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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짠돌이 세계여행

오키나와의 어떤 공존

by 김민식pd 2016. 9. 20.

오키나와 3일차 여행기입니다.

 

전날 오후에 도착한 숙소는 산 속에 있는 펜션, 카제 노 오카 (Kazenooka 바람의 언덕)입니다. 렌트카로 여행할 때는 도심 보다 외곽 숙소를 선호합니다. 가격도 싸고, 주차도 편하거든요. 전날 오후 이곳을 찾아올 때 산 속 좁은 길을 헤맨 탓인지, 오래된 집의 외관에 아버지는 무척 실망하셨어요.

"여기는 얼마 하냐?"

"어제 묵었던 시내 호텔이랑 가격은 같아요. 12000엔. 우리 돈으로 13만원 좀 넘어요."

"왜 그렇게 비싸냐."

"방이 넓어서 호텔보다는 여기가 편하실 거예요. 전용 베란다도 있고요."

 

 

아버지는 여전히 마뜩찮아 하십니다. 이런 시골집까지 왜...

펜션 용도로 지어진 집이라 그런지 방안에 취사 도구나 냉장고, 조리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요. 다만, 아버지나 저는 요리는 별로라, 식사는 주로 외식으로 해결합니다. 주인 할아버지께 아침 식사는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이 집에 식사 제공은 따로 없다고, 대신 근처 식당에서 조식 쿠폰을 1000엔에 판매한다고 하시더군요. 쿠폰을 사면, 식당에 연락해서 아침을 예약해주신다고. 다음날 아침에 숙소에서 예약해준 식당을 찾아갔습니다.

숙소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있는 작고 아담한 식당이었어요.

 

바깥에서 볼 땐 몰랐는데, 들어와보니 마당이 아주 멋지네요. 무슨 휴양지 바닷가에 차린 레스토랑 같아요. 개별 오두막에 해먹이 걸려 있어요. 오후에는 저 아래 석양을 보며 해먹에 누워 쉬다 갈 수 있을 듯.

 

브런치 메뉴로 핫샌드위치나 피자 토스트 등의 식사가 음료와 함께 제공되더군요.

일본 여행은 보기에도 예쁘고 맛도 좋은 음식이랑 함께하기에 늘 즐거워요!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듯한데, 남편이 요리를 하고 부인이 서빙을 했습니다.

 

가게를 꾸미는 솜씨나 음식 솜씨가 좋아 아버지도 만족하셨지요.

 

숙소로 돌아와 방 앞 베란다에서 쉬시던 아버지가 물어보셨어요.

"하루를 지내보니 갈수록 이 집이 마음에 든다. 주인에게 가서 물어봐라. 이 집을 지은지 얼마나 되었는지."

체크아웃을 하면서 주인 내외께 여쭤봤지요.

(참고로 주인 내외는 일본어만 하십니다. 10년 전에 공부했던 일본어 덕을 톡톡히 봤지요. ^^

여행을 더욱 풍성하고 즐겁게 만들어주는 데는 역시 언어의 힘이 큰 것 같아요.)


주인 내외는 원래 나하(오키나와에서 가장 큰 도시)에서 살다가 20년 전에 이곳에 펜션을 짓고 이사 오셨다는군요. 저희 아버지 또래로 보이는 주인 어른의 연세를 생각하면, 아마 50대에 퇴직하고 평생 모은 돈으로 지은 집이 아닐까 싶습니다. 노후 대책으로 펜션을 지은 거지요. 한국에도 요즘 꽤 있잖아요, 그런 분들?

 
산 속이라 땅값은 쌌겠지요. 다만 숙소를 운영하면서 퇴직한 부부가 손님들의 아침 준비까지 하긴 힘들었을 겁니다. 마침 마을에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맛있는 브런치 가게가 생긴거예요. 아침 식사를 부탁하는 손님에게는 그 식당을 연결해주는 겁니다.

아, 이런 공생, 참 괜찮은걸요?

집을 가진 노인과 재능을 가진 청년세대의 콜라보레이션.

자금의 여유가 있는 노부부는 펜션을 운영하고, 부지런하고 센스 있는 젊은 부부는 브런치 카페를 운영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전략이지요. 

카제 노 오카가 있는 언덕 위 마을은 주변에 상가나 식당이 거의 없어, 브런치 가게가 아니라면 불편할 수 있지요. 펜션 덕에 식당은 손님을 소개받고, 식당 덕에 펜션은 고객의 아침을 해결하고. 아, 좋네요.

 

 

개인적으로 저는 시내 비즈니스 호텔의 좁은 방보다 산 속에 위치한 료칸의 전통 다다미방을 좋아합니다.

 

이 방의 진짜 매력은, 전용 베란다에요. 저 멀리 오키나와 바다 위로 해가 지는 모습을 볼 수 있거든요. 다만 렌터카로 찾아갈 때 쉽지 않다는 게 조금 걸리네요. 

(일본 오키나와 렌터카 여행에 대해서는 따로 포스팅하겠습니다.)

 

숙소를 나와 오늘의 첫번째 목적지, 추라우미 수족관으로 향합니다.

예전에 해양 엑스포가 치러진 해안가 공원에 자리잡고 있는 추라우미 수족관.

규모가 꽤 크고요, 따듯한 열대 바다에서 사는 어종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마치 바닷속에 차려진 카페 같네요. 음료 (4~500엔)나 식사 (700~800엔)가 비싸지 않아 여기서 좀 앉아서 느긋이 구경하다 가고 싶은데, 아버지는 고개를 도리도리... 메뉴를 보고 있으면 아버지는 혼자 저 멀리 그냥 가버립니다. 나중에 보면 출구 앞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십니다. 아예 돈 쓰는 걸 원천봉쇄하려고... ㅠㅠ

수족관도 좋지만, 추라우미가 있는 엑스포 해양 공원 내의 에머랄드 비치도 참 예쁩니다. 이곳의 바다는 색깔이 정말 환상이에요.

돌고래 관이 있어 가봤더니, 돌고래 쇼를 안 하는군요. 그냥 유유히 헤엄을 치고 다닙니다. 이곳의 동물들은 좀 게으른가 봐요, 애들이 일을 안 해요. (다른 날 가신 분들은 쇼를 봤다니, 아마 제가 간 날은 돌고래 쉬는 날이었나봐요. ^^) 

싱가폴 수족관이나 시카고의 셰드 수족관에 가서, 그곳의 쇼를 보면서 아내에게 그랬어요.

"여기 쇼는 왜 이리 심심하지?"


우리나라 돌고래쇼나 물개쇼는 온갖 묘기가 다 나와서 정말 흥미진진하거든요? 그런데 외국 수족관에 가보면 그런 화려한 볼거리가 없어요. 추라우미 수족관의 바다표범도 쇼는 안 하더군요. 우리나라 바다표범은 윗몸 일으키기도 하는데 말이죠.

교민들이 흔히 그러지요. 한국은 재미난 지옥이고 외국은 지루한 천국이라고. 자극적인 볼거리에 길들여진 탓인지 동물들이 어지간한 묘기를 선보이지 않으면 심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 한국에서는 동물들도 먹고 살려면 '노오력'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아, 열정 페이 다이내믹 코리아...

추라우미 수족관을 나와 다시 차를 타고 오키나와 드라이브 명소, 고우리 대교가 있는 고우리 섬으로 달렸습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고우리 대교를 건너가면, 고우리 섬이 나오고요, 저 멀리 고우리 전망대가 있습니다.

(다음에 레인보우 고우리를 만나면 꼭 한번 여기에 가보라고 전해야겠네요. ^^)

다리를 타고 건너갔더니 섬 해변에 고우리 비치가 있습니다. 바나나 보트가 있다는 건 일단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이란 뜻이겠지요? 오키나와에는 비치가 정말 많아요. 아이들이랑 와서 놀기엔 이곳도 좋아 보이네요.

고우리 섬 전망대입니다. 섬 주위 바다 풍광을 조망할 수 있다고 해서 왔는데...

입장료가 800엔이랍니다. (허걱!) 이렇게 비싼 곳은 아버지가 싫어하십니다. (저도 싫어요. 무슨 풍광 한번 보는데 만원 씩이나...)


그래서 주차장에서 사진만 찍고 그냥 나왔습니다.

조금 더 높은데서 보면 좋겠지만, 때론 더 낮은 곳에서 만족할 줄도 알아야지요. ^^

이 정도면 되었다... 하고 흡족해하면서 얼른 차를 뺍니다. 술집과 오락시설이 많이 있다고 알려진 (그 동네에 미군 기지가 있어서 그래요.) 미하마 아메리칸 빌리지를 찾아가는데

신호 대기중, 도로 반대편에 '구라 스시'라는 간판을 발견! 아니 저곳은!

오키나와 오는 비행기 안에서 '명견만리'라는 책을 읽었어요. 로봇이 주도할 미래의 노동에 대한 챕터에서 '구라 스시'에 대한 소개가 나옵니다. 일본의 회전초밥집인데, 주문은 아이패드로 하고, 로봇이 밥을 쥐면 알바생이 재료를 올리고, 접시는 자동화된 콘베이어 벨트로 주문자 앞까지 나온다고요. 인건비를 최소화하여 가격의 혁명을 일으킨 가게랍니다.

가격의 혁명이란 문구가 생각나서 바로 달려갔습니다! (ㅋㅋㅋ 어디가나 짠돌이...)

오후 1시가 지났는데도 손님이 많아 20분 정도 기다려야 했습니다. 

주문이 참 편해요. 돌아가는 회전초밥에서 직접 골라 먹어도 되고, 아이패드의 사진 메뉴를 보고 고르면 곧 초밥이 자동으로 나옵니다.

 

아버지와 둘이서 먹고 계산하니 1300엔! 둘이서 13접시 먹었으니, 각자 초밥 13점 씩 먹은 겁니다. 한국의 스시 세트가 10피스 정도 나오니까 적게 먹은 건 아니지요.

1접시에 100엔입니다. 우리는 접시당 두 점씩 나오는 메뉴만 주문했어요. 혼자 나오는 건방진 녀석들은 시키지 않습니다. 둘이 사이좋게 나란히 오는 애들만 좋아합니다. ^^

부자 짠돌이... (돈 많은 짠돌이가 아니라, 아버지나 아들이나 대를 이어서 짠돌이. ^^)

 

아버지가 가격을 물어보시기에 둘이서 14000원 정도 나왔다고 하니까, 그렇게 싸냐고! 화들짝 반기시더니, "오늘 저녁도 여기 와서 먹자." 하시더군요. ^^ 아예 사람이 몰리기전에 가자고 오후 5시 반에 다시 왔는데요, 테이블 석은 이미 꽉 차서 오후 8시 이후에나 예약이 가능하답니다! (자리 예약도 입구의 컴퓨터 화면으로 합니다.)

일본에서 인기 폭발인 회전초밥집이라고 '명견만리'에서 소개하더니, 역시...

아버지와 저는 그냥 카운터 석으로 했어요. 그럼 오래 기다리지 않거든요. 카운터 석이 있으니, 혼자 배낭여행 오신 분들이 이용해도 좋을 듯 합니다. 일본에서는 '혼밥족'이 흔해서 그런지, 1인석을 위한 배려가 잘 되어 있어요.

오늘의 숙소는 차탄 해안가에 있는 '오션프런트 호텔'입니다. 바닷가 바로 앞에 있는 숙소에요. 어제는 산 속에서 잤으니 오늘은 바닷가에서... 가격은 7000엔으로 저렴한 편. 외곽지역이라 그런가 봐요.

욕실이 딸려있는 방도 깨끗하고요, 복도에는 공동 주방도 있어요.

 

호텔 앞 해안 산책로.

해질 무렵 석양을 보며, 아버지와 걷습니다.

이렇게 오키나와에서 3일째 하루가 저물어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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