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여행, 2일차
킬리만자로 산자락에 자리한 '모시'는 킬리만자로 산행의 출발지입니다. 이곳에서 가이드를 구하고, 산행 장비를 렌트하고, 킬리만자로 공략을 준비하지요. 저는 첫날엔 마을의 분위기를 살펴보고 싶었어요. 어떤 도시에 가서 그곳 주민의 생활상을 보려면 시장에 가는 게 제일 좋습니다. 현지 시장에 가면 그곳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을 볼 수 있어요.
학교 가는 아이들.
여동생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가는 아이를 보니, 문득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거리의 풍경도 왠지 1970년대 한국 같아요. 꼭 어린 시절 추억속으로 시간 여행을 온 것 같네요.
여행은 때론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시간의 이동 같아요.
모시 중앙 시장에 갔더니 아프리카에 온 기분이 나는군요. 관광객은 안 보이고 현지인들만 가득한 전통 시장이에요.
시장을 구경하는데, 누가 부르더군요.
"헬로, 화이트 피플!"
오토바이 택시 기사가 호객 행위를 하는 거예요. 누구한테 그러나 둘러봤더니 저한테 하는 말이었어요.
저 그때 거짓말 살짝 보태서 눈물이 날 뻔 했잖아요. 감동 먹어서... 태어나서 하얗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봅니다. 고교 시절 별명이 좀 많았는데, 그 중 하나가 '쌔시쪼'였어요. '쌔카맣고 시커멓고 쪼그맣다'의 줄임말.
고교 시절 때 몸무게가 50킬로였어요, 키 173에. 빼빼마른 깜둥이라고 놀리는 친구도 있었어요. 그랬던 제가, 여기 오니까, 화이트 피플이라고... 엉엉엉...
"나보고 아프리카 깜둥이라고 놀렸던 놈들 다 나와!"
아프리카에 오길 정말 잘 했어요. 내 피부가 검은 편이 아니라는 걸 처음 알았어요. ^^ 역시 인생은 상대적이라는 거! 그 무엇도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거!
시장 구경을 하다, 문득 92년 유럽 배낭 여행 때 일화가 생각납니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된 후, 사람들은 유럽 여행을 가서 각자 꿈의 장소를 찾아갑니다. 클래식 팬은 비엔나 음악당을 가고, 쇼핑을 좋아하는 친구는 프랑스 샹제리제 거리를 찾아가고, 저같은 영화광은 유럽의 영화 촬영지를 찾아다니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배낭족들끼리 서로의 로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중 한 명은 자신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누드촌이라고 했어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충만한 사춘기 시절, 동네 목욕탕 여탕 창문만 봐도 가슴이 설레고 그랬는데, '북유럽 노르웨이 어딘가에 가면 누드촌이 있는데, 거기서는 모든 여자가 벌거벗고 다닌다더라!' 그 얘기를 듣고 유럽의 누드촌에 가는 꿈을 키웠다고. ^^
나중에 그 친구를 다시 만났어요.
"그래서, 누드촌엔 가 봤냐?"
"응, 가봤어."
"누디스트 캠프에 우리같은 여행자도 들여보내줘?"
"응, 대신 조건이 있었어. 나도 벗어야 한다고. 뭐, 그 정도는 각오했으니까."
다들 숨을 죽였어요."그래서 어땠어?"
"그 나체촌에 아시아인이 온 건, 내가 처음이었대. 그래서 다들 달려나와 신기해하며 구경하더군. 모든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니까, 정작 나는 시선을 어디 둘 곳이 없더라고. 그래서 눈 깔고 바닥만 쳐다보고 다니다 그냥 나왔지 뭐."
ㅋㅋㅋㅋㅋ
아, 구경하러 갔다가, 실컷 구경만 시켜주고 온 거지요.
"저기 봐, 처음 보는 나체족인데? 오, 황인종이다, 황인종! 구경 가자!"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
모시 센트럴 마켓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두 현지인 청년이 넋을 놓고 절 쳐다보는 거예요. '왜 저러나?' 다시 보니, 마사이족 원주민 의상을 입고 있었어요. 마사이 촌놈들이 장보러 나왔다가 황인종을 처음 본 겁니다. 정말 넋을 놓고 보더라고요. 구경갔다가 구경거리가 된 기분... ^^ (그래, 내 피부가 좀 뽀얗긴 하지... ㅋㅋㅋ)
시장에서 점심도 먹고, 과일도 샀어요. 시장 음식은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습니다. 우리돈 2000원이면 아주 푸짐하게 먹어요. 열대 과일도 싸고 맛있어요. 바나나 10개 한 송이에 1000원 정도 합니다. 망고도 많이 먹었어요. 망고 하나에 300원! ^^
2일차 경비는요.
숙소 25불
저녁 7불
과일 2불
점심 2불
(총 36불 - 4만원)
(탄자니아 실링으로 산 것도, 편의상 달러로 기록합니다.)
(내일 3일차 여행기로 돌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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