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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그러니 당신도...

by 김민식pd 2018. 4. 30.

어떤 사람이 궁금하면 그 사람이 쓴 책을 읽습니다. <아만자>를 그린 만화가 김보통을 보면서,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회식과 야근으로 사람을 힘들게 하는 대기업을 다니다, 문득 사표를 던집니다. 만화가로 데뷔한 후에는 화실에서 일할 어시스턴트를 구하며 하루 6시간 근무, 야근 없음, 회식 없음을 내겁니다. 이건 참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어떻게 이런 삶을 살게 되었을까? 궁금한 마음에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을 읽었어요.

김보통의 20대 중에서 인상적인 경험이 2가지 있어요. 하나는 터키 시골 배낭여행이고 또 하나는 군대 시절에 갔던 요양원 봉사 활동입니다. 터키에서 만난 순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책을 읽는 도중, 당장이라도 터키로 떠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켰어요. 여행을 즐기면 겁이 없어지는 걸까요? 어쩌면 20대 배낭여행의 추억이 직장을 박차고 나오는 힘이 아니었을까... 저의 경우는 그랬었거든요. ^^ 힘들 땐 여행을 가고, 여행의 즐거움으로 새로운 용기를 충전해서 돌아옵니다. 김보통씨도 대기업을 다니다 그만둘 때,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지요.  

요양원에서 만난 할머니들 이야기도 인상적이에요.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들이 수녀님들의 보살핌속에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곳입니다. 군인으로 봉사차 나갔다가 몸이 불편한 할머니에게 식사 수발을 들어요. 하루종일 침대 위에서 누워 지내는 할머니의 모습이 안쓰러워 군인 김보통은 이런 말을 합니다. "언젠가 제대하면, 봉고차를 사서 할머니들 모시고 놀러다닐게요." 그랬더니 할머니 말씀. 


"나는, 열일곱에 시집을 갔거든. 그때부터 놀아본 적이 없어. 젊어서는 시부모님 모시느라 놀질 못했어. 아침 챙겨드리고 밭에 나가 온종일 일하다 들어와서 다시 밥 차려드렸지. 그렇게 일만 하다 자식을 낳고서는 자식들 키우느라 놀질 못했어. 애를 낳고도 쉴 수가 있나. 등에 업고 밭일 하고, 또 밥 차리고, 다시 또 일하고. 시부모님 돌아가시고서도 남편 뒷바라지에 자식들 수발에 하나도 놀지를 못하고 일만 하다 늙어서 이렇게 돼버렸어. 마음 같아선 금강산도 가보고 싶고, 노래를 부르면서 들로 산으로 뛰놀러 다니고 싶은데, 이렇게 됐어. 누워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괴물이 되어버렸어. 그러니까 젊은이도. 놀아."

(중략)

이제 와 그녀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녀들의 몫까지 놀아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금강산은 못 가지만, 들로 산으로 바다로 강으로 계곡으로 평야로 항상 그녀들을 기리며, 그 몫까지 필사적으로 놀아야겠다고 나는 다짐한다.

그러니, 당신도.

(위의 책 196쪽)


김보통의 힘은 '즐거움'에서 나옵니다. 괴로움을 견디며 직장생활을 할 이유가 없고, 함께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에게 과다노동을 강요할 필요는 없어요. 책을 보고 느꼈어요. 어른이 된다는 건 서글픈 일인데, '좋은' 어른이 되기는 쉽지 않은 일이구나...

저는 잘 노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노는 게 남는 것이거든요. 그러니,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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