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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20세기의 마지막 문턱에서

by 김민식pd 2014. 12. 27.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유난히 힘들었던 한 해였습니다. 세월을 거꾸로 거슬러 사는 듯 퇴행과 퇴보가 이어지는 한 해였습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라는 폴란드 여류시인이 있습니다.  1923년에 폴란드에서 태어나 2차대전과 유대인 학살을 목격한 시인이 나이들어 쓴 시  한 수를 2014년의 막바지에 다시 읽어봅니다. 

 

20세기의 마지막 문턱에서

 

우리의 20세기는 이전의 다른 세기들보다

훨씬 더 발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입증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모든 연도에 일련번호가 매겨졌다.

흔들리는 걸음걸이,

숨 가쁜 호흡.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들이

이미 너무도 많이 일어났다.

또한 기대했던 수많은 일들이

발생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20세기는 행복을 향해서,

따뜻한 봄을 향해서 전진할 예정이었다.

 

공포는 골짜기 너머, 산 너머,

멀리멀리 내동댕이칠 예정이었다.

진실은 거짓보다 한발 앞서

목표 지점에 도달할 예정이었다.

 

예기치 못했던 몇 가지 비극이

우리를 엄습했다.

전쟁과 굶주림,

그와 유사한 다른 여러 재앙들.......

 

무방비 상태의 무력한 사람들을

존중할 예정이었다.

타인에 대한 신뢰,

혹은 그에 준하는 다른 가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인생을 즐기려고 마음먹은 사람은

결코 실현되지 못할 임무를

떠맡은 것과 매한가지.

 

어리석다는 건 결코 우스운 일이 아니다.

지혜롭다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희망, 

그것은 더 이상 저 풋풋한 어린 소녀도, 

그와 비슷한 그 무엇도 아니리니, 애석하기 짝이 없구나.

 

바야흐로 신은 인간이 선하면서, 동시에 강인할 수 있다는 사실에

수긍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선함과 강함은 여전히 공존하지 못한다.

선한 인간은 독하지 못하고, 독한 인간은 선하지 않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누군가 내게 편지로 물었다.

이것은 내가 다른 이들에게 묻고 싶었던

바로 그 질문이었다.

 

또다시,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앞에서 내내 말했듯이,

이 순진하기 짝이 없는 질문보다

더 절박한 질문은 없다.

 

'끝과 시작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중에서

 

 

힘든 한 해를 보내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 물음을 가슴에 품고

새해를 맞이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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