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여행, 6일차 이야기입니다.
자마미 섬에서 보내는 사흘째 날입니다. 오키나와 여행기를 검색해보니 자마미 섬에 당일치기로 가시는 분들도 많더군요. 오전 10시 페리를 타고 12시 도착, 점심 먹고 후루자마미 비치에 가면 1시. 2시간 정도 놀다가 4시 배를 타고 다시 나하 토마린항으로 돌아가는 일정.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닐 때, 가급적 일정을 여유롭게 잡습니다. 당일 오후 4시 배를 타야한다고 하면 하루종일 불안하실거예요. '멀리 갔다가 괜히 배를 놓치면 어떡하냐. 그냥 근처만 보고 빨리 오자.' 하고... '이 섬에서 2박 3일 동안 있을 거예요.' 해야 여유를 느끼시죠.
2박 3일 동안, 저는 스노클링을 했고요, 아버지는 혼자서 섬을 다니며 구경하셨어요. 인구 650명 정도인 작은 섬인지라, 노인 혼자 다녀도 문제가 없어요. 치안도 좋고 인심도 좋아요. 아침 먹고 헤어졌다가 점심 때 숙소에서 만났더니 식사는 당신이 봐두신 식당에서 하시자고.
아버지를 따라 회덮밥 도시락 (개당 500엔)을 파는 식당에 갔습니다. 가성비가 아주 뛰어난 훌륭한 맛집인데, 겉에 간판을 봐서는 찾기가 힘든 곳이었어요.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아내셨냐고 여쭈었더니... 부둣가에 앉아 사람 구경을 하는데, 배가 들어와서 생선을 내놓더랍니다. 그 생선을 누가 들여가나 쫓아갔더니 작은 식당이 나오더라고. '옳지, 저기가 횟집이구먼!'
여럿이 함께 하는 여행 중에는 이렇게 혼자 노는 시간도 필요해요. 저는 바다에서 스노클링, 아버지는 마을 산책. 따로 또 같이 즐기면 여행이 풍성해집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늘 하는 일이지요. 다른 사람을 만나 좋았던 숙소나 인상적인 여행지를 추천하고 추천받는 것. 여행을 곱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자마미 전망대를 추천하셨어요. '마을에서 산으로 계속 가면 끝에서 초등학교가 나온다. 그 옆에 난 도로에 표지판이 있단다. 그걸 따라 오르면 주위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전망대가 있어.'
아버지 말씀대로, 전망대에 올랐어요. 자마미 마을과 근처의 섬들이 파노라마 풍경으로 보입니다. 마을에서 걸어서 30분 거리고요. 차도라 길 찾기는 수월합니다. 이곳엔 차가 그리 많지 않아요.
저 뒤로 후루자마미 비치도 보이네요.
전망대를 오르다가 감탄했던 것은 그 계단입니다. 간격이 딱 적당하더군요. 가파른 곳은 촘촘하게, 완만한 곳은 여유있게. 아무 생각없이 걸어도 계단의 폭만 따라 가면, 급경사는 조근조근, 완경사는 성큼성큼 걷게 됩니다.
한 사람의 수고로 여럿이 편해지는 곳, 이게 선진국이지요. 미국이나 일본이나 시스템이 잘 되어 개인에게 일일이 선택을 강요하지 않아요. 시스템만 따라해도 불편함이 없습니다.
시스템에 대한 믿음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고귀한 노동에서 나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나의 기술로써 세상을 편안하게 한다.'는 자부심이 저 계단에서 느껴집니다. 그런 자부심이 장인 정신의 기본입니다. 초밥을 쥐는 가게 주인에게서, 펜션 주인에게서, 일본을 여행하다 만나는 소상공인들에게서 그런 장인 정신을 느낄 수 있어요.
'나 한 사람의 수고로 세상이 편안해진다.'
자마미 마을을 산책하다 만난 고양이 버스. 앗! 그 옆에 토토로 피겨들이 줄을 지어 서 있군요.
"도나리노 토토로, 토토로~" '이웃집의 토토로' 주제가가 절로 나옵니다.
자마미 섬의 작은 게스트하우스 앞을 지키는 이 분은, 바로바로!
'천공의 성 라퓨타'에 나오는 거인 로봇입니다. 25년 전 울산 대학 영화제에 갔다가 저 영화를 프로젝터로 처음 보았어요. 저 로봇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펑펑 울었지요. '만화영화를 보면서 울다니, 이게 무슨 짓인가?' 하다가, '아키라'를 보고, '공각기동대'를 본 후, 일본 애니메이션의 팬이 되었습니다. 일본은 덕후들의 성지예요.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미친듯이 했더니, 그 결과 세상 사람들을 즐겁게 해줍니다. 덕후란 그런 사람이에요.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노동을 존중하고, 타인의 노동도 존중할 수 있어요.
석양을 보며, 아버지의 손을 잡고 부둣가를 따라 걷습니다.
저는 딸아이의 조막손을 잡고 걷는 걸 좋아합니다. 아이의 손이 주는 온기가 좋아요. 첫째 아이는 이제 커서 더이상 손을 잡아주지 않아요. 많이 아쉽더군요. 그래서 어느날 제가 먼저 아버지의 손을 잡았습니다. 같이 여행 다니면서 생긴 버릇입니다. 저렇게 아름다운 노을을 보면서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이 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여, 이 순간 함께 있는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이 솟거든요.
나이 마흔 다섯에 처음으로, 아버지 손을 잡아봤습니다.
철은 왜 이렇게 늦게 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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