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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무엇이 우리를 '개 돼지'로 만드는가

by 김민식pd 2016. 7. 21.

교육부 정책기획관으로 있던 나향욱 씨는 신분제를 옹호하고 99% 계층을 개 돼지로 비하하는 망언으로 물의를 일으켰지요. 그는 왜 이런 얘기를 한 걸까요? 최근에 소개한 두 권의 책에서 답을 찾아봅니다.

'공부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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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장소, 환대'

2016/07/11 - [공짜 PD 스쿨/짠돌이 독서 일기] - 우리 곁의 여성차별

 

2014년에 나온 책, '공부 논쟁'에서 김두식 교수는 비인기학과를 통폐합하는 과정이 너무 무계획적이고 폭력적이라며 교육부의 정책을 비판합니다. 도대체 취업률이 낮다고 연극학과 문을 닫게 하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대기업 가겠다고 연극학과 간 애들이 아닌데.’ 대학에서 영어 강의를 종용하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짓이지요. 형인 김대식 교수가 이렇게 설명합니다.

 

 

교육정책이 졸속으로 결정되는 이유는 내가 알지. 간단합니다. 우리나라는 행정고시 붙은 공무원들, 고위관료들에게 해외연수의 기회를 줍니다. 교수들에게 연구년을 주는 거랑 비슷해요. 다수의 공무원들이 행정대학원으로 유명한 위스콘신대 아니면 버클리대를 갑니다. 거기서 1년 동안 온갖 이야기를 주워듣고 와요. '어? 미국은 총장직선제가 아니네. 학부도 우리와 다르네. 미국은 추천서나 집안이 중요하네. 케네디처럼 집안이 좋으면 무조건 하버드대를 가네.’ 뭐 이런 걸 보고 와서는 덜 떨어진 아이디어로 나라를 흔드는 거야. 그 결과 우리나라가 잘해온 것들까지 다 망쳐버리는 겁니다.'

(공부 논쟁 268)

   

'사람, 장소, 환대'(김현경 / 문학과 지성사)에서, 저자는 지금 우리 사회가 썸바디 vs 노바디의 신분주의 사회라고 말합니. 대학원생을 몸종처럼 부리는 교수, 노동자를 몽둥이로 패는 재벌 2, 레지던트에게 발길질을 하는 의사 등등. 썸바디는 노바디에게 얼마든지 무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듯 구는 거.

 

신자유주의-그 핵심은 자본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고, 노동에게 극도의 순응을 요구하는 것이다-는 노동시장에서, 그리고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의 교섭력을 약화시킴으로써 신분주의의 확산을 도왔다. 당신이 비정규직이고 언제 잘릴지 모른다면, 직장에 노조가 없거나 있거나 마나 하다면, 해고되었을 때 다시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상사가 부당한 요구를 하더라도 맞서기 어렵다. (중략)

지위와 특권을 분배하는 구조를 내버려둔 채, 자신의 지위를 남용하는 사람들에게 원칙을 지키라고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모욕이라는 공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중략)

오늘날의 신분주의의 배후에는 경제적 약자에게 굴욕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자본가와 그들을 비호하는 정치가, 언론인, 교수, 법관 들이 있다.‘

('사람, 장소, 환대' 164~166쪽 요약 정리)

(2015년 올해의 책 '사람, 장소, 환대')

 

좋은 책은 이렇게 우리 사회의 가장 깊숙한 환부를 들춰보입니다. 나향욱은 파면이라는 징계를 받았지요. 그의 죄는 말 실수가 아니라 기밀 누설이에요. 경솔하게 우리 사회의 내밀한 작동 시스템을 발설한 죄.

개 돼지 발언으로 화나셨나요? 이제 나향욱이 잘렸으니 다 괜찮아진 건가요? 문제는 나향욱 한 사람이 아니라, 그런 사람이 권력을 독식하는 구조입니다.

좋은 직장을 만들기 위해, 노조에 가입하고,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시민 단체에 가입하고, 좋은 언론을 만들기 위해, 독립언론을 후원하고, 이런 개개인의 노력만이 시스템을 바꿀 수 있어요.

우리는 개 돼지가 아니에요. 모욕을 받으면 화를 내고, 화가 나면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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