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테남 테북의 차이에 대해 아느냐고 묻더라. 강남 강북도 아니고, 테남 테북? 같은 강남 안에서도 테헤란로 이북과 테헤란로 이남 사는 부모들의 성향이 다르다는 거다.
압구정동이나 청담동 같은 테헤란로 이북에는 강남 전통의 부자들이 산다. 재개발로 큰 돈을 번 땅부자들. 대치동이나 도곡동 같은 테헤란로 이남에는 전문직들이 산다. 학벌 좋은 고액 연봉 전문직들. 대치동 사람들에게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곧 교육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이의 교육에 모든 자원을 집중한다. 대치동이나 도곡동에 사교육이 발달하는 이유다. 혹은 학원이 많은 곳으로 전문직 부모들이 몰려가는 이유거나. 압구정동 사는 강남 전통의 부자들은 굳이 아이의 공부에 올인하지 않는다. 좋은 대학에 못 가면, 유학을 보내면 되고, 갔다와서 취직이 안되면 카페 하나 차려주면 된다. 전문직 부모는 아이에게 좋은 학벌을 대물림하고 싶어 아이를 입시 지옥으로 내몰고, 땅부자 부모는 아이에게 터 좋은 건물을 물려주고 임대인 천국으로 보낸다. 이렇게 부모는 자신의 가치관을 아이에게 대물림한다.
내가 어려서 가장 듣기 싫어했던 말이 하나 있다.
"맞으면서 큰 아이, 커서 폭력 남편, 폭력 아버지 된다."
나는 어려서 아버지에게 심하게 맞았다. 어머니가 말리면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
"부모가 자식 공부시키다 애를 잡으면 그건 죄가 아니다."
맞으면서 들으면 정말 무서운 얘기다. 하루는 이러다 정말 맞아죽을 것 같아서 맞다가 도망갔다. 중학생이 되니까 달리기는 좀 되더라. 매를 휘두르며 쫓아오는 아버지를 피해 울산 태화다리 넘어 도망갔다. 때리려는 의지보다 살려는 의지가 더 클 수 밖에 없으니까, 그 달리기에서는 내가 이겼다. 울산역 가서 기차타고 경주 작은 집까지 도망갔다. 물론 얼마 안가 다시 잡혀오긴 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팬티 바람으로 맞았다. 도망 못 가게 아예 옷을 벗기고 때리신 거다. 맞아 죽는 게 나을까, 쪽팔려 죽는 게 나을까. 맞아죽는게 낫다고 생각했나 보다. 팬티 바람으로 도망간 적은 없었으니까.
어른이 되고 나서 고민이 되더라. 아이에게 무엇을 물려주어야 할까? 물려줄 건물은 없다. ^^ 사교육에 올인할 돈도 없다. 그렇다고 아이를 직접 가르치느라 매를 들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물려줄게 없어도 그렇지, 폭력을 대물림할 수는 없으니까. 아이를 혼내지 않고 즐겁게 외국어를 공부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래서 찾아냈다. 아빠와 딸이 놀듯이 함께 하는 외국어 공부 방법.
큰 딸 민지 초등학교 6학년 방학 때,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민지는 아내가 유학한 시절, 미국에서 유치원을 다녀서 영어는 기초를 닦아둔 상태였다. 민지나 나나 둘 다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려고 중국어를 선택했다. 아이에게 아빠와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한다는 자부심을 심어주고 싶었다. 아이가 귀찮아하거나 싫어해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냥 내가 열심히 외웠다. 설거지를 할 때도 휴대폰 스피커로 중국어 회화 mp3를 틀어놓고 보란듯이 따라했다.
시중에 나온 외국어 책 중에서 나는 동양문고의 '가장 쉬운 외국어 첫걸음의 모든 것' 시리즈를 좋아한다. 13000원 주고 책을 사면 미니 오디오북이랑 오디오 CD랑 동영상 강좌 파일이 무료로 제공된다. 이 3가지 부록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외국어 공부하는데 최고다.
미니 오디오북 뒤표지에 보면 이렇게 적혀있다. '자투리 시간 활용 능력이 회화 공부의 경쟁력!' 지당하신 말씀이다. 외국어는 주말 하루 날잡아 종일 공부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매일 매일 조금씩 일정한 시간을 내어 연습해야 실력이 는다. 왜? 언어는 이해하는 학문이 아니라 습관으로 반복해야 익혀지는 것이므로.
민지와 함께 공부한 '가장 쉬운 중국어 첫걸음의 모든 것' 교재를 바탕으로, 자투리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알려드리겠다.
1. 교재 학습 (30분)
아침에 30분 일찍 일어나 교재 본문을 보며 공부한다. 하루에 한 과씩 진도를 나간다. 문법 설명이 있고, 예문이 있고, 단원 마지막에는 회화 상황이 하나 있다. 자, 나의 목표는 이 회화 상황을 하루에 하나씩 외우는 것이다. 문법이나 단어에는 신경쓰지 않는다. 시험을 보는게 목표가 아니니까 그런데 스트레스 받을 필요없다. 그냥 치매방지용으로 매일 대화를 한 편씩 외운다고 생각한다.
2. 동영상 강의 (20분)
그런데 문장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암기가 좀 어렵기는 하다. 처음 접한 언어를 책만 읽어서 공부하기도 좀 부담스럽다. 그럴 때는 동영상 강의를 본다. 출근하는 전철에서 핸드폰으로 동영상 강의를 본다. 동양문고 무료 동영상 강의, 참 좋다. 아침에 일어나 교재로 공부한 내용을 동영상 강의로 복습하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3. 회화 암송 (20분)
전철에서 내려 회사까지 걸어가는 동안 이어폰을 끼고 그날의 회화를 mp3로 반복 청취한다. 회사에서 일하다 시간이 나면, 부록으로 딸려온 손바닥만한 미니 오디오북을 꺼내어 회화문을 외운다. 어느 정도 자신이 붙으면 한국어 번역문을 보며 외국어 문장을 떠올려본다. mp3를 스마트폰으로 플레이하며 중얼중얼 따라 읽다보면 지나가던 사람이 미친 사람보듯 할 수 있다. 난 그럴때면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한다. 나는 지금 중국인 친구와 통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절대 미친 사람 아니다. ^^
(언제 어디서든 핸드북과 핸드폰만 있다면 공부가 가능하다!)
4. 복습 (20분)
매일 매일 새로운 상황을 외우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건 기존에 외운 내용을 다시 복습하는 것이다. 틈만 나면 혼자서 중얼 중얼 회화 상황을 불러내서 암송해야 한다. 나는 핸드폰 메모장에 단원 제목만 메모해둔다. 인사하기, 물건사기, 전화걸기 등. 매일 반복하다보면, 상황 제목만 봐도 한 페이지 짜리 회화가 술술 흘러나온다. 밥 먹고 쉬는 시간에, 일하다 쉬는 시간에, 메모장을 보며 한 단원씩 굴려본다. 저녁에 퇴근하고 집에 가서 그날 외운 단원을 확인해본다. 다 외웠으면 전날까지 외운 것을 1과부터 다시 암송해본다. 이 학습법의 진가는 복리의 마법마냥 매일 매일 조금씩 이자가 붙듯 실력이 늘어나다 궁극에는 책 한 권을 통째로 외우는 고수가 되는 데 있다.
이렇게 하루 한 시간 반, 자투리 시간만 투자해도 충분히 기초 회화는 정복할 수 있다. 민지의 방학 한 달, 우리는 중국어 첫걸음을 완전히 외웠다. 나중에 집사람 앞에서 둘이서 책 한권을 통째로 외우는 모습을 보여주니 아내가 정말 좋아하더라. 짠돌이 남편 덕에 학원비 아꼈다고. ^^ 나도 민지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한 덕에 완주할 수 있었다. 아빠 체면상 중간에 포기할 수 없었다.
내친 김에 중국어 중급회화에도 도전하자! 중급편 책을 2권 주문했다. 도착한 책을 보고 민지의 표정이 급 어두워지더라. 중급편부터는 표현이 복잡하고 어려워서 외우기 쉽지 않다. 음... 그래, 그만하지 뭐. 바로 포기했다. 어차피 중국어를 끝까지 가르치려는 게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책 한권을 외우는 게 생각보다 수월하다는 것을 아이에게 보여주려 한거니까, 여기까지만. 외국어도 좋지만, 딸과의 관계가 더 소중하니까. ^^ 민지가 어른이 된 어느날, 필요한 순간에 기억나는 든든한 마술지팡이 하나 챙겨준 걸로 나는 만족한다. 내게 영어 암기법이 그랬듯이 말이다.
페이스북 친구 한 분이 지난번 글에 댓글을 달았다.
'저희 어머니도 항상 새 학년 시작 전 자식들에게 영어 교과서를 외우게 하셨어요...
단 3과까지만... 학기 초 자신감만 갖게 되면 알아서 한다시며...
때리시는 대신 본인이 직접 줄줄 외우시면서 모범을 보이셨지요...
설거지하며 4형제의 영어 교과서를 암기하시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정말 멋진 분이시다. 부모가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도 지식이나 기술보다 태도여야 한다. 삶을 사는 성실한 자세, 인생을 즐기는 모습, 그걸 물려주어야한다. 어려서 내게 괴로움을 준 책 몽땅 외우기, 그걸 아이에게 강요하는 게 미안해서 여행을 선물하기도 한다. 민지랑 라오스도 가고,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도 가고, 몽골에 말타러 가기도 한다. 내가 가장 즐기는 것을 아이에게 주고 싶다.
몽골에서 낙타 트레킹하는 민지.
아이와 여행을 즐기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어려서 아버지에게 배운 영어 덕에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사는 구나.
그런데 왜 나는 늘 아이들이랑 여행을 다니지?
내게 사랑을 더 주신 분은 아버지였는데 말이야.
민지에게 중국어 공부를 시키면서 깨달은 게 있다. '아, 내가 하는 거랑, 아이에게 시키는 거랑은 많이 다르구나. 훨씬 더 힘들고 어렵구나.' 이렇게 힘든 걸 아버지는 내게 어떻게 시키셨을까. 때리느라 팔도 많이 아프셨을텐데...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을까... 아들이 머리가 나빠서 고생 많이 하셨겠네... 그런 생각 끝에 아버지 모시고 여행 다니게 된거다. 뉴욕에도 모시고 가고 그러는거다.
나, 절대 효자 아니다. ^^
부모의 마음은 내가 자식 키워보니 알겠더라. 옛말 그른거 하나도 없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시간에는
그렇다면 아이에게 외국어 공부를 시킬 가장 좋은 시기는 언제인가?
라는 주제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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