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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짠돌이 육아 일기

사랑의 매란 없다

by 김민식pd 2018. 9. 17.

울산공고 훈육주임이셨던 아버지에게 참 많이 맞았어요. 저 어릴 때는 학교에서 체벌이 가능했거든요. 평소 근무 시간 단련된 매질을 아들에게 시전하는건지, 아들에게 연습삼아 때린 매로 학교에서 써먹는 건지 늘 헷갈렸어요. 중요한 건, 울산공고 문제아는 고교 3년만 견디면 되지만, 아들인 저는 끝없이 맞았다는 거지요. 대학에 올라가서도 밥을 먹다 아버지에게 말대꾸했다가 앉은 자리에서 뺨을 맞은 적도 있어요.

어느날 어머니가 학교에서 가져온 '사랑의 매'가 기억이 납니다. 굵은 참나무 몽둥이에 '사랑의 매'라고 적혀있었어요. 경찰에서 일하는 학부모가 학교에 기증한 것인데요, 이게 한번 맞으면 시퍼런 멍이 듭니다. 선생님들이 써보고 '이건 너무 심한 것 같다'고 폐기하자는 말이 나왔어요. 어머니가 '그럼 기왕 버릴 거, 집에 가져가서 쓰자'면서 가지고 오셨어요. (학생들에게는 차마 못쓰니 아들에게 쓰자... ㅠㅠ 부부 교사 아들로 사는 거, 참 힘들어요...) 무게가 솔찮게 나가는 몽둥이라 한번 맞으면 타격감이 컸어요. 종아리에 굵은 멍이 며칠이 가도 가시지 않는 걸 보고, '음, 저건 좀 심하네...'라고 하시고는 방망이를 깎아서 얇게 만들었는데요. 그래도 너무 아팠어요... 성적표가 나오면 거의 공포에 휩싸였어요. 맞는 것도 괴롭지만, 이번에는 얼마나 맞을까? 생각하는 게 더 무서웠어요. 매는 맞는 그 순간보다, 맞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더 무섭거든요. 

<이상한 정상 가족> (김희경 / 동아시아)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아동학대는 극히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고의적 폭력이라기보다 보통 사람들의 우발적 체벌이 통제력을 잃고 치달은 결과라는 것이 그간 숱한 분석과 연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평소 체벌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극도의 양육 스트레스를 겪을 때 이 스트레스가 촉매제가 되어 학대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체벌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양육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상황에서도 학대로 치닫는 경우가 없었다.'

(위의 책 27쪽)


'사랑의 매'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서 20년을 맞고 내린 결론이에요. 내가 맞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비행 청소년이라서? 나쁜 짓을 해서? 그냥 아버지 마음에 안 찼던 거에요. 의대 갈 성적은 안 되고, 공부도 못하면서 허구헌날 소설을 끼고 사는 게 싫어서 그랬던 거예요. 체벌은 학대로 이어지기 쉬워요. 아동학대와 체벌의 뿌리는 똑같고요. 잘못한 아이는 맞아야 한다는 생각. 그게 잘못이라고 믿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린 시절 매를 맞은 덕에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믿기도 하는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매 맞는 아이에게는 폭력성이 내재되고 강화됩니다. 제가 책을 읽는 이유는, 내 속에 있을지 모르는 폭력성을 교화하기 위해서에요. 스무살에 결심했어요. '나는 절대 아버지같은 사람은 되지 않겠다'고. 이제까지 맞으면서 죽도록 괴로웠으니, 앞으로는 무조건 즐겁고 행복하게 살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아버지는 당신 인생의 불만을 자식에게 풀었어요. 교사라는 당신 직업에 대한 불만은 아들의 진로에 대한 끝없는 간섭으로 표출되었어요.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좋은 직업인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자신의 삶을 긍정하지 못하는 부모가 아이의 삶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거든요. 타인일 수 밖에 없는 자식에게 욕심을 내기보다 자신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사는 편이 낫습니다. 자기계발이란 나를 향하는 것이지 남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아니거든요.


'기성세대는 그 시대의 제한된 문화적 환경에서 자녀를 가르쳤다.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다고 해서 그 방법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체벌의 유해성을 연구해온 발달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거쇼프는 이를 자동차 안전벨트에 비유해서 설명했다. 성인의 상당수는 자동차 안전벨트가 없던 시절에 자랐다. 하지만 누구도 안전벨트가 없었던 덕분에 내가 잘 자랄 수 있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안전벨트가 없었음에도 불고하고 무탈하게 자랐다고 말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부모의 체벌 덕분에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부모의 체벌에도 불구하고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위의 책 36쪽)  

 2015년 말부터 2017년까지 저는 송출실에서 근무했습니다. 주조정실 업무 중 하나는 뉴스 모니터링인데요, 보기에 힘든 뉴스가 많았어요. 정치적인 뉴스가 아니라 사회 뉴스도 그랬는데, 그중에는 아동 학대 사건 관련 뉴스가 많았지요. 2015년 12월 인천에서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집에 갇혀 학대를 당하던 열한 살 소녀가 탈출한 게 시작이었어요. 동네 슈퍼 CCTV 영상에 찍힌 아이의 모습은 충격이었어요. 그제야 당시 정부가 장기결석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였고요. 뒤늦게 찾아낸 끔찍한 학대 사망 사건들이 2016년 초까지 뉴스에 줄지어 나왔지요. 

정부에서 대책을 내놓고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취약가정을 중점 지원하겠다고 했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취약가정이란 '한부모, 조손, 이혼, 재혼, 다문화, 새터민, 장애인 가정'을 예로 들고 있었어요. 소위 '정상가족'이 아닌 다른 형태의 가족들을 말한 거죠. 당시 저자 김희경 씨와 동료들은 언론보도를 모니터링하면서 아동학대 사건들의 유형을 정리하던 중인데, 그 중 정부가 중점 지원 대상이라고 분류한 장애인, 새터민, 다문화, 조손 가정은 단 하나도 없었대요. 문제는 가족의 형태가 아니라는 거지요. 사회관계 단절이나 게임 중독이 더 위험하다는 군요.


어려서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있었어요. '매 맞으며 자란 아이, 커서 폭력 남편 폭력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가 이 책을 보셨으면 저를 때리지 않았을까요? 그런 일은 없었을 거예요. 아버지는 평생 책 한 권 안 읽는 분이라서... 

<이상한 정상 가족>

엄마 아빠들이 봐야할 책입니다. '가벼운 체벌을 할 뿐, 그 정도로 심하지는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먼저 봐야해요.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의 체벌 문화가 바뀌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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