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PD는 몸 상태를 최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촬영 중 아파도, 남이 나를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름 건강하다고 생각하는데, 예전에 병으로 심하게 고생한 적이 있다. 바로 치질 때문이다. (지저분한 이야기를 꺼내 죄송합니다. 오늘 주제가 좀 그래요. ^^) 밤샘 촬영을 하느라 수면 패턴이 엉망이 되고 변비로 고생하다보니 어느 순간 치질이 오더라. 병원에 갔더니, 나중에 터지면 고생이 심하니까 미리 수술을 받으라고 하더라. 터질 때까지 버틸까 고민하다 촬영 중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되니까, 쉬는 기간에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한동안 참 힘들었다. 걸어도 아프고, 앉아도 아프고, 누워도 아팠다. 정말 앉으나 서나 엉덩이 생각 뿐이었다. 가장 두려운 순간은 화장실에 갈 때였다. 휴지로 닦을 때마다 쓸리는데... 아, 정말... 부디 여러분은 그 고통을 평생 모르고 사셨으면 좋겠다.

걸어다니는 매 순간이 고통이 되니까 문득 겁이 나더라. '나 이러다 남은 평생 여행도 못 다니는 거 아냐?' 삶의 가장 큰 낙이 여행인데 말이다. 그때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모두가 영혼의 안식을 찾는 그곳에서, 나는 항문의 안식을 찾았다...

인도 여행 가서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은 화장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다. 그곳엔 휴지가 없다. 엉? 당황 그리고, 황당. 잘 보면 구석에 작은 물 양동이가 있다. 그 물로 씻으라는 거다. 처음엔 기겁을 했다. 그러다 다시 생각해보니, 10억인의 인도인이 그런 방식으로 잘 살고 있다면, 나도 한번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인도식으로 엉덩이를 물로 씻었다. 그랬더니, 수술 후 휴지와의 잦은 만남으로 괴로워하던 엉덩이에 촉촉한 안식이 찾아왔다! 이후로 나는 휴지를 쓰지 않는다. 일을 보고 샤워기로 씻는다. (비데를 왜 사지 않느냐고 묻지 마시라. 나는 짠돌이다.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돈을 들여 하지는 않는다.)

생각해보면 치질에 걸린 이유는 화장실에서 책을 읽은 탓이다. 변기위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치질이 왔다. 아무리 책이 좋아도 절대 화장실에서는 책을 읽지 마시라! 

몸에 병이 생기는 건,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는 수십만년 동안 숲 속에서 쪼그려앉은 자세로 일을 봤다. 그 자세가 배변에 가장 자연스러운 자세인데 양변기가 도입되면서 자세가 너무 편안해졌다. 변기에 앉아 오랜 시간을 보낸, 그 편리함의 댓가가 바로 치질이다.

그렇다고 양변기를 철거하고 수세식 변소를 설치할 순 없고. 쪼그려앉은 자세를 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은 목욕탕 의자를 가져다 발을 올리고 앉으면 쪼그려 쏘는(?) 자세가 나온다. 그것도 없으면 발뒷꿈치를 들고 일을 보면 된다. 종아리 근육 강화 운동도 되고, 무엇보다 일을 보는 시간이 짧아진다.

 

습관이란 이렇게 중요하다. 새로운 습관이 배변의 고통을 다시 쾌락으로 바꿔줬다.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는 겪어보지 않고는 모른다. 쪼그려 앉기, 짧은 시간 내 끝내기, 물로 씻기, 세 가지 습관 덕분에 육신의 평화가 찾아왔다.

새로운 취미라는 게 반드시 고상하고 아름다워야 할 필요는 없지 않나? 부끄러운 개인적 고백이지만, 모쪼록 여러분은 그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충심에서 감히 올린다.

 

 

주말에 소백산을 다녀왔다.

 

 

눈꽃이 참 예쁘더라.

 

건강하고 볼 일이다.

 

그래야 이 멋진 세상을 즐길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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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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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shin86 2016.02.01 10: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변비가 생긴다면 Flax Seed 를 권합니다.

    그냥 작은수저로 한 숟가락 견과류 먹는다 생각하고 먹으면 됩니다.

  2. KEeC 2020.07.08 1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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