. 분위기를 띄워줄 찬조 연설자를 찾던 캠프에서 당시 무명에 가까운 정치 신인을 섭외합니다. ‘버락 오바마라는 그 흑인 상원의원은 '담대한 희망'이라 불리는 연설을 통해 전국 무대에서 역사적인 데뷔를 하게 됩니다. 이 연설을 통해 오바마는 첫 흑인 대통령 탄생이라는 많은 미국 흑인들의 꿈을 자신의 삶으로 바꿔놓지요.

 

미국에서 가장 말 잘하는 사람, 버락 오바마의 연설을 외우는 것도 좋은 영어 공부 방법입니다. 대통령 취임사 등 오바마의 명연설이 많지만 그중 특히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문을 추천합니다. 전국 무대에 처음 등장한 오바마는 이 연설에서 자기소개부터 하거든요. '오바마 연설을 외워서 어디에 써먹나?' 하실 수도 있는데요. 제가 권하는 문장 암송의 핵심은 의미 단락별로 끊어서 외운다는 점입니다. 하나의 문장 속에 서너 개의 핵심 표현이 있고, 이를 조립하면 수십 개의 새로운 문장이 만들어집니다. ‘담대한 희망에는 영어 면접이나 영어 프레젠테이션 도입부에서 써먹을 수 있는 고급스러운 표현이 많습니다. 스토리텔링의 흐름도 훌륭하기에 연설문 한 편을 통으로 외우기도 수월하고요.

 

명연설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모두가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지요? 말과 글이 삶과 꿈으로 이어진 세 편의 명연설을 소개합니다.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 오바마를 만든 담대한 희망’, 세계 여성 해방 운동에 전기를 마련한 힐러리의 여권 신장이 인권 신장이다’, 뿌리 깊은 인종차별 종식을 앞당긴 마틴 루터 킹의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

 

세 편의 명연설 암송을 통해 여러분의 영어와 삶이 더욱 위대해지길 바랍니다. 나중에 누가 "어떻게 그렇게 고급스런 회화 표현을 능숙하게 잘 하시나요?"하고 물어본다면 이렇게 대답해주세요.

"오바마와 클린턴이 제 영어 선생님이거든요."

 

 

(오바마 연설 초반, 의미 단락으로 끊어 읽기 예시입니다. 장소나 인명 등 고유 명사는 그냥 A, B, 라고 넘어가셔도 좋습니다. 첫 문장은, On behalf of A, let me express my gratitude for B. 라고 외우셔도 좋습니다. 나중에 A, B만 여러분의 상황에 맞춰 바꾸면 되거든요. 핵심 표현을 외우는 데 주력하시면 회화 응용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건승을 빕니다!)

 

On behalf of / the great state of Illinois, crossroads of a nation, Land of Lincoln, let me express my deepest gratitude / for the privilege of addressing this convention.

Tonight is a particular honor for me / because, / let’s face it, / my presence on this stage is pretty unlikely. My father was a foreign student, / born and raised / in a small village in Kenya. He grew up / herding goats, / went to school / in a tin-roof shack. His father -- my grandfather -- was a cook, / a domestic servant to the British.

But my grandfather had larger dreams / for his son. Through hard work and perseverance / my father got a scholarship / to study in a magical place, America, / that shone as a beacon of freedom / and opportunity to so many / who had come before.

While studying here, / my father met my mother. She was born / in a town / on the other side of the world, in Kansas. Her father worked on oil rigs and farms / through most of the Depression. The day after Pearl Harbor / my grandfather signed up for duty; / joined Patton’s army, / marched across Europe. Back home, / my grandmother raised a baby / and went to work on a bomber assembly line. After the war, / they studied on the G.I. Bill, / bought a house through F.H.A., / and later moved west / all the way to Hawaii / in search of opportunity.

And they, too, had big dreams / for their daughter. A common dream, / born of two continents.

My parents shared not only an improbable love, / they shared an abiding faith / in the possibilities of this nation. They would give me an African name, / Barack, or ”blessed,” / believing that in a tolerant America / your name is no barrier to success. They imagined -- They imagined me / going to the best schools / in the land, / even though they weren’t rich, / because in a generous America / you don’t have to be rich / to achieve your potential.

They're both passed away now. And yet, / I know that on this night / they look down on me / with great pride.

They stand here, / and I stand here today, / grateful for the diversity of my heritage, / aware that my parents’ dreams live on / in my two precious daughters. I stand here / knowing that my story is / part of the larger American story, / that I owe a debt / to all of those / who came before me, / and that, / in no other country on earth, / is my story even possible.

 

(이하 본문은 책으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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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13일차 여행기

 


오늘은 잔지바르에서 가장 번잡한 스톤타운을 벗어나 반대편 동쪽 해안에 있는 파제를 찾아갑니다. 이 섬에서 가장 조용한 동네라는 이야기를 듣고.

스톤타운의 경우, 가는 곳마다 호객꾼을 만납니다. 택시 일일 관광, 일일 뱃놀이, 투어, 다양한 상품을 권하지요. 워낙 유명한 관광지니까요.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것보다, 여행 막바지에는 조용한 곳에서 혼자 푹 쉬다 가고 싶은 마음에, 파제로 향했습니다.

 

파제 해변입니다. 넓고도 얕은 해변이 길게 펼쳐져 있어요.

이 넓은 해변에 사람이 없어요.

파제가 유명한 건 카이트 서핑입니다. 서핑 보드를 타고 커다란 연을 조종해 바람을 타고 바다위를 날듯이 달립니다. 해변에 사람도 배도 없으니 가능하지요.

아드레날린 정키로서, 익스트림 스포츠는 다 좋아해요. 레슨을 받아 카이트 서핑에 한번 도전해볼까 했는데요.

초보자의 경우, 서서 균형잡기도 힘들어요. 3일 동안 제대로 배울 자신도 없고, 떠나면 이곳에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겠어요.

잘 타는 사람은 공중에 휙휙 날아오르기도 합니다.

저는 구경만 하다 갑니다. 예전엔 이런 장면을 보면 직접 하고 싶어 피가 끓었는데, 이제는 구경만 해도 그냥 좋네요. 나이 들은 건 못 속이나봐요. ^^

현지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해서 먹고 있는데, 지나가던 젊은 친구가 물어보더군요. 맛이 어떠냐고? 괜찮다고 말해줬어요. 이곳에는 식당이 많지 않아 어차피 선택의 여지는 크지 않을 거라고.

스웨덴에서 왔는데, 어머니와 여행중이라는군요. 어머니는 중국인이었어요. 아버지는 스웨덴 사람. 중국어로 인사를 건넸더니 어머니가 반가워하시더군요. 데니 드한 혹은 젊은 날의 디카프리오를 떠올리게 하는 눈빛이 인상적이었어요. 배우 분위기가 풍긴다고 말을 걸었더니, 어머니가 놀라시더군요. 실은 스웨덴에서 어린 시절 아역 탤런트였다고. 영화 주연도 했답니다.  

아역 배우를 하다 탁구 선수로 변신해서 스웨덴 국가대표까지 했다는군요. 중국과 스웨덴은 양국 다 탁구 강국인데, 혹시 어머니가 탁구 선수였냐고 물어보니, 어머니는 통역사랍니다. 중국어 스웨덴어 통역사.


아역 배우로 일을 시작하면, 다른 일을 하기 힘든데 어떻게 운동 선수가 되었냐고 물었지요. 연기는 아무리 해도 느는 게 안 보이는데, 탁구는 연습을 하면 실력이 향상되는 걸 느낄 수 있어 재미있었다는 군요.

탁구 선수로 평생 살기는 힘들 것 같아서 직업 배우를 하려고 LA 헐리웃에도 갔는데,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았다고, 지금은 스웨덴으로 돌아가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답니다.

미국 시장보다, 중국 시장을 공략해보면 어떻겠냐고 말했어요. 미국에는 라틴계 배우가 많아 혼혈 배우 시장은 이미 공급 과잉이라고. 중국의 경우, 그처럼 중국 혈통을 가진 스웨덴 배우에게 기회가 있을 지도 모른다고 말해줬어요. 미국 영화를 선망하는 그에게 중국은 변방으로 느껴져 매력이 없는 것 같았어요.

저는 앞으로 문화 산업의 기회는 중국에 있다고 믿습니다. 중국의 경제 성장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그 다음에는 문화적 욕구가 분출할 거거든요. 지금은 한국 등 외국에서 콘텐츠를 사가고 있지만, 곧 자체 제작 능력을 키울 겁니다.      

오늘의 숙소는 파제 호텔입니다. 싱글룸이 1박에 25불하는 저렴한 숙소에요. 아침은 제공이 되지 않는 게 좀 아쉽네요.

아침은 개당 300원하는 망고와, 개당 200원하는 빵으로 대신합니다.

동네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잠보! 하바리 가니? 은주리 싸나!'하고 인사를 했더니 반갑게 맞아주네요. 어딜 가나 그 나라말로 인사를 하면 좀더 친근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스와힐리어 인사를 가장 쉽게 배우는 법이 있어요.

'잠보'라는 노래를 부르면 됩니다. 가사가 인삿말이거든요.

'잠보? (안녕하세요?)

하바리 가니? (어떻게 지내요?)

은주리 싸나. (잘 지내요.)

하쿠나 마타타 (아무 문제 없어요.)

이 네 문장만 알아도 되거든요. ^^

 

외국어 회화를 쉽게 접근하려고 합니다. 문법과 단어를 다 배울 시간이 없을 땐, 기초 회화 몇 문장만 암기해도 여행이 즐거워집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데까지만 해보자고요. 그게 외국어 공부를 즐기는 비결입니다.

 

'싸파리 은제마!' 즐거운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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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12일차 여행기

 

탄자니아 잔지바르 섬은 향신료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아랍 무역상들이 아프리카와 유럽을 오갈 때 그 중개항이었거든요. 유럽 귀족들이 미각과 후각의 새로운 자극을 찾아나선 덕에 오늘날의 세계지도가 만들어졌습니다. 콜럼버스가 향신료 무역의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려다 미대륙을 발견하게 되었으니까요. 잔지바르는 향신료 무역의 요충지였어요. 아직도 남아있는 향신료 농장을 돌아보는 일일 투어 프로그램이 있어요. 바로 잔지바르 스파이스 투어. 

   

잔지바르의 별명이 Spice Island입니다. 이곳을 찾는 미국과 유럽 여행자들은 잔지바르 향신료 무역의 역사에 대해 궁금해하지요. 그들을 대상으로 영어로 진행하는 투어입니다. 세계 어디를 가든 대부분의 투어는 영어로 진행됩니다. 그러기에 영어만 하면 어딜 가도 불편할 일이 없어요. 오늘 10여명의 여행자 중에 아시아인은 저 혼자네요. (현지인처럼 보이는 외국인 여행자... ^^)

온갖 향신료의 열매와 씨앗을 직접 까서, 맛도 보고, 냄새도 맡아봅니다. 커리 잎부터, 람부탄, 리치, 후추, 계피, 잭프룻, 바닐라 콩 등등 다양한 식물의 씨앗과 잎을 봅니다. 매일 쌀로 지은 밥을 먹던 사람이 평생 벼를 본 적은 없던 것처럼, 후추니 카레니 늘 식탁에서 익숙하게 접했지만 정작 자연상태에서는 본 적이 없었기에 흥미진진한 시간입니다.


열대 과일을 깎아 나눠주기도 하고요.

시나몬이나 바닐라를 넣어 포프리도 만들어줍니다.

코코넛 잎으로 팔찌도 만들고.

목걸이, 팔찌, 머리띠까지 풀셋트로 장착~^^

 

옛날 유럽의 귀족들은 후추, 계피, 고추의 톡쏘는 맛에 매료되었는데요. 후추의 경우, 부피나 무게에 비해 값이 비싸, 화폐의 역할을 하기도 했답니다. 

스티븐 존슨이 쓴 '원더랜드'를 보면 후추의 피페린과 고추의 캡사이신은 식물의 생화학 무기랍니다. 생물종이 다양한 열대지방에서 자란 후추와 고추는 초식 동물들로부터 자신의 씨앗을 보호하려고, 씨앗을 먹는 순간 입안이 타는 것같은 통증을 느끼도록 진화했다는 거지요. 열매는 이와 반대로 동물의 소화액을 견뎌내는 씨앗을 달콤한 과육으로 감싸 동물에게 먹힌 다음, 동물이 배설한 씨앗을 통해 널리 퍼지도록 하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식물의 적응 과정이 단 맛과 매운 맛이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네요.

 

'문명이 지중해 기후 지역에 뿌리내린 이유는 대립종 곡물인 밀과 보리를 경작하기 알맞기 때문이다. 세계 향신료 교역 시장이 등장한 이유는 후추가 오직 머나먼 열대기후 지역에서만 자랐기 때문이다. 열대기후의 생물 다양성 덕분에 후추는 그 열매를 먹으면 통증을 느끼게 만드는 물질을 생성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원더랜드' 3장 맛 후추 난파선 중에서)

 

농장 투어가 끝나면 인근 마을로 갑니다.

오토바이로 다니는 생선장수 노점상.

 


이곳의 아이들은 항상 저를 신기해합니다. 이곳 아프리카에는 유럽에서 온 백인 여행자는 많지만, 아시아 여행자는 드물거든요.

 

잔지바르는 한때 노예 무역의 중심지기도 했어요. 이곳은 노예 무역이 금지된 후, 노예를 가두고 숨겨둔 동굴이랍니다.

 

잔지바르에는 아프리카 노예무역에 관련한 유적이 꽤 있어요. 그런 장소를 다니면 좀 울적해집니다.

 

이제 오늘의 마지막 일정을 위해 해변으로 향합니다.

근처에 마을이 없는 호젓한 곳이라 거의 관광객 전용 해변입니다.  

물이 얕아서 해수욕을 하기엔 그렇고, 그냥 해변을 걸으며 산책합니다.


인도양을 보며 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요. 고통을 즐기는 동물은 인간 밖에 없구나. 식물이 개발한 생화학 무기도 인간에게는 쾌락의 근원입니다. 자기 보호를 위해 진화한 공포와 두려움이라는 감정도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인간에게는 쾌락의 도구이고요. 인간은 항상 낯선 감각과 자극을 추구하고 살아왔어요. 그 덕에 인간의 주거 환경은 전세계로 확장되었고요. 

 

저는 여행을 참 좋아합니다. 감각을 확장하는 기회거든요. 여행을 떠나면, 시각, 청각, 미각, 촉각 등 새로운 자극을 맛봅니다.

처음 보는 바닷속 산호초 풍광은 시각의 확장,

처음 듣는 열대우림 새들의 지저귐은 청각의 확장,

처음 맛본 두리안의 기름진 맛은 미각의 확장,

처음 밟아 본 인도양 모래의 부드러움은 촉각의 확장.

오늘의 스파이스 투어는 후각의 확장을 즐기는 향연이었어요.

 

아프리카, 낯선 감각의 확장을 경험할 수 있어 좋네요.

 

하루 경비 

스파이스 투어 15불 (교통, 점심, 가이드 포함)

숙박 35불 (아침 포함)

저녁 5불 

카페 2불 

합 57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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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의 자동화 기술은 특정한 부분에 한정되어 있어서 한 번에 한 분야에만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근로자들은 일터를 잃어도 새롭게 부상하는 타 업종으로 전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상황은 다르다. 정보 기술의 범용성 때문에 모든 산업의 노동 집약도가 줄어들고 있으며, 새로운 산업도 그 구상 단계부터 강력한 노동 절약 기술을 정착하고 등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일자리를 지키고 또 찾아낼 수 있을까?‘

<로봇의 부상> (마틴 포드 / 이창희 / 세종서적) 책표지에서

 

미래의 변화를 읽으려면 과거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트렌드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책에서 눈에 띈 그래프가 두 장 있습니다.

 

미국 국민소득 중 근로자에게 가는 부분 (1947~2014)

 

 

 

같은 기간 동안 GDP에서 차지하는 기업 이윤의 비중

 

 

 

노동자의 비중은 갈수록 줄고 기업의 이윤은 갈수록 늡니다. 기업 이윤의 경우, 불황기에 큰 폭으로 떨어지기는 하지만 위기를 넘기고 나면 이전보다 더 큰 폭으로 오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개인은, 경제 위기가 있을 때마다 하류층으로 전락합니다. 회복은 쉽지 않고요.

 

'범세계적으로 근로자의 몫이 축소되는 이유가 "자본 생산 부문에서의 생산성 향상"이라고 결론지으면서 "이는 주로 정보 기술의 발달과 컴퓨터 시대의 도래에 기인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소득에서 근로자의 몫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거시 경제 모델의 기본 요소"임도 지적했다.'

 

산업 사회에서 기술이 발달할수록 기업에 유리하지, 노동자에게는 불리하다는 겁니다. 요즘 잘 나가는 회사는 포털 기업입니다. 구글이나 네이버가 하는 일은,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생산한 지식이나 콘텐츠를 검색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는 것입니다. 에어비앤비가 하는 일도 그래요. 기존에 있던 주택, 기존에 있던 역사 문화 등의 관광자원, 기존에 집을 꾸미는데 들어가는 가족의 노동력을 온라인 공간에 모아놓고 한자리에서 쉽게 주문 결제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합니다. 요즘 잘 나가는 IT 기업의 특징은 이제껏 인류가 공동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 온 자원에 정보 기술의 편리함을 더해 시장을 독점한다는 것이지요. 페이스북 대주주는 주커버그 한 사람이지만, 페이스북의 효용은 수십억의 사용자가 매일 자발적으로 올리는 콘텐츠에서 나오거든요.

 

'소수의 엘리트가 오랜 시간 누적된 사회의 기술 자본을 사실상 독점해도 되는가 하는 윤리적 의문에 더하여, 소득 불균형이 극단을 향해 가는 경제가 전체적으로 과연 건강한가 하는 실질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어떤 분야든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시장이 활발해야 혁신을 지속할 수 있는데, 그러려면 구매력이 적절히 배분되어 있어야 한다.'

(135)

 

책의 전반부는 자동화 물결이 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 무엇도 함부로 상상하지 말라. 상상하는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영화 카피가 생각납니다. 정보 기술 혁명은 이전의 산업 혁명과는 다른 양상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MOOC의 등장을 통해 대학 교육에도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이고, 인공지능이 가장 활발히 사용될 분야 중 하나가 의료 산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로봇의 부상으로 어떤 일자리가 사라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의미없이 느껴집니다. '일자리를 로봇이 가져간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그게 더 중요한 질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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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도중, 기자님이 물어보셨어요.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의 구매 독자층을 살펴보니, 30, 40대 성인 남자가 많더라고요. 직장인들이 이 책을 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흥미로운 질문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영어는 중·고등학교 때 짝사랑했던 상대와 비슷한 것 같아요. 포기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다시 소식을 듣게 된 거에요. 한번 연락해볼까, 이번엔 꼭 잘 해보고 싶은데.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거죠.”

중학교 들어갈 즈음 영어와 첫만남을 갖는데요. 대학 입학하고, 취업하면서 조금씩 멀어져가지요. 첫사랑에 대한 소식은 가끔 듣는데요, 그럴 때마다 그녀와 거리는 더욱 멀어져갑니다. '요즘 그녀를 만나려면 미국에 가야 한단다.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를 가지 않고서는 그녀를 사귈 길이 없단다...' 그런 소문이 돕니다.

영어 공부에 대한 접근법은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달라졌습니다. 1970년대나 80년대에는 '매일 영영 사전 한 장을 외우고 씹어먹었다더라, '성문 기본 영어' 책 한 권을 다 외웠다더라.' 이런 고수의 전설이 떠돌았어요. 한국 경제가 좋아지고, 해외 나들이가 쉬워진 이후 '요즘 영어 잘하는 친구들은 다 어려서 조기 유학을 갔다더라. 방학마다 영어 캠프에 다녔다더라.' 그런 소문으로 바뀐 거죠.

어학 연수나 조기 유학 붐이 일기 전에 학교를 다닌 30대 40대 남자들은 직장에서 가운데 끼인 세대입니다. 위에는 영어를 잘 할 필요가 없었던 세대가, 아래에는 영어를 다 잘하는 세대가 있어요. '새로 들어온 신입 사원은 토익이 900이네, 회화를 미국에서 배웠네.' 하는 얘기를 들어면서 주눅이 듭니다.

'아, 나도 한때는 영어랑 사귈 뻔 했는데... 기회를 놓쳤구나...' 그런 분들 앞에 노란 책표지가 마치 노란 손수건처럼 팔랑팔랑 나풀거립니다. 

'아닌데... 그 첫사랑, 미국에 간게 아니라 늘 한국에 있었는데... 지금이라도 마음먹고 사귀자고 하면 이제라도 결혼할 수 있는데...'

 

 

중앙 SUNDAY 이영희 기자님이 인터뷰 제목을 재미나게 뽑아주신 덕에 또 혼자 상상을 이어가봅니다. ^^ 어제자 신문에 실린 기사를 소개합니다. 

기사도 좋고, 사진도 좋고,

책을 낸 후, 행복한 나날이 이어지는 군요.

역시 인생은 들이대는 자의 것입니다!

여러분도, 늦었다고 포기하지 마시고, 한번 들이대 보시길~^^

 

(인터뷰 기사를 보시려면 아래 링크로~)

  

   http://news.joins.com/article/21405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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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미래 (조영태 / 북스톤)

 

저자인 조영태 교수 (인구학자)에 따르면, 10년 후를 예측하는 가장 정확한 기준이 인구학이랍니다. 1955~74년 한국의 베이비부머는 매년 90~100만 명씩 출생했어요. 지난 30년 사이 출생아가 40만 명 수준으로 떨어지더니 이제는 그마저도 위태롭답니다. 앞으로는 학교 입학 아동이 줄어 학교와 교사가 남아돌게 됩니다. 직업 안정성과 연금이라는 이점 때문에 장래 희망이 '교사'라는 아이가 많은데요. 중등 독일어 교사는 2008년 이후 전국에서 1명도 선발하지 않았어요. 서울대 사범대학 독어교육과에서는 매년 15명의 신입생을 선발하는데 말이지요. 교직의 미래는 과연 어떨까요?

 

'지금이야 의사나 변호사를 최고의 직업으로 치지만, 앞으로도 과연 그럴까? (중략)

현재 활동하는 의사와 변호사들의 주축은 40대와 50대 초반이다. 이들이 언제까지 의사와 변호사를 할까? 60대? 70대? 현재의 40~50대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건강하고 오래 사는 데다, 노후자금을 스스로 마련해야 하므로 쉽게 은퇴하지 않을 것이다.

은퇴가 있는 노동시장은 윗세대가 꾸준히 빠져나가면서 신규 세대가 진입할 수 있는데, 의사나 변호사처럼 은퇴가 없는 노동시장은 빈자리가 나지 않는 한 신규세대가 들어갈 길이 없다.' 

(위의 책 82쪽)

 

의사나 변호사의 특징은 교육 기간이 길고 학비도 비싸다는 점입니다. 요즘엔 로스쿨이나 의대를 보내려면, 초등학교부터 사교육비를 쏟아부어야합니다. 아이들 사교육에 소득을 모두 쓴 사람과 그 돈으로 노후를 준비한 사람, 앞으로 둘 사이 노후 생활의 질은 극적으로 달라질 것입니다. 부모가 가난해도 아들이 의사나 변호사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아이의 진로에 온 가족이 판돈을 올인한 도박을 하는 셈입니다. 도박은 판돈을 더 많이 가진 사람에게 더 유리한 게임이구요. 지금 사교육 시장은 가진 자들이 판돈을 올리고, 중산층이 빚을 내어 쫓아가는 판이거든요? 이 판이 과연 공정한 게임인지는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대학 신입생이 급격하게 줄면서 문을 닫는 지방 사립대도 나올 겁니다. 지방대가 문을 닫으면 그곳의 4,50대 교수들은 다시 수도권 대학이나 공립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려 하겠지요. 교수직 경쟁이 더 치열해집니다. 지금 미국 유학중인 아이들이 국내에 돌아오는 10년 후, 십년 넘게 들인 유학비용을 뽑을 수 있을까요? 상황이 이런데 미국 박사 만드는데 유리하다고 초등학교 부터 1년에 1억을 들여 조기 유학을 보내야 할까요?

 

조영태 교수는 우리나라는 산아 제한 계획을 너무 오래 시행했다고 말합니다.

'만약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인구대체 수준인 2.1명이 된 1983년에 일본이 겪고 있는 인구변화 추이를 봤다면 아마 그때 가족계획을 중단했을 것이다. 바로 이웃한 나라가 우리의 20년 후를 보여주고 있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참고하지 않았다.'

(201쪽)

 

요즘 저는 '노후파산' '2020 하류노인이 온다' 등, 일본의 가난한 노인 문제를 다룬 책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의 노인이  20년 후,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사교육 투자보다 노후 대비가 더 중요하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쓰게 된 이유 중 하나고요.) 

어려서 저는 의대를 가라는 아버지의 강권에 이과를 갔는데요. 적성도 안 맞고 성적도 모자라 결국 공대에 갔습니다. 20대 시절, 많이 힘들었어요. 영업사원으로 일하며 밤에 입시반 학원을 다녀 외대 통역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기쁜 마음에 아버지께 낭보를 전하러 갔더니 아버지께서 그러시더군요.

"그래, 공부를 하니까 되지 않니. 지금이라도 재수하고 수능 봐서 한의대를 가면 어떻겠니? 한의사는 정년이 없으니 나이 40에 졸업해도 된단다."

 

그 순간, 정말 좌절했어요.

'아, 의사가 되지 못하면 나는 평생 아버지 눈에 못난 자식이구나...' 오히려 그 후,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어차피 무엇을 하든, 아버지 눈에는 안 찰 테니, 그냥 내가 좋은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

진로를 선택하는데 있어, 부모의 소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식 본인의 적성과 선택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보기에 지금 현직에 계신 교사나 의사, 변호사들은 괜찮습니다. 그분들은 지금까지 익힌 노하우와 시장에서 차지한 점유율로 오래 버틸 수 있으니까요. 다만 아이가 공부를 잘하지 못해, 미래에 의사 변호사 교사가 못된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자신의 천직이 교직, 의사, 법률가라 믿고, 또 그만큼 열심히 공부해서 의대나 법대, 교대에 갈 수 있는 아이라면 굳이 말릴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세가지 직업이 못 되었다고 아이를 패배자 취급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책의 제목은 '정해진 미래'이지만,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바뀝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더 행복하기를 꿈꾸는 부모님들께 권합니다.

'정해진 미래 - 인구학이 말하는 10년 후 한국 그리고 생존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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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영어 교사로 일하신 어떤 분이 퇴직하고 책을 쓰려고 준비중이었답니다. '영어 공부는 문장을 외우는 게 최고다'라는 내용으로. 그러다 제 책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읽고 좌절하셨답니다. 

'아뿔싸, 한 발 늦었구나!'

이 책을 읽고 저도 똑같이 느꼈어요.  

 

1만권 독서법 (인나미 아쓰시 지음 /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작년 한 해, 250권의 책을 읽으며 다독 비결을 연재했어요. '책을 많이 읽기 위해 어떻게 할까?' '왜 책을 많이 읽어야 하나?' 등등. 언젠가는 '다독의 즐거움'에 대해 책을 쓰고 싶었는데, 음... 한 발 늦었네요. 이 책을 보니, 당분간 안 써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이 책에 다 나오거든요. ^^

1만권 독서법의 핵심은 책을 빨리 읽자는 것입니다. 저도 책을 빨리, 많이 읽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읽는데 집착하지 말고, 좋은 책을 몇 권만 꼼꼼히 정독하라'는 분도 있습니다. 유명한 고전이나, 어려운 인문과학서적을 추천하기도 하지만,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쉽고 재미난 책을 설렁설렁 취미삼아 읽자는 주의입니다.

좋은 책을 읽으라고 말하면, 마치 좋은 책과 나쁜 책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 수 있어요. 저는 책은 다 좋다고 생각하는 극단적 책 애호가입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 또 읽을 때의 상황에 따라, 마음을 더 크게 울리는 책이 있고, 그렇지 않은 책이 있는 거지요. 책의 잘못도 아니고, 독자의 잘못도 아니예요. 그냥 서로 인연이 아닌 거지요. 저는 어렸을 때 무협지랑 야한 소설도 즐겨 읽었는데요. 그때 속독하는 습관을 길렀어요. 야한 장면을 찾아 휙휙 페이지를 넘기게 되거든요. 단어 하나하나에 집착하기보다 주인공의 운명에 집착합니다. 독서의 즐거움을 깨워주는 책도 나름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아이에게 재미없는 인문고전을 숙제처럼 읽히다보면 독서의 흥미를 잃을 수 있어요. 뭐든 오래가는 취미가 되려면 재미가 우선입니다.

좋은 책과 나쁜 책이 있다기 보다, 더 좋아하는 책과 덜 좋아하는 책이 있지요. 내가 어떤 책을 더 좋아하는지는 책을 읽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가볍게 읽은 소설에서 가슴 먹먹한 감동을 얻기도 하고, 모두가 좋다고 하는 서양 고전을 읽었지만 지루하기만 해서 시간과 의욕만 빼앗기기도 합니다. 많이 읽기 전에는 좋은 책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책을 읽기 전에, 먼저 많이 읽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권의 책을 읽다 찾아낸 좋은 책을 꼼꼼히 천천히 읽어야지요. 그래서 저는 정독보다 먼저 다독과 속독을 익혀야 한다고 믿습니다.

책에는 다독과 속독을 위한 알찬 노하우가 소개됩니다. 1만권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저자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읽는다'라고 합니다.

'독서뿐 아니라 뭔가를 습관화하는 비결은 매일 같은 시간대에 실행하는 것입니다.

(중략) 독서리듬을 만들고 싶다면 일단 하루도 거르지 않아야 합니다.'

영어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습관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 같은 시간에 동일한 작업을 꾸준히 반복하는 것입니다.

 

'독서를 습관화하려면 빨리 읽을 수 있는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천천히 읽고 싶은 책뿐 아니라 빨리 읽을 수 있는 책도 자신의 독서 목록에 넣어둡니다. 이렇게 점차적으로 다양한 책을 읽는 환경에 조성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다 읽은 책이 점점 늘어가는 기쁨은 독서를 습관화하는 데 빠트릴 수 없는 동기부여로 이어집니다.'

(47쪽)

 

 

1만권 독서법, 제목을 읽고는 이게 가능할까? 싶었어요. 나름 다독한다고 하지만 1년에 250권이 한계더라고요. 이 분은 서평가로서 연간 700권을 읽는답니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책을 끝까지 읽어보니 이것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평생 1만권을 읽겠다는 각오로 달려보고 싶다는 의지가 샘솟습니다. 정독에 목매지 말고, 설렁설렁 읽는다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어요. 책 한 권에서 한 문장을 남기면 남는 장사라는 생각으로 도전해봐야겠어요.

1만권 독서법은 '정독의 저주'에서 벗어나라고 말합니다. '100퍼센트를 기억하는 독서에서 1퍼센트를 만나는 독서로' 가라고요. 

'독서란 수천의 문장 사이에서 나를 성장시킬 단 한 문장을 찾는 과정이다.'

 

어떤 책의 어떤 문장에 꽂힐 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글귀를 읽는 순간, 가슴이 쿵쾅거리면서, '아, 나도 이렇게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삶의 강렬한 열정을 느끼게 해준다면, 그것이 책을 읽는 최고의 이유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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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11일차 여행기

잔지바르(Zanzibar)는 탄자니아의 자치령입니다. 본토에서 겨우 25킬로미터 떨어진 섬이지만 나름 자치지구입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섬인지라 섬주민들의 자부심이 강합니다. 탄자니아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들어갈 때도 여권을 제시하고 출입국 심사를 합니다. 잔지바르의 구시가인 스톤 타운은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옛날에는 육두구, 계피, 후추 등의 향신료 산지로 유명한 곳이고요. 서구권에서는 향신료 섬 (Spice Islands)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지요. 

라디오 피디 후배랑 이야기를 하다가 잔지바르에 간다니까,

"아, 프레디 머큐리의 고향 말이지요?" 하더군요. 잔지바르를 아는 친구는 처음이었어요.

"응? '퀸'의 보컬 고향이 잔지바르야?"

"모르셨어요?"

"응. 금시초문."

"그런데 거기를 왜 가시려고요?"

"유럽 배낭족들이 하도 칭송을 하기에 궁금해서..."

예능 피디로 살면서 세상에서 재미난 것은 다 해보고 싶어요. 이것저것 다 해보니 가장 재미난 건 여행이더군요. 이제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곳은 다 가보자, 뭐, 그런 주의입니다.

잔지바르가 아프리카에서 여행지로 사랑받는 이유가 뭘까요?

 

1. 역사가 있어요.

잔지바르의 구시가인 스톤타운은 세계유산입니다. 페르시아의 무역상들이 이 섬을 아라비아와 인도와 아프리카 사이 무역 전진기지로 사용한 게 벌써 2000년 가까이 되었어요. 아랍 상인들이 남반구 최초의 모스크를 설립한 곳이 스톤타운이라는군요. 지금도 이슬람 인구가 가장 많습니다. 거리를 다녀보면, 이곳이 중동인지 유럽인지 인도인지 아프리카인지 헷갈릴 정도예요.

1503년부터 200년간 포르투갈인이 점령했으며, 그 이후에는 오만의 일부가 되고요. 19세기 중엽에는 다시 영국이 점령하고 이 나라의 왕을 술탄이라 불렀어요. 영국의 공무원 부부가 이곳에서 살다가 낳은 아이가 훗날 퀸의 '프레디 머큐리'입니다. 지금도 이곳에는 프레디 머큐리 기념건물이 있어요. 감히 박물관이라 부르기엔 너무 소박하고요. 벽에 걸린 사진이 아니었으면 모르고 지나쳤을 뻔... 

 

수백년된 이슬람 향신료 무역과 노예무역, 유럽의 식민지배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이슬람 건축과 유럽풍의 식민지풍 건축이 혼재하는 곳, 그곳이 잔지바르입니다.

 

2. 바다가 참 예쁩니다.

잔지바르는 인도양의 흑진주라고 불립니다. 바다가 예쁘고 하얀 모래 사장이 끝없이 펼쳐진 해안이 많아요. 인근 바다는 열대 산호초가 많아 스노클링이나 다이빙 여행을 하기에 좋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스노클링을 좋아합니다. 작년에 오키나와 후루자마미 섬에서 스노클링을 즐긴 후, 이번 여행에도 스노클링을 위한 일정을 넣었어요. 그래서 잔지바르를 선택했고요.

 

3. 여행자 편의성이 뛰어납니다.

자, 역사적 유적도 있고, 바다도 예쁘고, 유럽의 휴양객을 불러모을 운명을 타고난 섬이지요. 안전하고, 인심 좋고, 물가도 싸고. 여행하기 편리한 모든 시설이 다 갖춰져 있어요. 여행 다니기 좋아하는 유럽 여행자들이 이미 기반 시설 확보에 기여를 했으니까요.

물론 한국인 여행자 입장에서는 이런 장점이 빛이 좀 바랩니다. 우리에겐 발리나 보라카이, 푸켓이 있으니까요. 거리가 멀고 물가도 동남아보다 좀 더 비싸기에 굳이 이렇게 멀리까지 올 수 있을까 싶어요. 

다만 이것이 역으로 장점이 될 수도 있지요. 잔지바르에 있는 1주일 동안, 한국인 여행자를 단 한사람도 만나지 못했어요. 만약 호젓한 휴양지에 가서 남국의 낭만과 정취를 즐기고 싶은 연예인이라면, 저는 이곳을 추천할 것 같아요. 한국인은커녕 아시아인도 보기 드문 곳이거든요. 익명의 존재로 쉴 수 있는 곳이지요. 한국인 단체 여행객이 없는 곳을 찾는 분이라면, 강추! ^^ 

잔지바르에는 다양한 당일치기 여행 상품이 있습니다. 첫날에는 그중 가장 저렴하고 만만한 투어를 다녀왔어요. 프리즌 아일랜드 투어. 스톤타운에서 30분 정도 배를 타고 가는 여행입니다.

 

비용은 30불. 여기에 스노클링 장비 대여가 포함됩니다. 섬에 가서는 대왕거북을 볼 수 있는데요. 5불 정도 입장료를 따로 냅니다.

 

거북이의 등에 수명이 적혀 있는데요. 100살이 넘은 어르신도 있습니다.

프리즌 아일랜드는 원래 술탄의 영지였어요. 한때 감옥으로 쓰이던 건물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감옥 섬이라는 이름이... 이렇게 예쁜 섬을 수형자들의 유배지로 썼다니...

잔지바르의 사진을 카톡으로 보냈더니, 마님과 따님이 허걱!

"뭐야! 아프리카 간다 하고는 어디 남태평양 섬에 혼자 놀러간 거 아냐?"

ㅎㅎㅎ 아프리카 간다고 하고는 잔지바르에서 나홀로 휴양... 

(가끔 혼자만의 시간은 필요하니까요. ^^)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을 동영상으로 편집하는 게 재미있네요. 예전에 이 정도 뮤비 하나 만들려면 밤을 새워 편집했는데, 이제 휴대폰으로 5분 뚝닥뚝닥하면 뮤비 한편이 완성. 

세상 참 편해졌어요...

그런데 장래에 피디들은 뭘해서 먹고 사나?

조연출 때 밤을 새우며 배운 기술이 이렇게 간편화 보편화 되어버렸는데...

 

블로그 덕에 모두가 여행작가가 되고

유튜브 덕에 모두가 여행 다큐 피디가 되는 날이 왔어요.

이렇게 좋은 세상은, 역시 즐기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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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10일차 여행기

 

오늘은 아루샤에서 잔지바르로 이동하는 날입니다. 탄자니아에서 세렝게티나 킬리만자로보다 더 가고 싶었던 곳이 잔지바르입니다. 2015년 남미 여행 다닐 때, 다음 여행 행선지는 아프리카라고 정해두었어요. 아프리카는 유럽에서 가까워 유럽인들이 자주 가는 곳이지요. 유럽 배낭족을 만날 때마다 물어봤어요.

"아프리카에서는 어디가 좋아?"

'잔지바르'라는 답이 많이 나왔어요.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곳인데, 여행의 고수들이 추천하니 가보고 싶었어요.

아침에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아루샤 공항으로 갔어요. 도착하니 높은 관제탑 건물도 없고 논에 비료 뿌릴 것 같은 경비행기 몇대가 서 있는 작은 활주로예요... 

'이 친구, 잘못 데려온 거 아냐?'

물어보니, 여기가 아루샤 공항이 맞대요. 항공사 카운터도 보이지 않아요. 입구에 서 있던 직원이 손으로 쓴 보딩 표를 나눠줍니다. 컴퓨터도 없고 그냥 노트를 보고 일을 합니다.

 

손으로 써주는 보딩패스에는 좌석 번호도 없어요. 점점 불안해집니다...

저게 잔지바르 가는 비행기랍니다. 12인승 경비행기. 

"지금 장난해?!"

인터넷 영어 사이트를 통해 항공권을 예약했더니, 맙소사... ㅠㅠ

조종사가 한 명 있고요. 승무원은 없습니다. 화장실도 없고요. 기장석 옆자리에 앉은 사람도 승객이에요. 유럽 여행자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습니다.

"승객 여러분, 오늘 여러분을 모실 부기장입니다."

일행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기장이 말을 잇습니다.

"자, 지금부터 휴대폰을 꺼내세요. 이륙 장면을 촬영해보세요. 이 비행기는 전자제어장치가 없어, 비행 내내 전자 기기의 사용이 전면 허용됩니다."

구식 프로펠러 비행기라 휴대폰 전자파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에 더 불안해집니다... ㅠㅠ

 

 

예전에 이렇게 작은 비행기를 탄 적이 있어요. 아르헨티나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했을 때...

'설마 오늘도 이렇게 되는 건 아니겠지?'

비행기 아래로, 문득 푸른 인도양 바다가 펼쳐집니다.

산호초와 섬들이 가깝게 보입니다. 경비행기는 고도가 낮아 경치를 보기 좋네요. 물론 그만큼 추락하는 시간도 짧겠지만... ㅠㅠ 1시간 남짓 비행이 끝나고 잔지바르에 도착했어요.

착륙과 동시에 기내에서 박수가 절로 터져나옵니다. "살았다!"

약간 무섭긴 했지만, 나름 재미난 경험이었어요. 비행기를 타고 나니, 일정을 짤 때, 제가 품었던 의문이 풀렸습니다.

 

1년 전 탄자니아 항공권을 검색하니, 다르 에스 살람 (탄자니아 제1의 도시) 왕복 항공권이 120만원이더군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요. 다르 에스 살람에서 사파리를 하는 아루샤까지 가는데 버스로 10시간 넘게 걸립니다. 사파리를 하고 다시 잔지바르로 가려면, 다르 에스 살람까지 다시 버스로 10시간, 다음날 아침에 잔지바르 가는 페리를 타고 넘어가는데 다시 반나절, 이틀이 꼬박 소요됩니다. 즉 3일을 이동에만 쓰는 일정이에요. 20일 중 3일을 날리면 너무 아깝죠.

아루샤 IN, 잔지바르 OUT 항공권을 찾아봤어요. 아루샤 공항이 분명 스카이스캐너에 뜨는데, 다구간 항공권은 없는 거예요. 결국 인근 킬리만자로 공항으로 IN해서 다르 에스 살람에서 OUT하는 항공권을 샀습니다. '왜 아루샤에서 잔지바르 가는 국제선이 없지?' 와보니까 알겠어요. 아루샤 공항은 그냥 국내선 경비행기 전용인 거죠.

만약 탄자니아 여행을 계획중이라면, 다구간 항공권으로

1, 인천 - 킬리만자로

2, 킬리만자로 - 잔지바르

3, 잔지바르 - 인천을 끊으실 것을 권합니다. 이게 사파리도 즐기고, 휴양지도 즐기는 가장 이상적인 루트인 것 같아요. 저는 이런 사정을 몰라 돈이 많이 들었어요.  (다시 항공권 끊느라 수십만원 더 들고, 아루샤 - 잔지바르 따로 끊느라 20만원 더 들었어요. ㅠㅠ 역시 정보가 돈인데 말이지요...)

인도양의 흑진주 잔지바르. 유럽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프리카의 휴양지.

다음엔, 본격 잔지바르 여행기가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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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책 한권 외워봤니?'를 낸 후, 주위에서 책 홍보를 많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세상에 고마운 인연이 참 많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닫는 중인데요. 입사동기인 신동진 아나운서도 온라인에 글을 올렸어요.

 

'김민식 PD를 소개합니다

저와 입사 동기이자 '뉴논스톱' '내조의 여왕' 등을 연출한 MBC의 스타 PD 인데요

공대 출신이면서 동시통역 대학원을 독학으로 들어간 특이한 이력도 지녔습니다

입사 초 둘이 꽤나 어울려 놀았는데 이 친구가 노래방가선 빠른 랩부분을 영어로 즉흥적으로 바꿔 부르고 락카페에선 캔맥주 하나면 몇시간이고 춤추며 노는걸 보곤 그 끼에 깜짝 놀라기도 했죠. 그때 그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멋있는 남자들은 가만있어도 되지만 난 이렇게 노력해야만 여자들이 놀아주거든"

물론 자폭개그인 거죠.

음악 리허설땐 가수들 맨앞에서 브레이크 댄스를 추고, '뉴논스톱'에선 태국 현지인으로 뱀장수 피리를 불며 카메오 출연하고 프로그램은 승승장구하고...천직이란게 저런거구나 생각들었죠. 그런 그가 5년 전 6개월 파업때 노조 부위원장 직을 맡아 온몸을 던지고 6개월 정직에 징역 2년 구형까지 받았었습니다. 그가 또 말했습니다

"가만 있으면 연출하고 내 일만 하면서 편했을텐데 부위원장 제의왔을때 회사에서 내가 받았던 사랑 때문에 거절할 수 없었어."

실제나 일할때나 시트콤같이 유쾌한 친구, 재능기부를 늘 실천하는 친구, 자기 PR을 확실히 하면서도 사랑받는 친구, 1년에 250권의 책을 읽는 독서광.

파업 이후 비제작부서에 있는 동안에도 그 열정으로 이번에 베스트셀러를 출간한걸 보고 또 한번 놀랍니다. 10년 후 그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집니다.'

 

아, 신동진 아나운서가 이렇게 칭찬을 해주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친구가 올린 글에서 한가지 정정 신청을 해야겠군요. 

"멋있는 남자들은 가만있어도 되지만 난 이렇게 노력해야만 여자들이 놀아주거든"에서

'너처럼'이 빠졌어요. 제가 했던 말은 

"너처럼 멋있는 남자들은 가만있어도 되지만..." 이었거든요. ^^

 

 

총각 시절, 신동진 아나운서랑 많이 놀았어요. 신동진이랑 22 미팅도 나갔는데, 주위에서 저를 미친놈보듯 하더군요. "넌 무슨 생각으로 신동진이랑 미팅을 나가냐?" 신동진 아나는 정말 잘 생겼거든요. 건강하고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까지, 비주얼에서 저와 극과 극의 비교를 보여줍니다. 

저는 잘생긴 친구를 보면 외모로 경쟁하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서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미팅이나 락카페에 분위기를 띄우는데 최선을 다합니다. 개그에, 랩에, 댄스에,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 온몸을 던졌어요. 저처럼 생긴 사람은 적어도 서비스 정신이라도 투철해야하거든요.^^  

신동진 아나운서가 제 결혼식의 사회를 봐줬는데요. 아버님은 지금도 동진이의 근황을 묻곤 합니다. "니 친구가 요즘은 TV에서 잘 안보이더라?" 그 멋진 친구가 파업을 열심히 하고, 아나운서 협회장도 하고, 후배들 편에 서서 싸우다, 지금은 타부서로 쫓겨났다고, 사정 설명은 차마 못 하고 있어요. (아버지는 아직 제가 드라마국에서 쫓겨난 것도 모르십니다. 인터넷을 안하시는 게 다행이지요.^^)

 

저같은 피디는 괜찮아요. 어차피 화면에 안 나오니까. (화면에 나오는 직종이라면 저는 입사를 못 했겠지요. ^^) 기자나 아나운서들은 방송에서 안 보이면 티가 납니다. 주위에서 어른들이 걱정하시고 그래요... 그들이 방송에서 모습을 감춘 지 벌써 5년입니다. 그들의 모습을 하루빨리 MBC에서 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친구의 글을 읽다 문득, 한때 제가 춤 추는 걸 무척 즐겼다는 걸 떠올렸어요. 결혼하고 화류계 생활을 정리하는 통에, 요즘은 책만 읽고 삽니다. 책벌레가 한때 춤에 빠진 사연도 재미있는데요. 그 이야기는 글로 하면 재미가 없고, 실제 춤을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서 오프라인 모임을 위해 아껴두고 있습니다.

 

댓글부대 정모에 오시면, 제가 무대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4월 9일 일요일 오후 2시.

가톨릭청년회관 다리, 니콜라오홀 대강당 (2호선 홍대입구역 2번 출구)

(자세한  위치 안내는 아래 댓글부대 모집공고를 참고하세요.)

 

댓글부대 장소 공지는 아래 글을 참고하시고요.

2017/03/18 - [공짜 영어 스쿨/댓글부대 모집공고] - 댓글부대 모집공고 (3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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