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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책들의 테마파크 7. 그래픽 노블

by 김민식pd 2016. 4. 7.

2016-68 어메이징 그래비티 (조진호 글 그림 /궁리)

세상에! 어느 고등학교 과학 선생님이 쓰고 그린 만화라는데, 책의 퀄리티에 깜짝 놀랐다. 중력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과학의 모든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스 과학 철학의 시작부터, 진화와 직립보행 인간의 출현이며 현대 물리학까지 그려낸다.

생물 선생님이 물리 만화를 그려낸 사연도 놀랍기만 하다. 걸작 '로지코믹스'를 떠올리게 하는 학습 만화의 새로운 진화.

 

2016-69 버스 (폴 커시너 지음 / 이예원 옮김 / 미메시스)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뇌의 주름을 펴지는 느낌이다. 대사 한 줄 없이 그림만으로 이야기를 꾸려가는데, 때론 이렇게 활자없는 만화를 읽는 게 활자중독자에겐 꿀같은 휴가다.

글이 없다고 책장이 휙휙 넘어가진 않는다. 한 페이지에 하나의 이야기가 완결되는데 때론 페이지의 끝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 '이건 뭐지?' 되돌아가서 몇번을 다시 들여보다 퍼즐처럼 숨겨진 그림 조각 하나에서 반전의 재미를 발견한다. 생각 하게하는 만화, 좋다.

 

 

2016-70 배트맨 블랙미러 1,2 (스콧 스나이더 글 /조크, 프란체스코 프란카빌라 그림 / 밥 케인 배트맨 원작 / 김동욱 옮김 / 세미콜론)


'배트맨 대 슈퍼맨' 영화 개봉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을 가눌 길 없어 배트맨 원작 그래픽 노블을 찾아봤다. 영화를 사랑하는 팬의 자세가 이렇다. '터미네이터 제네시스'가 개봉하면, 극장 가기 전에 시리즈를 첫 편부터 다시 보고 영화관에 간다. 고교 시절 짝사랑하던 첫사랑이 동창회에 나온다는 소식을 들은 노총각 마냥 가슴이 마구 설렌다.

그랬는데... 동창회에 가보니 어디서 이상한 감독 만나 망가진 모습의 첫사랑이 나타나 가슴이 아팠다... 그래도 너를 향한 내 사랑은 변하지 않을거야... 다음엔 꼭 더 좋은 감독 만나 돌아오기를 빌게...

그래픽 노블이란 장르는, 만화지만 너무 어렵다. 특히 배트맨처럼 오래된 시리즈는 켜켜이 쌓인 고담시의 역사와 다양한 캐릭터들을 알아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국내 팬들에게는 아직 생소한 장르가 아닐까 싶다.

 

2016-71 지하철도의 밤 (윤필 만화 / 창비)

'은하철도 999'라 기억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원작 '은하철도의 밤'에서 모티브를 따온 만화다. 음... 감동이다... 내가 만약 단막극을 만든다면 이 작품을 영상에 옮겨보고 싶은 욕심이 있으나, 잭 스나이더 생각해서 참기로 한다... 때론 영상으로 훼손할 수 없는, 원작의 품위가 있는 법이다.


'은하철도 999'의 철이와 메텔의 이야기를 이렇게 각색할 수도 있구나. 새로운 시각의 청춘 성장담. 인물과 도시가 함께 성장한다. 콧등이 찡한 감동... 아직 못 보신 분들께는 일독을 권한다. 역시 이 시대, 원안 아이디어의 가장 치열한 격전장은 웹툰인 것 같다.

 

2016-72 지슬  (김금숙 그림 / 오멸 원작 / 서해문집)

예전에 오멸 감독의 '지슬'을 극장에서 보며 몇번을 울었다. 4.3 제주 항쟁이라는 이야기를 이 시대에 불러내어 억울한 혼들에게 장사를 지내는 감독의 뚝심과 연출력이 대단하더라.

만화가 영화화되긴 해도, 영화가 만화화되는 경우는 드물다. 영화 그 자체로 아주 훌륭한 작품을 굳이 만화로 다시 그린 이유는 뭘까?

박재동 선생님의 추천사.

"영화는 매우 실감이 나는 매체이지만 다시 보기가 어려운 점이 있지요. 그러나 책은 쉽게 다시 펴 볼 수 있고 또 여기저기 마음대로 펼쳐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보는 사람이 주인이 되어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지요."

책을 읽고 나니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도 좋았지만, 만화를 읽고 나니, 또다시 먹먹한 감동이 몰려온다. 나와 우리집 늦둥이 민서는 김금숙 작가의 오랜 팬이다. 보리에서 나온 '꼬깽이'며 만화로 그려낸 '판소리 춘향가' '판소리 심청가' '판소리 흥보가' 등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좋은 만화도 많이 내놓으신다. 물론 '지슬'이나 '아버지의 노래'처럼 어른을 위한 만화도 참 잘 그리신다. 김금숙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고 기억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PD 지망생들을 만나면, 만화를 많이 보라고 권한다. 콘티 공부에 이만한 게 또 없다. 나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 대본을 앞에 놓고 머릿속에 만화를 그려본다. 그게 스토리보드이자 촬영 콘티다. 공대를 나와 영업사원으로 살았기에, 나는 영상 문법 공부를 따로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오랜 만화 사랑 덕에 영상 연출도 독학으로 배울 수 있었다고 믿는다.


2016-73 설국열차 (장 마르크 로셰트  자크 로브 뱅자맹 로그랑 / 이세진 옮김 / 세미콜론)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의 원작 만화. 프랑스는 영화만 어려운 줄 알았더니, 만화도 무척 어렵구나. '설국열차'가 봉준호 감독이 만든 영화 중 가장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원작을 보니, 그게 나름 쉽게 푼 얘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원작 만화에는 극중 남궁민수로 나오는 송강호 캐릭터 자체가 없다. 아니 원작 만화 자체가 마치 영화의 프리퀄 같다. 즉 영화 '설국열차'는 만화 '설국열차'를 읽고 봉준호 감독이 새롭게 해석해 낸 새로운 에피소드인데, 나는 봉준호 버전이 더 좋다.

꼬리칸에서 탈출하여 앞칸으로 전진하려는 커티스에게 남궁민수가 하는 말. 

"나는 앞칸보다 저밖이 더 궁금하다."

이 대사가 참 좋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TV 연출가가 될 수 있는가?'

이게 어른으로서 내 삶을 관통하는 화두였다. 하지만 요즘 나의 화두는 다르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이걸 좌절이라고 부를지, 적응이라고 부를지, 해방이라고 부를지,

그 답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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