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여행 2일차
아침 첫 장소는 타이베이 중앙역입니다. 유럽 여행도 그렇지만 어느 도시든 중앙역에 가면 여행안내소가 있고, 공짜 지도가 있으며, 도시의 중심이라 방향을 잡기 쉽습니다. 며칠 후 출발하는 화롄 가는 기차표도 미리 수령할 겸 중앙역에 왔습니다.
이곳에도 노숙자가 많네요. 서울역처럼... 도시의 첫인상이 노숙자라면 좀 싫을 수도 있지요. 작년에 샌프란시스코 여행 갔을 때는 노숙자가 정말 많았어요. 호텔 근처에도 노숙자가 많아 아버지가 걱정하시더군요. "너무 험한 동네에 숙소를 잡은 거 아니냐."
여행 가서 노숙자가 많다고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노숙자가 많다는건 치안이 좋다는 뜻이거든요. 노숙자는 사회적 약자로서 안전한 환경에 가장 민감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위험한 장소에 노출되는 걸 가장 두려워해요. 노숙자가 많다는 건 역설적으로 치안이 좋다는 뜻이에요. 서울역도 그렇지 않나요? 사람의 왕래가 잦은 곳에 있어야 무슨 일이 있어도 안전합니다. 추운 날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도와줄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시내에서 노숙자가 보여도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오히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그분들이니까요.
메인역 앞에는 오래된 기차가 서 있습니다. 1923년에 일본에서 만든 LDK58호 열차랍니다. 대만 여행을 하다보면 이렇게 일제 강점기의 유물들이 곳곳에 전시된 걸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가오슝에는 일제 시대 사탕수수 공장을 역사 공원으로 꾸며놓기도 했어요. 보면서 의아했지요. 우리라면 일본 식민시대에 대한 반감으로 숨기려고 할 텐데, 이들은 일본에 대한 저항감이 적어요.
타이베이 메인역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2.28 평화공원이 있습니다. 2.28 사건은 타이완에서 일어난 최악의 양민 학살 사건입니다. 1947년 일제가 물러가고 장졔스의 국민당군이 타이완에 진주합니다. 이때 국민당의 타이완 침탈에 반대한 대만 현지인들의 시위가 군대의 무력 진압으로 이어져 결국 2만여명에 달하는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지요.
청나라가 지배하다, 네덜란드가 들어오고, 다시 일본 식민지가 되었다가 전쟁이 끝나자 본토에서 공산당에 밀린 국민당의 통치가 시작됩니다. 대만인들에게는 일본이나 국민당이나 늘 타인의 지배가 이어진 셈이니 특별히 일본에 대한 반감이 클 이유가 없지요.
대만을 여행하다보면, 청나라 역사도 있고, 네덜란드 문물도 있고, 일제의 잔재도 있고, 국민당의 지배도 역사로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다채로운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지만 그만큼 슬픈 역사를 안고 있는 곳이기도 해요.
자유광장이 있는 이곳은 장개석 기념관이 있는 곳입니다. 궈리중정지녠탕[국립중정기념당]이라 하고 지하철 2호선 (중정지녠탕역)에 있어요.
타이베이에 오면 꼭 찾아보게 되는 관광명소이지만 장개석이라는 사람의 공과 과를 생각해보니 마냥 좋아보이지는 않더군요. 중정기념당을 나와 다시 지도를 보며 걷습니다. 이곳의 맛집 거리라 하는 융캉제로 갑니다. 융캉제는 지하철 둥먼역에 있어요. 중정기념당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이니 굳이 전철을 타기보다는 걷는 편을 권합니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가게들이 문을 열지 않아 융캉제 거리는 한산했습니다. 다만 융캉제 입구에 있는 딘타이펑 본점 앞에만 사람들이 많더군요. 아직 점심은 이르기에 좀 더 걷기로 하고 따안 공원까지 갑니다. 융캉제에서 역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공원입니다.
따안 공원, 크게 유명한 곳도 아니고, 국내 가이드북에서 추천하는 명소도 아니지만, 저는 어느 도시에 가든 그곳에서 가장 큰 공원을 찾아요. 뉴욕의 센트럴 파크, 런던의 하이드 파크 등 공원에 가면 그 도시 사람들의 생활을 구경할 수 있거든요.
망원 렌즈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이들이 많아요. 이곳이 버드 와칭의 명소라서 그래요. 공원 가운데 작은 호수가 있는데요, 작고 예쁜 새들이 날아다니는 곳이었어요. 많은 분들이 이곳에서 새를 촬영하고 있었어요.
론리 플래닛 대만 편에서 읽은 기억이 있어요. 대만에서 인기있는 야외 활동 중 하나가 버드 와칭이라고... 저는 새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제 눈길을 끈 것은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이었어요. 여행 가서 이렇게 촬영현장을 만나면 항상 반가워요. 작년에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미국 드라마 촬영장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거든요. 그 나라의 엑스트라 반장은 동선을 어떻게 짜는지, 카메라 워킹은 어떻게 하는지, 카메라 레일은 어떤 걸로 까는지 그런 걸 관찰합니다.
무엇보다 남들 일하는 거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요. 서울 거리에서 드라마 촬영을 하다보면 항상 구경하는 사람들이 부럽거든요. '아, 나는 오늘도 밤샘 촬영인데, 저 사람들은 퇴근하는구나. 좋겠다...' 그래서 놀러가서 촬영팀을 만나면 꼭 어슬렁거리며 구경합니다. 역시 남들 일할 때 노는 건 좋군요. ^^
공원을 산책하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니칸나거!" 하시더군요.
니 = 너, 칸 = 보다, 나거 = 저것
"너, 저거 좀 봐!" 하는 뜻입니다. 중국어 회화 책 3과 까지만 외워도 이런 정도는 다 들리지요. ^^ 가서 보니까 호숫가에 거북이 가족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네요. 역시 언어가 조금이라도 되면 여행은 곱절로 즐거워져요.
따안 공원에는 야외 음악당도 있군요. 그날 저녁에도 공연이 잡혀있는지 무대 위에 오케스트라 석이 마련되고 있었어요.
슬슬 배도 고프고 해서 다시 융캉제로 걸어갑니다. 딘타이펑에서 점심을 먹으려고요. 세상에 그새 줄이 늘어났네요! 대기 시간을 보니
35분!
아, 어쩝니까. 그래도 세계 10대 레스토랑 중 하나라는 딘타이펑, 그것도 본국 본점인데, 여기까지 와서 샤오롱바오는 하나 먹고 가야지요.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기로 했어요. 기다리는 동안 옆에 있는 서점에 잠시 들어가봤어요. (워낙 더워서 에어컨 바람도 쐴 겸... 11월 중순이라도 반팔 옷은 챙겨가세요. 대낮엔 무더워요.)
책이 꽂힌 서가를 보다 반가운 얼굴이 있어 보니까...
드라마 더블유 일러스트 북이 있네요. 와우, 대만에서도 W가 인기인가 보네요. 아, 부럽다. 나도 언젠가는 드라마 국에 복귀해서 재미난 드라마를 만들고 싶은데... 기회가 안되면? 그냥 지금처럼 여행이나 다니는 거지요. 일을 하면 일을 해서 즐겁고, 놀면 놀아서 즐거운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딘타이펑의 샤오롱바오! (원래 10개 한 접시인데, 나오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하나 덥썩 집어먹고는, 아 맞다, 인증샷! 하고 부랴부랴... ^^)
아, 역시 맛있네요. 한입에 넣어 깨물었을 때 육즙이 터져나오는 순간의 짜릿한 감동이 있어요. 육즙이 흘러나와 입안을 가득 채울 때 나도 모르게 '아!' 하고 탄성을 지릅니다. 마치 초밥왕에서 심사위원 할아버지가 눈을 번뜩하는 순간, 이런 맛일까요?
처음엔 뜨거울까봐 찻숟가락에 올려두고 살살 찢어서 국물을 먼저 마신 후 먹지만 좀 식었다 싶으면 입안에서 터뜨리는 편이 맛도 있고, 재미도 있어요. 200원짜리 거한 점심이네요.
11시에 이른 아침을 먹고 나와보니 대기 시간이 그새 늘었어요. 와우, 역시 딘타이펑! 이제 전철을 타고 궈푸지넨관역 5번 출구로 나와 송산원추앙위안취로 갑니다. 송산문화창조단지, 원래 1937년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담배 공장 건물인데요, 지금은 문화 창조 단지로 탈바꿈하여 온갖 문화 행사와 전시회가 열리는 곳입니다.
일본 초기 현대주의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어요. 100년 가까이 된 건물에서 만나는 현대 미술, 반갑습니다. 제게 특히 반가운 것은 이곳에서 마침 열리고 있던
일본 미디어 믹스 페스티벌! 여기서 에반게리온 극장판 무료 상영회를 하고 있었어요.
공짜라면 사죽을 못쓰는 저, 얼른 객석에 끼어앉아 '에반게리온 :파'를 봅니다. 극장에서 두 번, 집에서 몇 번을 본 영화지만,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나는 역시... 덕후?
오, 나의 여신 아스카님의 피규어까지!
타이베이 여행 와서 일본 아니메 문화 체험까지! 오늘은 과하게 흥분하는 날이로군요. 이제 숙소로 돌아가 좀 쉬어야겠어요. 한낮에는 더운데 굳이 땀 뻘뻘 흘리며 돌아다니고 싶지 않아요. 점심도 먹었겠다 배도 부르니 누워서 책도 읽고 졸리면 한 숨 자며 쉽니다.
여행 와서 아침부터 밤까지 바쁘게 다니면 웬지 일하러 온 것 같아요. 여행을 다니면서 중간에 한번은 숙소에 들러 낮잠도 자고 쉽니다. 그래야 다시 힘을 내어 다닐 수 있어요.
오후 4시에 나와 향한 곳은 타이베이 2호선의 종점인 썅샨입니다. (영어로 Elephant mountain-우리나라 안내서에는 코끼리산 야경 트레킹으로 소개되는 곳.) 트립어드바이저에서 여행자들이 타이베이 최고의 여행지로 꼽는 장소입니다. 오후 4시 반에 등산로를 오르기 시작하면 등뒤로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합니다.
전철에서부터 길 안내가 잘 되어 있어 초행길도 어렵지 않게 쉽게 찾아갈 수 있어요. 정상까지 오르는데 약 20분 정도 걸리는 가벼운 트레킹 코스입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데, 사람도 좀 많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의 정상에 오르면
타이베이 101 너머 해가 지는 모습을 볼 수 있거든요.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입니다. 제가 전날 타이베이 101에 가서 굳이 우리 돈 2만원을 내고 전망대에 오르지 않은 이유는 이곳에서 야경을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타이베이 101 전망대에서는 타이베이 101이 보이지 않지만 이곳 샹산 정상에서는 타이베이101의 야경이 아주 잘 보이거든요. 심지어 관람료도 없는 공짜! ^^
과연 타이베이 최고의 명소라 불릴만 하네요.
조명과 길이 잘 나 있어 해가 져도 위험하지 않아요. 올라온 길로 다시 내려가도 좋지만, 저는 그냥 계속 길을 걸어 반대편으로 내려갔습니다. 이 경우에는 내려가서 버스를 타야합니다. 길찾기나 중국어 회화에 자신이 없으면 그냥 계단으로 다시 내려가도 됩니다.
타이베이 101의 야경을 볼 수 있는 최고의 장소, 바로 샹산 등산로입니다. 산을 내려와서는 이제 다시 낮에 갔던 따안 공원으로 갑니다. 낮에 봐두 그 음악 공연을 보러요.
저는 공원에서 하는 이런 무료 음악회를 사랑합니다. 여행 가서 공짜라 하면 일단 무조건 즐기고 보거든요. ^^ 타이베이 시민들 사이에 끼어 잔디위에 기대 앉아 클래식 공연을 즐깁니다. 오늘 하루는 야상곡으로 마무리하는군요.
자, 오늘 여행의 테마는 타이베이 2호선 투어입니다. 메인역 ㅡ 엔티유 병원(228 평화공원) ㅡ 장개석 기념관 ㅡ 동문(융캉제) ㅡ 따안 공원이 2호선을 따라 있거든요.
2호선 종점인 썅산(코끼리산)에서 마무리하는 하루의 일정, 걷기 여행을 좋아하신다면 걸어서 다녀도 좋구요, 전철로 다녀도 좋아요. 그런데 228 평화공원은 왜 전철역 이름을 병원에 빼앗겼을까요? 그건 좀 아쉽네요... 국부 손문이나 장개석 같은 역사적 인물도 좋지만 권력자에 맞서 싸운 수만명의 시민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한 공부인데 말이지요.
2일차 경비 (대만돈 1원 = 우리돈 40원)
아침 만두 두유 45원
물 20원
썬블락 109원
딘타이펑 점심 200원
밀크티 30
저녁 180
총 580원 = 23200원 숙소 25000원
하루 총경비 5만원
오늘 하루 걸음수
35000보
'짠돌이 여행예찬 > 짠돌이 세계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차 타고 화롄으로 (1) | 2016.11.28 |
---|---|
타이베이 홍길동 투어 (5) | 2016.11.24 |
추울 땐 타이베이 (11) | 2016.11.22 |
오키나와 여행 추천 일정 (7) | 2016.09.29 |
오키나와 렌트카 여행 (6) | 2016.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