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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영어 스쿨

영어 조기 교육, 언제가 좋을까?

by 김민식pd 2015. 11. 9.

통역사 출신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물어본다.

"영어, 언제부터 공부하셨어요?"

진짜 묻고 싶은 질문은 이것일 거다.

"아이가 영어를 잘하려면, 영어 조기 교육은 언제부터 시키는 게 좋을까요?"

지난 글에서 밝혔듯이 나는 영어를 초등학교 6학년에 시작했다. 그전엔 ABC도 몰랐다. 영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건 대학 입학하고 나서다. 나는 외국어 조기 교육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3가지다.

 

1. 경제적 비용이 너무 크다.

다들 외국어는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어릴 때, 외국어를 배우게 하려고 미국 생활까지 시도한다. 엄마가 아이 데리고 1년 다녀오면 1억 정도 든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조기 교육은 말그대로 조기 교육이다. 그 효과가 지속하려면 추가 경비가 발생한다. 여덟살에 외국에서 1년 살다오면 영어는 늘 것이다. 그 시절에는 언어를 스펀지처럼 흡수하니까. 돌아오면 한국어를 흡수하는 것도 그만큼 빠르다. 결국 영어를 잊어버린다. 1억이 그냥 날아간다. 억울해서 다시 하루 3시간씩 영어 학원을 보낸다. 귀국자녀반이라고 아예 집중 코스도 있다. 한 달에 100만원은 족히 나간다. 그래도 미국 다시 보내는 것 보다는 싸다. 보통은 아이가 미국으로 다시 보내달라고 한다. 학원이 없고 자유로운 미국 학교를 다녀보면 한국의 교육 현실은 지옥이다. 결국 아이는 다시 유학을 떠나고 아빠와는 영영 이산가족이 된다. 나중에 만나도 영어가 안되는 아빠와 한국어를 잊은 아이의 상봉은 그냥 남북 이산 가족 상봉처럼 애틋하기만 할 뿐이다. 영어 때문에 헤어져사는 이산가족이 너무 많다.

    

일전에 '돈 버는 선택 vs. 돈 버리는 선택'이라는 경제책을 소개한 적이 있다. 경제란 선택의 학문이다. 어떤 선택을 해야 비용 대비 효과가 클까? 그 책에 보면 이런 딜레마가 나온다.

'자녀 학비 마련이 먼저일까' vs. '은퇴 자금 마련이 먼저일까'

 

 

답은 추락하는 비행기를 타고 있는 경우와 같다.

 

비행기 탑승 중에 위기가 발생해 기내에 산소가 부족해지면 산소마스크가 내려온다. 안내서를 보면 이때 마스크는 부모가 먼저 쓰라고 지시되어 있다. 다급한 마음에 아이에게 마스크를 씌우려다 부모가 산소 부족으로 정신을 잃으면 부모와 아이 둘 다 죽는다. 무조건 부모 먼저 마스크를 쓴 후, 그 다음에 아이를 돌봐야 한다. 교육비 지출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먼저 살아야한다. 노후 대비 자금을 먼저 마련한 후, 여력이 있을 때 조기유학도 보내고 영어 학원도 보내는 거다. 당장 빚에 허덕이면서 아이의 영어 공부에 지출할 이유가 없다.

 

아이들 학군 때문에 빚내서 집사고, 사교육비 지출 때문에 변변한 저축도 못했는데 부동산 버블이 터지기라도 한다면, 자식에게 빚밖에 물려줄 게 없다. 90세 까지 사는 세상이다. 어찌어찌 빚은 갚았다 해도, 퇴직 후 40년을 소득 없는 상태로 살아야한다. 자녀의 취업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자신의 교육비로 부모의 노후 자금을 끌어쓴 탓에 가난한 부모에게 경제적 도움도 기대하지 못한다면, 자식이 꿈을 펼칠 수 있을까? 부모가 가난해서 자식에게 결혼도 창업도 도와줄 수 없다면 정말 우울할 것이다. 자식에게 필요한 건 영어 조기 교육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부모다. 어려서 매달 영어 학원 보낸다고 돈 쓴거, 애들이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그건 부모 욕심에 억지로 시킨 일이지. 영어 학원비로 노후 연금이나 하나 더 드시라.

 

영어는 20대에 혼자 독학해도 충분히 잘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다들 외국어는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할까? 거기에 돈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자본주의 사회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누구나 목청을 높여 떠든다. 영어 조기 교육에는 돈이 많이 든다. 그걸로 돈버는 사람도 많다. 영어 조기 교육의 필요성을 목청 높여 외치는 사람은 많아도, 굳이 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사람은 없다. 돈이 되지도 않는 일을 굳이 애써 떠드는 사람은 없다.

 

기본적으로 사교육은 부모의 불안을 키우고 그걸로 먹고 사는 시장이다. 영어 공부 안 시키면 자식의 미래에 큰 일 날 것 같지만, 영어 공부 안 시키면 망하는 건 사교육 시장 뿐이다. 나이 스물에, 요즘같이 영어 공부하기 좋은 세상에, 인터넷에 무료 영어 사이트가 널려있는데, 어려서 조기 유학 못 가서 내 인생이 요모양 요꼴이라고 부모 원망하는 자식 있으면... 그냥 냅둬라. 뭘 해줘도 원망할 거다. 그런 자식은.

 

다섯살 터울의 여동생이 하나 있다. 아버지는 내게 그렇게 매질을 해가며 영어 교과서를 외우게 하고는 정작 여동생에게는 관심이 없으셨다. 그래서 동생은 매맞으며 교과서를 외우지는 않았다. 말로는 아버지가 늙어서 때릴 힘이 없었다고 하셨지만, 보수적인 아버지는 딸의 영어 교육에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정작 아들은 일하면서 영어를 별로 쓰지도 않는데. 기껏해야, 큐! 액션! 컷트!를 외칠 뿐이다. 캐나다로 이민 간 여동생이 영어 쓸일은 훨씬 더 많은데.

 

지난번 아버지 모시고 미국 여행 갔을 때 동생과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났다. 그때보니 동생이 나보다 영어를 더 잘하더라. 어떻게 된 걸까?

 

(요세미티 공원에서 아버지와 여동생. 아들이랑 여행할 때보다 훨씬 표정이 밝으신 아버지. 역시 딸이 최고인게야.)

성신여대 통계학과를 졸업한 동생은 한동안 무역회사에서 일했다. 대학 시절에도 통계가 적성에 안 맞는다고 힘들어하더니, 회사 다니면서 정말 괴로워하더라. 이걸 평생 하고 살아야하나? 결국엔 고민 끝에 회사를 그만두더라. 어떻게 살 것인가 방황하는 동생에게 200만원을 쥐어줬다. '너 이 돈 갖고 유럽이나 한번 다녀와라.' 1995년에는 200만원이면 유럽 배낭 여행이 가능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 동생은 눈빛이 달라졌다. 삶에 목표가 생기고 의욕이 생겼다. 한번도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던 아이가 나가서 외국 생활을 해보니 좋았던 것이다. 아버지가 그렇게 때려도 공부하지 않던 아이가 혼자 영어 학원을 다니더라. 그러더니 결국엔 캐나다 어학연수까지 떠났다. 돌아와서 결혼하고 잘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더라. 지금은 전세계에서 살기 좋기로 손꼽히는 도시 밴쿠버에서 아들을 키우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동생은 항상 고마워한다. 내가 준 200만원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었다고. 결국 인생은 스스로의 결정으로 바꿀 때 가장 강력한 변환점을 만나게 된다.

 

동생의 경우에서 보더라도, 영어 공부는 대학 졸업하고 시작해도 늦지 않다. 아이 영어 유치원 보낼 돈 있으면, 그 돈으로 나중에 배낭여행이나 보내주시라. 아이가 훨씬 더 감사할 것이다.

 

단순히 돈 아끼자고 영어 조기 교육을 시키지 말라는 얘기인가? 아니다. 두번째, 세번째 이유가 있다. 그리고, 아이의 삶의 질을 생각한다면, 아이의 경쟁력을 생각한다면, 다음 이유가 훨씬 더 중요하다. 영어 조기 교육을 시키지 않아야 아이가 행복하다.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예전에 쓴 '돈 버는 선택 vs. 돈 버리는 선택' 글을 읽으시려면

 

2013/09/11 - [공짜 PD 스쿨/짠돌이 독서 일기] - 돈 버는 선택 vs. 돈 버리는 선택

 

 

제 여동생 블로그에 가보면 미국 자동차 캠핑 여행 이야기며 북한 아이들 구호 활동하는 이야기며 재미난 글이 많다. 캐나다 이민 생활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한번 방문해볼만 해요.

http://firststepscanad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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