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여행, 5일차 이야기입니다.
여행은 왜 떠날까요?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입니다. 푹 쉬고 오겠다고 생각에 4박5일간 리조트에서 내내 뒹굴기만 하면 살짝 허무합니다. 그렇다고 여행 기간 내내 돌아다니며 모험을 즐기면 정작 휴가 다녀와서 지친 상태로 업무 복귀하게 되지요.
여행을 가면, 처음엔 모험, 다음엔 휴양 순으로 즐기는 걸 좋아합니다. 오키나와 일정을 짤 때도 초반 2박 3일간은 렌트카를 몰고 구석 구석 명소를 찾아다니고 , 후반 2박3일간은 작은 섬에 들어가 쉬기로 했어요.
여행 중 하루 일과도 두 가지 테마의 반복입니다. 오전에는 바쁘게 움직이고 오후에는 휴식. 우선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를 한 후, (게스트하우스인 이욘치 하우스 1층에 식당이 있는데 1인당 360엔에 조식을 예약할 수 있어요.) 바닷가로 향합니다. 부둣가 마을에서 해수욕장이 있는 후루자마미 비치까지는 300엔에 탈 수 있는 버스도 있지만 걸어가도 길찾기가 수월해서 30분이면 해변에 도착합니다.
바닷속 산호의 풍경이 예뻐서 스노클링하기 좋은 해안이지요. 아침에는 스노클링을 하고, 오후엔 해변에 누워 책을 읽으며 쉽니다. 오전에는 활동, 오후에는 휴식. 두가지 테마를 오가면 지루하지 않고, 지치지도 않아요.
저는 아드레날린 정키입니다. 여행을 가면 반드시 모험을 한가지 꼭 즐기고 옵니다. 오래 가는 추억을 만들려면 몰입감이 중요합니다. 히말라야 계곡에서 래프팅 여행, 네팔 사랑꼿의 패러글라이딩, 아르헨티나 라 플라타에서 스카이다이빙 등등. 최고의 몰입감을 경험한 활동은 오래오래 기억됩니다. 네팔에서 1박 2일간 강줄기를 따라 래프팅 여행을 했어요.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몸의 무게중심을 옮겨가며 급류를 피합니다. 나의 몸동작 하나하나로 눈 앞의 위험을 피한다는 점에서 래프팅의 몰입감은 정말 최고지요.
반대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오히려 최고의 몰입감을 안겨주는 것도 있어요. 바로 탠덤 스카이다이빙이지요. 그냥 떨어지는 수 밖에 없어요. 땅에 부딪히기 전에 조교가 낙하산을 펴 줄 것이라 믿고. 45초간 자유낙하하면서, '이 순간 나는 살아있다'는 짜릿한 전율을 경험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액티비티 중 하나가 스노클링입니다. 95년 겨울 호주 배낭여행 갔다가 케언즈의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서 처음 스노클링을 했어요. 배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 산호초가 있는 무인도 근처에 가더니, 스노클링 기어를 나눠주더군요. 서양인 친구들이 다들 '와아!' 환호를 지르며 바다에 뛰어들었어요. 저도 무턱대고 따라 뛰었다가 죽을 뻔 했어요. 바닷물이 깨끗하니까 저 아래 5미터~10미터 아래까지 보이는데, 깊은 바다 맨 위가 아니라, 높은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았어요. 정말 무섭더군요. 이건 또 다른 의미의 고소 공포증. 게다가 바닷속에서 숨쉬는 소리는 어찌 그리 크게 들리는지 폐소공포증까지! 수영장에서 배운 수영은 깊은 바다에서는 무용지물이었어요. 파도가 치니까 대롱을 통해 입 속으로 짠 물이 계속 들어오고, 입에 물고 있는 스노클 기어 탓에 살려달라고 소리도 못 지르겠고, 그렇다고 기어를 뱉으면 다시는 숨을 못 쉴 것 같고...
'아, 이렇게 죽는 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그래, 어차피 한번 죽는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죽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는 유네스코 자연유산 10대 경관 중 하나입니다. 산호초와 열대어가 빚어내는 바닷속 풍광이 정말 환상이에요.
필사적으로 헤엄을 쳐서 무인도의 모래사장까지 갔어요. 거기서 바베큐 파티를 했거든요. 지쳐쓰러져 누워있는데, 뒤늦게 온 친구들을 보니까 다들 구명조끼를 입고 있더군요.
"그 조끼는 어디서 났어?"
"파도가 거치니까 가급적 이걸 입고 하라고 했는데?"
그 다음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고무 보트를 타고 오더군요.
"저 보트는 어디서 났어?"
"그것도 겁나면 보트로 태워다준다고 했는데?"
"언제 그랬어?"
"응, 니가 바다에 뛰어들고 난 다음에."
저는 모험심 강한 미국 청년들을 따라 뛰느라, 정작 함장의 지시를 놓친거죠. 폼 잡으려다 죽을 뻔 했네요. ㅠㅠ
그 이후, 저는 기회가 되면 꼭 스노클링을 합니다. 이번 오키나와 여행에서 자마미 섬을 일정에 넣은 건 후루자마미 비치 스노클링 때문입니다. 이곳의 산호초는 해안선에 아주 가까워서 해수욕을 하면서 동시에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어요. 제가 그동안 다녀본 포인트 중 최고가 아닌가 싶습니다.
(일본인 여행자가 찍어 올린 유튜브 영상입니다. 저는 여행 다니면서 이런 영상을 잘 안 만들어요. 촬영하고 편집하다보면, 휴가 와서 또 일하는 것 같거든요. ^^)
스노클링을 하면 꼭 하늘을 나는 것 같아요. 바닷속에도 산이 있고 계곡이 있고 논이 있고 밭이 있습니다. 화려하게 피어난 꽃도 있고, 기암절벽이 있어요. 그 속을 누비는 형형색색의 물고기 떼는 마치 밭일 하는 농부 같기도 하고, 말달리는 군사 같기도 하고, 소풍나온 유치원 병아리떼 같기도 해요. 그걸 하늘 꼭대기에 둥둥 떠서 구경하는 기분입니다.
여행이 만약 일상과는 또다른 세상을 체험하는 것이라면, 스노클링이 꼭 그렇습니다. 바닷속이라는 완전히 이질적인 세상을 보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다들 다이빙을 하나봐요. 궁극의 레포츠이자 최고의 모험이라는 스쿠버 다이빙.
저는 스노클링이 좋아요. 바다속에 아예 빠지고 싶지는 않아요. 몸의 일부는 물 위에 떠서 일정 정도의 거리감과 안정성을 유지하고 싶지요. (어쩌면 스노클링이 가장 싼 해양 레포츠라서 그런지도 몰라요. 돈이 거의 들지 않거든요. ^^)
후루자마미 해수욕장은 이용료가 따로 없습니다. 비치 파라솔 대여료 1000엔, 스노클링 기어 대여료 1000엔이 있지요. (자신의 핀이나 기어를 가져오고 바위 옆 그늘에 돗자리를 펴면 돈 한 푼 안 쓰고 올 수도 있어요.) 후루자마미 비치에는 매점도 있는데 신라면 컵이 300엔, 카레 같은 식사류가 700엔 정도 합니다. 바가지는 별로 없어요.
자마미 섬, 오키나와에 오신다면 꼭 한번 들러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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