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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영어 스쿨

영어보다 모국어가 더 중요하다.

by 김민식pd 2015. 11. 10.
얼마전 수명 연장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연사가 조선 시대 평균 수명을 표로 보여주었다. 왕들의 평균 수명은 45세, 양반은 60세인데 비해, 내시는 무려 70세였다. 나는 그 통계를 보고 '왕은 왕비와 후궁이 여럿이고, 양반은 하나인데, 내시는 마누라가 없구나. 부인의 수가 수명에 반비례하네. 마누라가 수명 단축의 원인인가?' 하고 생각했다. 이건 전형적인 해석의 오류이다. ㅋㅋㅋㅋㅋ

강연하시는 박사님 말씀으로는, 테스토스테론 과다가 수명 단축을 불러온단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경쟁이 치열하거나 스트레스가 많을 때 수치가 올라간다. 자연속에서도 치열한 경쟁 속에 사는 개체일수록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올라간단다. 남성 호르몬이 적은 내시는 그래서 오래 사는 것이고. 아, 그렇구나. 경쟁이 심하면 수명이 짧아지는구나, 마누라의 수와는 관계가 없구나...

현상을 바르게 해석하는 게 중요하다.

사람들은 내가 MBC PD가 된게 영어를 잘해서 라고 생각한다. 그건 아니다. 영어랑 담쌓고 살다가 피디가 된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나도 사실 영어보다 국어 실력 덕에 피디가 되었다. 나는 영어보다 한국어를 훨씬 더 잘한다. (진짜다. ^^) 영어는 MBC 입사 1차 필기시험 과목 국어 영어 상식 셋 중 하나일 뿐이다. 1차를 통과하느냐 마느냐가 중요하지 1차 시험 성적은 이후 전형에 별 영향이 없다. 2차 면접과 3차 합숙 평가는 오로지 말하기와 글쓰기로 결판이 난다.

많은 사람들이 취업에 영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영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국어인 한국어 발표 능력과 논술 능력이다. 실제로 회사에 입사해서 더 많이 쓰이는 것도 한국어 말하기와 쓰기다.

통역대학원에 입학하고 자주 들은 질문은, '너의 A언어는 뭐냐?' 였다. 통역사에게는 A언어와 B언어가 있다. A는 모국어다. B는 외국어다. 영어 통역사라면 A가 한국어고, B가 영어다. 이때 두 언어 사이의 비중이 중요하다. 보통 통역사라고 하면 한국어와 영어 실력이 비슷할 거라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일단 한국어와 영어 실력이 5대5라면 그 사람은 그냥 모국어가 없는 사람이다. 둘 다 외국어인 셈이다.

나처럼 20대에 영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사람은 한국어와 영어 사용 능력의 비중이 8대2 정도다. 통역대학원에 가서 2년간 심하게 노력 하면(^^) 7대3 정도로 영어를 끌어올릴 수 있다. 7대3이면 통역사로 일하는 데 무리가 없다.

통역대학원 졸업한 지 20년이 되어간다. 요즘도 가끔 동기들이 모이는데 나가보면 현역 통역사로 아직 일하는 친구는 이제 몇 없다. 대부분 나나 내 아내처럼 통역사로 시작해서 다른 전문분야로 옮겨서 그곳에서 커리어를 쌓아간다. (아내는 통역사로 컨설팅 회사에 나갔는데 그곳에서 컨설턴트 제의를 받고 컨설턴트로 전직했다.) 아직 통역사로 일하는 친구들을 보면 의외로 A언어가 한국어인 친구들이 많다. 어른이 되어 영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친구들이다. 통역사가 동원되는 국제학술회의에는 다양한 주제들이 심도 깊게 논의된다. 핵물리학부터 지구 환경 변화까지 다양한 주제가 논해지기에 통역사들은 기초 지식을 학습하고 가야 한다. 강력한 모국어가 없다면 관련 분야의 논리를 이해할 때 난관에 부닺힌다. 영어로 먹고 사는 영어 동시통역사의 경우에게도 한국어 사용 능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하물며 일반 직장의 경우라면야!

모국어 사용 능력이 취업에만 필요한게 아니다. 연애 한번 하려고 해도 절실하다. 일단 사람을 만난 자리에서 상대를 즐겁게 해주는 화술도 갖춰야하고, 절로 웃음이 지어지는 촌철살인의 문자를 보낼 수 있는 글쟁이로서의 센스도 필요하다. 연애는 소통 위에 형성된다. 말발과 글발, 모두 필요한 게 연애다.

이런 모국어 실력은 언제 갖춰지는가? 바로 언어형성기다.

언어형성기 : 개인의 언어적인 특징이 형성되는 시기. 특히 발음, 강세, 억양과 관련된 습관이 고정되는 4~12세를 이른다. (네이버 국어사전)

언어형성기에는 모국어 사용능력을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가 모국어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시기에 억지로 외국어를 주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언어형성기에 외국어와 모국어를 한꺼번에 공부하면, 모국어가 흔들린다. 우리나라 중고교의 경우, 한국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진학 후 시험 볼 때마다 고생한다.

시험을 본다는 것은 한국어 지문을 읽고 이해하는 일이다. 역사나 과학같은 단순과목에서는 출제자가 파놓은 미묘한 지문의 차이나 선택 항목의 차이를 해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안되면 성적이 안 나오고, 아이는 자긍심을 잃고 학습에 대한 흥미도 떨어지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한국어 사용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모국어는 힘들게 공부할 필요가 없다. 부모가 아이에게 외국어 사용 능력을 물려주려면 돈이 일단 좀 든다. 아이와의 마찰도 각오해야 한다.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지, 누가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어려서 국어 교사이자 학교 도서실 사서 선생님이던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학교 도서실이나 동네 도서관을 자주 다녔다. 어머니 덕에 책 읽는 습관을 얻었다. 무엇보다 책을 읽을 때마다 행복했다. 나의 한국어 사용 능력은 책 읽는 습관 덕에 늘었다.

예전에 순천 기적의 도서관에 갔을 때 그곳 선생님에게 물어보았다.

"아이에게 책 읽는 습관을 물려주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매일 하루 20분씩 책을 읽어주세요."

어린 아이에게 독서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부모가 책을 소리내어 읽어주는 게 최고란다. 나는 그후로 둘째 민서가 잠들기 전에 한 권, 일어나서 한 권, 매일 두번씩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 민서는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 혼자 글을 읽을 수 있지만 그래도 나는 아이가 읽어달라고 하면 항상 읽어준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대부분의 부모는 책 읽어주는 것을 그만 둔다. "네가 직접 읽어."

글자를 읽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은 다르다. 글자를 읽을 줄 안다고 독서의 즐거움을 바로 깨치는 건 아니다. 책을 좋아하기 위해서는 ㄱㄴㄷㄹ 구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건 바로 이야기를 즐기는 능력이다. 아빠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을 청하는 것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다. 요즘 아빠와 아이 사이의 교감 형성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바빠도 꼭 한번 실천해보시라. 아이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야기를 즐기고 책을 읽는 습관을 키워주는 것 만한 육아가 없다.

4세에서 12세 사이의 아이라면, 영어 학원에 보내지말라. 밤마다 책을 읽어주고 주말이면 손 잡고 도서관을 다니시라. 그게 최선의 육아다.

몽골 여행 갔을 때, 민서와 민지.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세상 사는 즐거움을 물려주고 싶다. 내가 즐기는 여행과 독서. 재미나고 즐거운 것만 물려주고 싶은 것, 그게 아빠로서 내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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