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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그들이 차별에 찬성하는 이유

by 김민식pd 2016. 7. 30.

2016-174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오찬호 / 개마고원)

 

'인권과 평화'라는 수업을 진행하며 'KTX 여승무원들의 철도공사 정규직 전환 요구' 문제를 학생 토의에 붙였더니, 한 학생이,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 라고 말합니다. '여승무원이 철도공사 정직원이 되고 싶으면 시험을 치고 정정당당하게 들어가세요.'라는 분위기에 저자는 당혹감을 느낍니다.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혹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규정의 위반에 맞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벌이는 파업에 "도둑놈 심보"와 같은 단어가 붙는 현실, 취업을 못하는 자신들의 고통을 알아달라고 호소하는 이들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요구에는 반대하는 현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수 백명의 20대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질문을 던져 사회학적 연구를 하고, 그 결과를 책으로 냅니다.


'아무도 이십대들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않기 때문에, 이들도 아무의 고통도 이해할 수 없게 돼버린 셈이다. 자신을 아무도 역지사지해주지 않는데, 자신이 어찌 역지사지의 입장을 가질 이유가 있겠는가. 또한 이들은 고통의 비교 법칙을 그대로 적용했을 뿐이다. 취업대란이란 말이 상징하듯, 이십대들이 마주하게 되는 고통 자체가 객관적으로 엄청 늘어나 있다. 신입생 때부터 해야될 일은 상상을 초월하며, 게다가 그 보상마저 확실하지 않으니 심신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 이들이 비정규직의 목소리에 공감할 여유가 있을까? 이리저리 계산기를 두들겨 보아도 '나만큼' 힘들진 않은 것 같다고 느낀단 말이다.'

(위의 책 92쪽)

 

2012년 MBC 파업 때, 명동 예술 회관 앞 거리 선전전을 나갔어요. MB 정부의 언론장악의 실상을 알리고, 우리 사회에 공정한 언론이 왜 필요한지 알리는 전단을 돌리는데, 지나가는 20대 청년 하나가 그러더군요.

"당신들은! 그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기껏 데모나 하는 겁니까? 그렇게 일이 하기 싫으면 다른 사람에게 차라리 양보하십시오. 비싼 월급 받으면서 파업이라니, 그게 뭐하는 짓입니까?"

그 순간, 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어요. 격앙된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것 역시 그 순간 저의 역할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친구의 분노 역시 이 사회의 구조 속에서, 노동 운동에 대한 반발을 조성하는 어떤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라 생각했습니다.

 

많은 MBC 사람들이 파업에 나선 것은 부채감 때문입니다. 집회 현장에서 노동자나 시민들의 요구를 뉴스에 반영하지 못한 죄의식,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방송에서 이루어지지 못한데 대한 죄책감. 기자들이나 시사 교양 피디들이 제작 일선에서 느낀 각자의 열패감과 좌절감이 쌓여서 파업으로 터져나왔고요. 그들의 죄책감은 이후 업무 배제, 징계, 해고라는 징벌로 응답받았지요. (죄책감을 느끼는 게 죄인 줄은 몰랐어요.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게 더 큰 죄 아닌가요?) 

 

"어떤 사람들은 투 스트라이크를 맞은 상태로 인생을 시작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3루에서 태어난 주제에 자기가 3루타를 쳤다고 생각하며 산다. (중략) 이런 상황에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희망을 품고 노력하라 말하면 될까? 희망, 그건 개인에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사회의 모순을 해결함으로써 자연스레 생겨나도록 해야 한다. 사회가 진정 공정해지면 절로 희망이 부풀기 마련이다. 기회의 균등은 그럴 때 '실재'할 수 있는 것이다.


(위의 책 214쪽)

 

MBC 파업에 대해,

"평소에 잘 했어야지, 프로그램 제작 현장에서, 취재 현장에서 각자가 잘 싸우고 일했으면 굳이 파업이라는 극단적 방편이 필요하지 않았을 거 아냐?"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구조적 모순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개인의 노력으로 돌파하라고 말하는 건 한계가 있어요. 그것이 공정보도가 됐든, 20대의 취업이 됐든. 그런데 우리 사회는 지금 너무 많은 것을 개인에게 요구하고 부담지우고 있지요. "노오력이 부족하단 말이다!" 하듯이. ㅠㅠ 

 

'아무도 그들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않기 때문에, 그들도 아무의 고통도 이해할 수 없게 돼버린 셈이다. 자신을 아무도 역지사지해주지 않는데, 자신이 어찌 역지사지의 입장을 가질 이유가 있겠는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제가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끔 도와준, 한 권의 좋은 책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이에요. 

 

그런데요, 우리, 사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서로에게 괴물은 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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