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이상 DVD 구매를 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DVD 수집이 좀 시들해졌다. 있는 영화라도, 확장판 나오면 또 사고, 얼티미트 에디션 나오면 또 사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 블루레이 디스크가 나오더라. 타이틀을 새로 다 장만해야할 판이고, 심지어 플레이어나 프로젝터, 스피커까지 모든 하드웨어까지 블루레이용으로 바꾸자니 도무지 감당이 안 되었다.
즐기자고 시작한 취미에 점점 노예가 되어가는 게 아닐까? 어느 순간 하드웨어 사양을 신경 쓰고 소프트웨어 구색을 맞추는데 공들이다보니 영화를 보는 즐거움은 줄어든 느낌이었다. 영화는 원래 극장에서 봐야 제 맛인데, 그걸 굳이 집에서 보겠다고 스트레스 받는 게 무슨 의미일까.
얼마 전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라나다에서 만난 어느 교민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스페인 사람에게 재산이 얼마냐고 물어보면 이제까지 모은 돈을 얘기하지 않아요. 대신 평생 스스로를 위해 쓴 돈을 말해줍니다.”
어려서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은 후, 소유를 늘리기보다 존재를 살찌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는데 살다보니 어느새 나도 수집광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영화광으로 돌아가기 위해 DVD 수집을 그만두었다. 아무리 비싼 홈시어터라도 극장 시스템은 절대 못 따라가고 영화는 원래 극장에서 봐야 제 맛이다.
그래서 난 요즘 다양한 극장 나들이를 즐긴다. 부산 국제 영화제며,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도 찾아다니고, 영화 잡지를 뒤져 여성 인권 영화제나 SF 영상 축제도 찾아다닌다. 멀티플렉스를 찾아 흥행작을 챙겨보며 대중의 취향을 알아보고, 아트하우스 모모나 아트나인 같은 예술영화 전용관을 찾아 마니아로서 나의 취향을 더욱 벼린다. 최근 발견한 곳은 상암동 시네마테크인데, 아마 늙어 은퇴한 후에는 여기서 죽치고 매일 매일 무료관람을 즐길 것 같다.
“이보게, 여기가 내 전용 홈시어터야.”
지속가능한 덕후질은 결국 돈 한 푼 안 드는 취미생활이 아닌가.
(다음편에 계속 ^^)
부천만화축제갔다가 코난을 발견하고 기쁜 마음에 찰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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