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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시간과 오리지널리티

by 김민식pd 2016. 7. 25.

2016-173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 양윤옥 / 현대문학)

 

이 책을 설명하는 핵심은 뒷 표지의 글로 각각 압축될 수 있습니다.

 

'어쩌다 소설을 쓰기 위한 자질을 마침 약간 갖고 있었고, 행운의 덕도 있었고, 또한 약간 고집스러운 (좋게 말하면 일관된) 성품 덕도 있어서 삼십오 년여를 이렇게 직업적인 소설가로서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아직도 나를 놀라게 한다. 매우 크게 놀란다. 내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요컨대 그 놀람에 대한 것이고, 그 놀람을 최대한 순수한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는 강한 마음 (아마 의지라고 칭해도 좋으리라)에 대한 것이다. 나의 삼십오 년 동안의 인생은 결국 그 놀람을 지속시키기 위한 간절한 업이었는지도 모른다.'

(작가 후기 중에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무라카미 씨가 어떻게 소설을 써왔는지를 이야기한 책이고, 그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다. 그래서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 구체적인 힌트와 격려가 되리라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모색하는 사람에게 (즉 거의 모든 사람에게) 종합적인 힌트와 격려를 건네주는 책이 될 것이다-무엇보다도, 굳이 이대로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하고픈 대로 하는 게 가장 좋아요, 라고 암시해주는 것을 통해서.'

-시바타 모토유키

 

요즘 저는 예술론과 창작론에 대한 책을 이어서 읽고 있습니다. 창작자로 살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도 고민이고요. 인공지능의 시대, 복제할 수 없는 나만의 것을 만들고 싶습니다. '어떻게 오리지널리티를 확보할 것인가?' 하루키의 오리지널리티는 35년간 살아온 삶에 있답니다. 그냥 한 편의 소설로 등단하고 두어 권의 책을 내고 사라진 게 아니라, 꾸준히 노동하는 자세로 작품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하루키가 말하는 오리지널리티입니다. 

오리지널리티의 3가지 조건

1. 독자적인 스타일을 가져야 하고

2. 그 스타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버전 업 할 수 있어야 하고

3. 시간의 경과와 함께 그 스타일이 일반화되고 사람들의 정신에 흡수될 것.

이 세 가지 조건을 총족시키기 위해서는 '시간의 경과'가 중요합니다.

 

'요컨대 한 사람의 표현자가 됐든 그 작품이 됐든 그것이 오리지널인가 아닌가는 '시간의 검증을 받지 않고서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어느 시기에 독자적인 스타일을 가진 표현자가 불쑥 튀어나와 세간의 강한 주목을 받았다고 해도 만일 그/그녁 눈 깜짝할 사이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면, 혹은 싫증이 나버렸다면, 그/그녀는 '오리지널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경우, 단순히 '한 방'으로 끝나버립니다.

(중략) 그런 사람들에게는 아마 지속력이나 자기 혁신력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얘기겠지요.

(중략)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작품이 적어도 연대기적인 '실제 사례'로 남겨질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즉 납득할 만한 작품을 하나라도 더 많이 쌓아 올려 의미 있는 몸집을 만들고 자기 나름의 '작품 계열'을 입체적으로 구축하는 것입니다.'

(위의 책 99~100쪽 정리)

 

며칠 전 소개한 '무엇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가'는 창작자의 영혼을 어떻게 가꿀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작가의 몸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실질적인 충고로 이뤄져있습니다. 

'제6회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든다-장편소설 쓰기'

'제7회 한없이 개인적으로 피지컬한 업'

이런 목차만 봐도 알 수 있지요. 하루키는 물리적인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합니다. 유럽 도시의 카페에서, 하와이 해변을 달린 후 숙소에서 글을 쓰는 모습이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겠지만, 그것은 작가가 글을 쓸 시간을 확보하는 방법이자, 자신이나 작품을 향한 세간의 평으로부터 자유를 획득하는 방법입니다.

매일 일정 시간 달리기와 수영으로 몸을 만드는 그의 루틴은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입니다. 하루에 다섯 시간 책상에 앉아 매일 200자 원고지 20매를 쓴답니다. '아, 오늘은 글이 잘 풀리니까 사흘치를 써볼까?' 하는 일은 없답니다. 그런 생각은 곧 '아, 오늘은 글이 안 풀리니까 하루 쉴까? 지난 번에 사흘치를 썼으니까, 뭐'하는 생각으로 이어지거든요. 중요한 것은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20매씩 꼬박꼬박 쓰는 것. 그렇게 한 달에 600매, 반년이면 3,600매를 쓰는데, '해변의 카프카'의 경우 초고가 3,600매랍니다. 

'시간을 어떻게 내 편으로 만들 것인가.' 한번 반짝 빛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불을 꺼트리지 않고 내내 살아가는 것, 그게 창작자로서 직업을 만드는 길이겠지요. 아, 생각해보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반짝이는 재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끈기입니다.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오리지널리티가 생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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