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나온 나의 첫 책을 읽은 아내의 소감.
"그래서 느낌이 어때?"
"조금 놀랐어."
"왜?"
"생각보다 잘 썼더라고."
그러고 끝이었다. '애개? 겨우 이런 반응이야?' 싶겠지만 평소 마님을 아는 나로서는 분에 넘치는 과찬을 들은 기분이다. 마님은 일단 기준점이 무척 높으신 분이다. (남편으로 나를 선택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얼마나 미적감각이 까다로운 지. ^^ 너무 크게 웃지들 마십쇼!) 무엇보다 아내는 나를 15년 가까이 보아온 사람이다. 그중 12년은 같이 살았고. 나를 가장 속속들이 잘 아는 사람이고, 나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기대치를 넘기기는 쉽지 않다. 마님이 빈 말로 칭찬한 거 아니냐고? 우리 마님은 절대 빈 말 같은 거 모르신다. 내가 보기엔 단점인데 본인은 정직이 자신의 최고 미덕인줄 안다. '같이 사는 사람한테는 가끔 빈말이라도 칭찬 좀 해주라구!'
마님의 반응에, 신이 나서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뭘 그렇게 놀래'
'뭘 그렇게 놀래 내가 한다면 하는 사람인 거 몰라?
그렇게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지 마
뭘 그렇게 놀래 내가 빈말 안 하는 사람인 거 몰라
뭐라도 본 듯한 표정 짓고 서 있지를 마
더이상 예전에 니가 알던 내가 아니야'
나의 블로그가 70점이라면 거기에 30점을 보탠 것이 나의 책이다. 블로그는 순수하게 나만의 생각을 모은 것이지만 책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기획자의 충고, 편집자의 교정, 그린이의 일러스트, 디자이너의 작업이 보태어졌다. 평소 블로그로 나의 글을 꾸준히 보아온 사람에게도 나는 책을 꼭 한번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대놓고 책 선전 아니냐고? 맞다. 남이 쓴 책도 좋다고 추천하는 공간에 본인 책 좀 소개하겠다는데 너무 흉보지 마시길.) 블로그와 책은 느낌이 다르다. 일단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고, 훨씬 쉽게 술술 잘 읽힌다. 블로그의 400편의 글을 다 읽는 것보다 책으로 보는 게 시간 효율이 훨씬 뛰어나다. 블로그를 처음부터 탐독하지 않은 분이라면 책을 읽는게 이득이다. 블로그 애독자에게는 평소 라디오로 즐겨듣던 노래가 드디어 시디로 발매된 느낌, 내가 직접 소장할 수 있는 형태로 발매된 느낌이라 더욱 탐이 날 것이다. 이승욱 디자이너님이 공들여 만든 덕분에 '소장판' 혹은 '애장판'의 느낌이 난다. 결국 모두를 위해 꼭 추천하고 싶다. 책으로 만나는 '공짜로 즐기는 세상'! ^^
아내는 내 글의 수준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출판을 위해 어떤 전문가들이 합류했는지는 모르고 있다. 고로 아내의 기대치를 넘긴건 내가 아니라 이 책에 힘을 보태준 분들이다. 나는 70점 짜리 인생이다. 당장 낙제점은 아니지만 부족한 점이 많은 점수다. 나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사람을 만나는 것, 그게 내가 하는 일이다. 나보다 기획력이 뛰어난 최지은 편집자, 나보다 글솜씨가 뛰어난 양은영 에디터, 나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이우일 선생, 나보다 디자인을 잘 하는 이승욱 디자이너. 나의 기량이 일취월장한 것이 아니라 이들 덕분에 괄목상대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사람의 인생이 바뀌듯, 책의 운명도 어떤 독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 책을 집어드는 모든 분들께 잘 부탁드리고 싶다. 꼭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인연으로 만났으면 좋겠다. 책, 잘 부탁드립니다.
저자 사인회, 하지 않냐고 트위터에서 물어보시는데, 그런거 할만큼 유명한 작가가 아니라서... 다만 책을 가져오시면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싸인을 해드린다. 인연이 닿는다면, 오늘 저녁 여의도 사학연금회관 2층 강연장 입구에서 만날 수 있겠지. 6시 40분부터 50분까지 기다린 후, 들어가서 법륜 스님 말씀을 들을 생각이다. 늦게 오신 분을 위해 끝나고 2층 로비에서 어슬렁 거릴 용의도 있다. 법륜 스님 강연회에 묻어가는 셀프 저자 사인회...
이런게 인생이다. 내 능력이 부족하면, 잘 난 누군가에게 묻어가는 것.
오늘 저녁 셀프 저자 사인회~ 덤으로 힐링캠프에서 본 법륜 스님의 행복한 강연회를 즐기실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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