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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소설 5편 독서후기

by 김민식pd 2016. 4. 5.

2016-63 도쿄기담집 (무라카미 하루키 / 양윤옥 옮김 / 비채)

기이한 이야기들을 다룬 단편집인데, 서문격으로 쓴 하루키의 독백이 가장 좋았다.  

'관찰하고 관찰하고 또 관찰하면서 판단은 가능한 뒤로 미루는 게 소설가의 올바른 자세야.'

(책 131쪽)

사람의 인생도 비슷한 거 같다. 사람은 죽기 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타인에 대한 판단은 보류하는 게 좋다. 자신의 인생도 마찬가지. 쉽게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자. 나중에 어찌 될지 모르니, 일단 하루 하루 즐겁게 사는 걸로. 

 

2016-64 화재감시원 (코니 윌리스 / 김세경 정준호 최세진 최용준 옮김 / 아작)

역시 단편집이다. 표제작인 '화재감시원'부터 읽었는데, 오래전부터 SF 팬들에게 이 작품에 대해 많이 듣고 기대가 컸던 탓인지, 약간 실망했다. 그래서 다시 순서대로 첫번째 이야기 '리알토에서'를 읽었는데, 또 실망했다. 슈레딩거의 고양이며, 양자역학이며, 파동/입자의 이중성이며, 어려운 용어가 많이 나와 소설을 즐기기 힘들었다. 

 

그러다 '나일강의 죽음'을 읽고 불이 확 붙었다. 역시 잘 쓰는 작가구나! SF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될만한 양반이구나.

 

'클리어리 가족이 보낸 편지'의 집필 후기가 눈길을 끌었다.

 

옛날 작가가 교사로 일하며 살던 미국 시골 마을에는 우편 배달 서비스가 없어서 원고를 부치려면 우체국까지 걸어가야했단다. 당시에 원고를 보낼 땐 우편으로 보내야 했고, 편집자가 거절 쪽지를 붙여서 돌려보낼 수 있도록 반송용 봉투를 동봉해야 했다. 하루는 우편물을 가지러 갔더니 접수대에 수북한 서류봉투 더미가 있다. 여기저기 보낸 여덟 편의 소설 전부가, 모조리 거절당한 채 쌓여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가의 꿈을 접어야 하나? 하고 고민했단다. 그때 작가를 구해준 것은 이미 만들어놓은, 우표를 붙이고 주소를 적어놓은 반송용 봉투들이었다. 붙여놓은 우표가 아까우니 마지막으로 원고를 싹 다 보내본다. 그 중 하나가 잡지에 선택되었고, 그게 네뷸러 상 6번과 휴고 상 8번 수상에 빛나는 SF 계의 전설같은 작가의 시작이란다. 

역시, 인생은 끝까지 가보기 전에는 모른다.   

 

2016-65 야성의 증명 (모리무라 세이이치 / 최고은 / 검은숲)

같이 일하는 후배가 추천해서 읽은 일본 사회파 추리 소설의 거장,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책. 일본에서는 증명 3부작으로 한때 영화와 드라마판을 휩쓸던 원작들이다. 출판사에서 '작가의 이름을 걸고 책 한권 써보지 않겠나?' 하는 제안을 받고, 작가 인생에서 무언가 증명이 될만한 작품을 남기겠다는 생각에 써내려간 작품들. 1970년대 일본의 시대상과 인간 군상이 잘 묘사되어 있는 책이다. 고전의 반열에 올라 아직까지 읽히고 있는 책.


2016-66 인간의증명 (모리무라 세이이치 / 최고은 / 검은숲)


작가는 대학 3학년 때, 진로의 갈피를 잡지 못해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단다. 취업도 안 되고 공부도 안 되고, 혼자 산에 들어가 외딴 온천장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산길을 걸었단다. 그랬던 작가가 20여년이 지나 그 기억을 토대로 써내려간 이야기가 '인간의 증명'이다. 역시 인생에서 버려지는 시간은 없다.


2016-67 청춘의 증명 (모리무라 세이이치 / 최고은 / 검은숲)


2차대전에 학도병으로 전쟁에 끌려가 청춘을 잃어버린 주인공의 독백이 마음을 울렸다.


'지금은 일본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어두운 암흑의 시대다. 이런 시대에 죽어서는 안 된다. 출구 없는 터널은 없다. 언젠가 반드시 빠져나갈 수 있다. 그때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패전 후, 참을 수 없는 것을 참고,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며 살아온 일본인의 마음을 위로한 게 증명3부작의 힘이 아닐까 싶다.



'청춘의 증명' 작가 후기에서 세이이치 씨는 이렇게 말한다.

"청춘이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력을 불태우는 것과 동시에 미지를 사냥하는 것이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자신의 내면을 더듬더듬 찾는 일이자 온 세상을 적으로 돌린 싸움이다."

 

청춘의 싸움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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