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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김봉석의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by 김민식pd 2012. 9. 13.

김봉석 평론가가 쓴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을 보고 느낀 점, '잉여는 나의 힘!' ^^

 

드라마 피디로서 스토리텔링은 무엇일까 늘 고민하며 산다. 지금은 직업이 되었으니 고민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이게 나의 삶의 낙이다. 어려서부터 늘 만화 보고 소설 읽고 영화보는 게 낙이었으니까.

 

학교 다닐 때, 보고싶은 만화가 있으면 아이들에게 100원 씩 거뒀다. 열 명에게 돈을 걷어 만화방에 가서 만화 열 권을 빌려와서 야간자습 시간에 돌아가며 읽었다. 직장에 와서는 디비디 다섯장을 가입비 대신 내면 매주 2장씩 공짜로 빌려보는 모임에 들어갔다. 회원 100명이 모이면 500장의 라이브러리가 완성되니까. 매일 만화를 열 권 씩 읽고, 매주 영화를 두 편 씩 보고, 나는 지독한 덕후로서 잉여로운 삶을 살았다. 그러다보니 드라마 피디가 된 거다.

 

덕후는 덕후를 알아본다. 김봉석 평론가가 쓴 영화 평론이나 만화 이야기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그 역시 제대로 된 덕후다. 덕후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미치는 사람이다.

 

김봉석 평론가가 최근에 하드보일드 소설에 대한 책을 한 권 냈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책 권하는 책, '아까운 책 2012'에서 SF 마니아인 나는 SF를 권했는데, 봉석님은 하드보일드 소설을 권했다. 김봉석님의 글을 읽어보면 맛집 전문 블로거가 군침 도는 메뉴를 소개하듯, 책에 대한 입맛이 쫙 당기도록 글을 쓴다. 소설가가 얼마나 신선한 소재를 썼는지, 조리 솜씨는 얼마나 숙련되었는지, 문체가 뜨거운지 차가운지, 직접 음미하고 맛본 38권의 하드보일드 소설에 대해 맛깔난 품평을 올렸다. 하드보일드를 평소에 즐기지 않는 사람도 웬지 하드보일드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될 것 같다.

 

작년에 인도 네팔을 1달간 여행할 때 늘 채식만 했다. 현지에서 소고기 요리를 먹고 탈이 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네팔은 전기 사정이 안 좋아 냉장고가 자주 꺼진다. 힌두교 요리사는 소고기를 절대 먹지 않으니까, 재료가 신선한지, 맛은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요리사 자신이 먹지 않는 요리는 절대 시키지 않는 것, 그게 여행의 지혜다.

 

평론가가 맛깔나게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이유는 딱 하나다. 그 맛을 스스로 즐기기 때문이다. 맛없는 음식을 억지로 만드는 것은 괴로운 작업이고, 그것은 요리의 맛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주로 좋아하는 것을 읽고 보고 들으며, 가급적 좋아하는 것에 대해 글을 쓰며 살고 있다.'라고 김봉석님은 자신을 소개한다. 이것은 모든 창작자가 배워야 할 자세다. 드라마 피디 입사를 위해 자기소개서에 드라마 평을 쓰려는 피디 지망생은 꼭 한번 김봉석님의 문체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봉석님의 작품 비평에는 기본적으로 장르에 대한 애정이 깔려있다. 애정없이 머리로 냉철하게 분석하는 글보다는 뜨거운 열정과 낭만이 담긴 설레이는 비평이 읽기에 더 즐겁다. 얼마나 영리하게 드라마를 만들 것인지 쓰기보다 얼마나 뜨거운 가슴으로 드라마를 사랑하는지 알려달라. 드라마 조연출 5년 동안은 지옥의 강행군이다. 매일 3시간씩 자면서 달린다.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버티기 힘든 직업이다.

 

무엇을 만드는 사람이란, 무엇을 미친듯이 즐겨 본 사람, 즉 잉여의 삶을 즐기며 자신만의 취향을 갈고 닦은 사람이 아닐까? 김봉석 님의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을 읽고 다시 실감했다. '잉여는 창작자의 힘!' 

 

잉여로서 사는 즐거움, 그 즐거움이 언젠가는 여러분이 만드는 무언가에 묻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공지: '스토리텔링'에 대한 강연을 합니다.

다음주 목요일 이화여대 ECC관. 저녁 8시.

학교 상관없이 참여할 수 있다니, 남학생도 입장가?!

예전 학창 시절에는 이런 기회 있으면 무조건 달려갔는데~^^ 

설레이는 마음으로 1주일간 즐거운 수다를 준비해보겠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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