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로맨틱 코미디 전문 연출가다. 그렇다면 내 직업은 사람을 웃기는 일일까, 울리는 일일까? 이걸 딱 한마디로 정의하기 참 어려운 것이, 요즘 세상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청춘 시트콤 ‘뉴논스톱’으로 입봉해서 ‘논스톱 3’ ‘레인보우 로망스’ 등 일일 시트콤만 3년 반을 연출했다. 내가 직접 만든 에피소드만 700편이 넘는다. 드라마국으로 옮기고 나서 3년 동안 4편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나름 다작하는 연출이라 생각하는데 아직 피디로서는 부족한 점이 많은가 보다. 작년 한 해 MBC 노조 편성제작부문 부위원장으로 일하며 ‘서늘한 간담회’라는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나는 꼼수다’에 나가 사장님의 업적을 칭송했더니 누가 그러더라. ‘PD님이 만드신 시트콤이나 드라마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PD님이 나오는 팟캐스트는 다 챙겨 들어요.’ 연출보다 출연으로 이름을 날리는 피디, 이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예능 피디로 10년을 일했지만, 뮤직 비디오는 만들어보지 못했다. 늘 신나는 뮤직 비디오 한 편 찍는 게 소원이었는데, 파업 덕분에 꿈을 이뤘다. 조합원들과 함께 ‘MBC 프리덤’ 뮤직 비디오를 만들어 유튜브 조회수 30만을 넘겼다. 그 공을 회사로부터 인정받아 정직 6개월의 징계까지 받았으니 황송할 따름이다. 당시 어떤 드라마국 부장님을 만났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네가 전에 드라마 만들 때는 아쉬운 점이 좀 있었는데, 이번에 ‘MBC 프리덤’을 보니 연출이 많이 늘었더라.” 드라마가 아니라 파업 홍보 영상으로 연출력을 인정받는 피디, 이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인생을 살며 나의 로망 중 하나가 ‘피디 저널’에 칼럼을 연재하는 일이었다. PD 연합회에서 원고 청탁이 온다는 건 연출로 이름을 날렸다는 뜻이지 않겠는가. 언젠가 ‘김민식 피디가 말하는 연출론’, 혹은 ‘대박 드라마 제작후기’, 이런 글을 쓰고 싶었는데, 정직 6개월에, 대기 발령에, 교육 발령으로 당분간 드라마 연출이 요원한 상태에서 칼럼 청탁이 들어오니, 타이밍 한번 참 난감하다. 이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연출력을 갈고 닦아 반드시 코미디 연출로 복귀하겠다는 일념으로 MBC 아카데미에서 열심히 공부중인데, 얼마 전 뉴스데스크를 보고 그만 좌절하고 말았다. ‘보수 · 진보 체질 따로 있나?’라는 제목으로 ‘알통이 굵으면 보수고, 알통이 가늘면 진보 성향을 보인다.’고 보도하는 걸 보고 나름 한 코미디 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만 약코가 팍 죽고 말았다. 기자가 뉴스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저렇게 큰 웃음을 안겨줄 수 있다니, 나 같이 어설픈 코미디 피디는 어디 기죽어 살겠나. 이런 개그에 가까운 뉴스가 내가 사랑하는 MBC에서 방송된다는 현실을 보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정말 감이 안 온다.
내가 생각하는 코미디 영화 중 최고의 장면은 ‘인생은 아름다워’의 마지막 장면이다. 아들 죠슈아를 살리기 위해 나치 수용소 생활을 숨바꼭질 놀이로 바꿔버린 귀도는 마지막에 숨은 아들이 보는 앞에서 독일 병사에게 끌려간다. 잡혀가는 아빠를 보고 숨바꼭질에서 이겼다는 생각에 아이는 환하게 웃고, 귀도 역시 장난스런 웃음으로 화답하는데, 그걸 보는 관객은 눈물을 참기 힘들다. 예전에 ‘유태인의 유머’라는 책을 읽었는데, 상당수가 나치 수용소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그들은 유머 감각을 갈고 닦았나보다. 하긴 힘든 시절, 웃음마저 빼앗긴다면 희망이 어디 있으랴.
앞으로 한동안 어려운 시기가 계속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세월은 우리 모두에게 유머 감각을 키워 줄 절호의 찬스가 될 것이다. 힘든 때일수록 웃음의 힘으로 버텨야 하지 않겠는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때는 일단 웃고 보련다. 코미디 피디는 우리 시대의 광대라고 생각한다. 광대가 웃음을 잃어버리면, 희망은 어디에 있겠는가.
피디 저널 연재 칼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지난 주 갑작스레 눈이 내렸을 때 주말에 혼자 북한산을 올랐습니다.
교통 체증에 출퇴근 혼란에, 눈이 주는 불편도 있지만, 이렇게 늘 다니던 둘레길에 멋진 설경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고난은 역시 새로운 기회의 다른 말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