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명절 연휴는 잘 보내셨는지요. 저는 매년 추석마다 아버지를 모시고 단 둘이 여행을 다닙니다. 이 여행은 3년전 우연한 대화에서 시작되었지요.
"아버지, 올 추석에는 어디로 가고 싶으세요? 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영동이든, 고모 산소가 있는 강릉이든 아버지가 가자는 데로 모실게요."
"난 싸이판이나 괌에 가보고 싶은데?"
아버지의 말씀에 보라카이를 다녀왔어요. 70대 노인과 50 다 된 아들, 둘이서 커플끼리 가는 패키지 팀에 끼어 놀려니 좀 어색하더군요. 젊은 연인이라면 수영장에서 선탠하고, 호텔방에서 딩굴기만 해도 좋겠지만... 쿨럭. ^^ 이 나이에 휴양지는 좀... 심심했어요. 작년 초 아버지께 또 여쭤봤지요.
"아버지 올해는 어디로 가고 싶으세요? 괌? 싸이판?"
"내 평생 소원이 뉴욕에서 한 달 살아보는 건데?"
그래서 3주 일정으로 뉴욕으로 갔습니다. 뉴욕은 스펙터클하고, 판타스틱하고, 버라이어티한 도시입니다. 장기간 여행하기 참 좋지요. 볼 거리, 놀 거리, 먹을 거리가 많아 지루할 틈이 없거든요.
가끔 주말에 아버지를 모시고 산행을 가면, '이번 추석에는 어디로 놀러 갈 것인가?' 그걸 상의하는게 낙입니다. 올해는 어디로 갈까? 비행기 타고 24시간을 날아간 (환승 포함) 뉴욕을 다녀온 후, 아버지가 다음엔 좀 가까운데로 가자고 하시더군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 일본이 있지요. 그런데 아버지는 동일본 지진 방사능 탓에 일본은 좀 그렇다고 하시더군요. 구글 지도를 보여드렸어요. "아버지, 일본에서 한참 아래에, 오키나와라고 있어요. 지진 난 곳이랑 거리를 보면 한국보다 더 먼 곳인데요. 여기 날씨도 따듯하고 바다도 예쁘고 참 좋아요. 무엇보다 비행기 타고 겨우 2시간 걸리고요."
그래서 올 추석에는 아버지와 둘이서 오키나와로 떠났습니다. 아내는 아이들과 친정에 가서 연휴를 보내고, 저는 아버지를 모시고 단 둘이 여행을...
온 가족이 함께 추석 연휴를 보내면 좋겠지만, 저의 경우, 3대가 함께 가는 여행은 잘 안 맞더군요. 아버지가 중심인지, 아이들이 중심인지 헷갈려요. 여행을 갈 땐 테마를 분명히 잡는 걸 좋아합니다. 아이들을 데려가면 놀이공원 중심으로 일정을 짜고, 부모님을 모시면 렌트카를 빌려 유람 다니는 일정을 짭니다. 노인과 아이, 모두를 만족시키려면 가운데 낀 사람만 죽어납니다. ^^ 돈 쓰고, 귀한 휴가 낭비하고, 마음 상하고, 저한테는 잘 안 맞는듯...
오후 3시 비행기를 탔는데, 출발 지연으로 오후 6시 넘어 도착했습니다. 공항 나와서 유이레일을 타고 숙소에 도착하니 저녁 8시가 다 됐더군요. 나이드신 어른을 모시고 여행 갈 때, 첫 날 숙소는 비용이 좀 들더라도 전철역 가까운 곳을 잡습니다. 첫 날 밤, 현지 지리도 어두운데, 무거운 배낭 메고 밤길을 헤매기는 그렇잖아요?
다음날 아침에 찍은 사진입니다. 왼쪽이 유이레일 오모로마치 역이고, 그 옆이 T 갤러리아 면세점입니다. 갤러리아에 렌터카 시내 픽업 사무실이 있어요. 비행기 도착 시간이 오후 늦은 시간이라 공항에서 렌터카를 픽업하지 않고, 시내에서 하룻밤 잔 다음 차를 빌리기로 했습니다. 일본의 경우, 도로나 차량 구조가 우리와 반대라서 밤길에 처음 운전하면 좀 힘들 수 있으니까요.
오모로마치 역에서 나오면 바로 정면에 호텔 호케 클럽이라는 간판이 보입니다. 부킹닷컴을 통해 숙소를 예약할 때, 구글 지도로 위치를 확인해둡니다. 구글 스트리트 뷰로 인근 거리의 분위기를 살펴보기도 합니다. 연로한 아버지를 모시고 초반에 짐들고 길에서 헤매면 지쳐서 여행 내내 힘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철역과 숙소와 렌터카 픽업을 한 곳에 모았어요. (요즘은 구글 지도가 좋아서, 검색을 몇번 해보면 이런 환상의 삼각지대 조합이 가능합니다.)
76세 아버지를 모시고 떠난 오키나와, 본격적인 여행기는 내일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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