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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2030세대의 노동 이야기

by 김민식pd 2018. 5. 7.

2018년 5월 1일부로 승진했습니다. 부끄럽게도 부장이 되었습니다. 한때는 사원으로 정년퇴직하는 게 꿈이었는데 말입니다. 2010년 차장으로 승진한 후, 7년 동안 승진에서 매번 누락되었어요. 노동조합을 탈퇴한 후배들이 저를 추월해 부장을 달고 국장을 다는 걸 보고 결심했어요. 평사원으로 MBC를 정년퇴직하는 것을 꿈으로 삼겠다고. 세상이 바뀌고 이번에 승진했어요. 이번 인사의 기준은 하나입니다. 입사 년도. 96년에 입사한 제 동기들은 근무 경력 20년을 넘기고 다 함께 부장을 달았어요. 어느 누구도 뒤처지지 않고, 앞서가지도 않는 인사, 좋네요.

생각해보면 MBC에 입사한 것이 제 인생 두번째 행운이에요. (최고의 행운은 20년 전 아내를 만난 일이고요. 갑자기 이런 멘트, 죄송합니당~ 저도 살아야하니까요... ^^) 평생 함께 하고 싶은 회사를 만나는 것도 행운이지요. 어쩌면 IMF가 터지기 전에 입사를 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96년도에는 MBC에서 신입 TV PD를 한 해 15명을 뽑았거든요. 제가 그 중 한 명이었고요. 97년도말 IMF가 터졌고, 그 이후 대규모 공채는 사라졌어요. 한 해에 2명을 뽑거나, 안 뽑거나 그랬지요...ㅠㅠ 저는 막차를 탄 행운아였던 거예요. 그런 점에서 행운에 늘 감사하며 살고 있어요. 지금의 2030세대는 이게 쉽지 않은 일이지요. 세상이 바뀌고 있고 기업 환경이 바뀌고 있어요. 이런 변화 속에서 가장 힘든 건 어쩌면 20대의 일자리 찾기가 아닐까 싶어요. 좋은 일자리를 만나는 게 쉽지 않은 일이 되었거든요. 

'생존, 그 이상을 꿈꾸는 2030세대 노동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책이 있어요.

<자비 없네 잡이 없어> (김민아, 김빛나, 김정민, 송지혜, 주수원, 최태섭, 홍진아, 황세원 / 서해문집)

노동문제 전문가들이 나눈 대담이 책에 실려있는데요. 이 대목이 눈길을 끌었어요.


김민아 : 지금 20~30대는 조직에서 보내는 시간에 대한 개념이 달라요. 이전 세대의 경우, 신입 사원 때는 정신없이 바쁘게 일해도 직급이 올라갈수록 여유가 생겼죠. 처음에는 단순하고 사소한 일을 많이 하지만 승진할수록 중요한 의사 결정에 참여하게 되고요. 그러니 초기에 손해를 봐도 나중에 벌충된다 생각하고 견딜 수 있었어요. 지금은 그런 생각을 안 하죠. 당장 내일 나갈 수 있으니까요.

황세원 : 맞아요. 지금 세대는 '오늘 하는 일이 의미가 있느냐' '지금 배우는 이 내용이 나를 성장시켜 주느냐'를 중요하게 봐요. 안정적인 직장이라 해도 정년까지 다니려고 들어간 건 아니니까, 의미 없는 조직 문화나 관행은 배울 생각이 없어요. 이런 생각이 깔려 있다면, 부장님은 떡볶이 사 오라 하고 과장님은 붕어빵 사 오라 해서 두 가지 간식을 다 사느라고 뛰어다니는 일상을 견딜 수 없겠죠. 

김용진 : 그런 변화의 분기점이 1990년대 말에 있었던 IMF 외환 위기가 아닌가 싶어요. '종신 고용'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무너지고, 조직이 나를 지켜 주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지는 과정을 우리 모두가 지켜봤으니까요. 

(위의 책 123쪽)


조직이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깨달음, 이것이 지금 2030 세대가 느끼는 공통점이 아닐까 싶어요. 김보통 작가나 서늘한 여름밤의 퇴사 이야기를 읽다보면 보편적으로 느껴지는 정서에요. '현재 4050 세대가 이끄는 조직 문화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이다. 2030세대가 이걸 견디며 일할 이유가 없다.' 

고도 성장기를 지내온 세대와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간의 괴리가 아닐까요? 고도 성장기는 투자를 하면 더 큰 보상이 돌아와요. 빚을 내어 집을 사면 아파트 값이 오르고, 무리해서 아이를 유학을 보내면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 있는... 이제는 달라졌어요. 저성장 시대는 투자한 만큼 오르지 않아요. 내일의 확실한 보상이 없기에, 현재를 즐기는 게 더 중요하지요. 억지로 괴로움을 참고 살 이유가 사라진 거에요.

책을 읽다 최근에 승진한 제게 부끄러움을 안겨준 글귀를 만났어요.

 

김용진 : 20~30대 직원들은 "10년 전에 들어온 저 선배보다 내가 능력도 더 뛰어나고 일도 더 많이 하는데 왜 연공서열대로 승진해야 하나?" 싶고, "성과급이 뭐가 잘못됐죠?"라고 묻기도 해요. 노동조합으로서는 조합원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 때 가장 난감합니다. 성과 평가를 강화하면 당장은 능력 순서대로 인정받을 것 같지만 결국은 직원 간의 단절이 심해지고 노동조합의 조직이 어려워지니까요. 그러면 전체적인 근로 조건이 하락하고, 개개인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밖에 없어요.

황세원 : 우리 사회에는 이미 '개인이 자기 계발하고, 자기 전문성 쌓아서 근로조건을 높이면 된다'는 식의 생각이 퍼진 것 같아요. 요즘 라디오에서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를 실천하자면서 '똑똑하게 일하고 집에 빨리 가라'는 내용의 공익광고가 나오던데요, 결국 노동시간의 문제도 개인이 노력하기에 달렸다는 뜻으로 들려서 불편하더라고요.

김용진 : 개인이 노력해서 될 문제면 이렇게 노동시간이 길어지지도 않았겠죠. 쓸데없는 의전, 회의, 보고 등과 같은 문화를 없애는 것이 우선입니다. 대체 인력이 없어서 휴가도 못 갈 정도로 빡빡하게 인력 운영을 하는 것도 그렇고요. 이런 문제들은 개인들이 해결할 수 없어요. 노동조합을 통해 단체 협상을 하는 것이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위의 책 127쪽)


젊은 세대에게는 하는 일없이 월급만 많이 받는 꼰대로 보일까 두렵습니다. 2030세대의 노동 이야기지만, 4050세대가 꼭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나은 조직문화를 위해서 우리는 배워야 할 점이 많습니다. 

취업에 있어 제가 만난 최고의 행운은 노동조합이 강한 MBC를 만난 일입니다. 평사원으로 정년퇴직하겠다는 꿈을 꿀 수 있는 것도 노동조합 덕분에 가능한 거죠. 부장이나 관리자가 되지 않아도 회사가 함부로 나를 자르지 못한다는 신념이 있거든요. 노동조합은 나를 지켜주고, 나는 그 노동조합을 지키고. 이런 상호간의 든든한 믿음이 저의 회사 생활을 즐겁게 만들어준 원동력입니다.

나는 노동조합을 지키고, 그 노동조합은 더 나은 근무여건을 만들고 나를 지켜주는, 그런 세상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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