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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짠돌이 세계여행

격돌! 히말라야 대 파타고니아

by 김민식pd 2015. 12. 11.
92년 유럽 배낭 여행 이래 23년째, 매년 한번 이상 해외여행을 다니고 있다. 생애 최고의 여행 중 하나는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이었다. 오죽 좋았으면 큰 딸 초등학교 졸업 선물로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선물했을 정도다. 여동생이랑 조카랑 넷이서 3200미터 푼힐 전망대까지 올랐는데, 다들 즐거웠다.


히말라야에서 만난 미국인 배낭족들이 그랬다. 히말라야를 좋아하면, 남미 파타고니아도 꼭 한번 가보라고. 그래서 왔다. 파타고니아. 한 달간 여행을 마친 시점에서 둘을 본격적으로 비교해보겠다.

1. 시간
여행을 하려면 두가지가 풍족해야 한다. 시간과 돈. 둘 중에서 더 소중한 자원은 시간이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오는데 나는 36시간 비행을 했다. 여권 문제로 미국 경유 비행편을 탈 수 없었는데, 미국을 경유해도 30시간 정도 걸린다. 이곳에 오려면 유럽 경유 아니면 미국 경유다. 직항은 없다. 알아보니 거리가 멀어 한번에 날아오는 비행기는 없단다. 중간에 공중급유를 하지 않는 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해서 파타고니아 트레킹의 출발지인 엘 칼라파테까지 버스로 이동하려면 2박3일이 걸린다. 차라리 국내선 왕복 항공권을 끊는게 낫다. 파타고니아 트레킹에는 3종 세트가 있는데,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가는 또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이 4박 5일, 엘 칼라파테에서 가는 페리토 모레노 빙하가 하루, 엘 찰텐에서 가는 피츠 로이 트레킹이 각각 하루 이상이다. 아르헨티나 칠레 간 국경 통과도 있어 이들 도시를 이동할 때 마다 하루가 추가된다. 즉 파타고니아 트레킹을 하려면 1주일은 고스란히 이동에만 바친다.

네팔 히말라야는? 인천 카트만두까지 직항은 7시간 반이면 간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 버스로 8시간 걸린다. 네팔 국내선 비행기를 이용하면 30분이다. 인천 출발해서 하루만에 안나푸르나 트레킹 출발지인 포카라에 도착한다. 장기 휴가를 내기 힘든 한국 직장인의 형편을 고려하면 시간 면에서 무조건 히말라야가 압승이다.
   
2 경비
아르헨티나까지 왕복 항공권 가격은 보통 200만원에 육박한다. 거리상 한국에서 가장 먼 나라다. 낮밤도 반대, (정확히 시차가 12시간이다.) 계절도 반대다. (오늘 이곳 기온은 영상 34도. 폭염의 날씨다. 며칠전 서울엔 폭설이 왔고. 내일 귀국인데 옷을 어떻게 입어야할지 고민이다. ) 거리가 먼 만큼 이제껏 사 본 항공권 중 가장 비싼 티켓을 끊었다. 그러고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엘 칼라파테 가는 국내선 왕복 항공권을 따로 끊어야한다. 이게 왕복 60만원이다. 참고로 카트만두까지 국제선 왕복 티켓을 싸게 구하면 60만원 안팎이다. 돈 아끼려고 아르헨티나에 와서 육로 교통을 이용하면, 하루 20시간씩 버스를 타야한다. 그리고 버스비도 절대 싸지는 않다. 항공권이랑 큰 차이가 없으므로 가급적 국내선을 타는 게 낫다.

여행 경비 자체도 차이가 많이 난다. 일단 아르헨티나의 여행 물가는 정말 비싸다. 배낭족으로 다녀본 중 이렇게 비싼 나라도 없다. (참고로 난 지난 달에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미국 뉴욕을 3주간 아주 즐겁게 여행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남미의 파리라고 하는데, 여행자들은 물가만 파리 수준이라고 하더라. 유럽에서 온 여행자들이 자국과 차이를 거의 못 느낀단다. 유럽이랑 경비가 비슷하게 든다면, 차라리 역사도 있고 문화도 있는 유럽을 가지 왜 여기를 오나 싶다.

트레킹 경비도 너무 많이 든다. 3박 4일간 또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을 하려면 국립 공원 내 산장 (레퓨히오)를 이용해야한다. 산 속엔 식당이나 별도의 숙소가 없다. 6인실 도미토리의 침대 하나, 아침 저녁, 그리고 점심 도시락까지 풀보드라고 하는데, 이게 하루에 133달러다. (인터넷 예약시 미국 달러로만 결제할 수 있다.) 그나마 이것도 두 달전에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 ㅠㅠ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미토리, 침대 하나가 50달러인데, 시트를 갈아주지 않기에 개인 침낭을 이용해야한다는 거, 침낭이 없으면 돈 주고 빌려야 한다는 거...

안나푸르나에서 트레킹 비용이 하루 20~30 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정말 비싸다.
   
3 편의성
비싸면, 여행이 편하기라도 한가? 그렇지도 않다. 만약 이곳에 왔는데, 산장 예약을 못 했다면, 무료 캠핑장을 이용해서 트레킹을 할 수 있다. 텐트와 취사도구를 빌려준다. 이게 또 꽤나 비싸다. 네팔에서는 하루 10불이면 포터를 고용할 수 있다. 그냥 빈 손에 산책하듯 포터 뒤를 쫓아가면 된다. 여기는 인건비가 비싸 포터를 대동하고 다니는 이는 한번도 못봤다. 직접 자신이 배낭을 메고 가야한다. 텐트와 4일간 먹을 것을 싸서 다닌다면, 고생도 그런 고생이 없을 거다.

더 큰 문제는 언어와 외국인을 대하는 현지인의 태도다. 이곳에서 영어는 거의 통하지 않는다. 관광지에서도 안내문에 영어가 병기되는 경우가 드물다. 네팔사람의  친절함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전설이다. 적어도 그들은 영어로 소통하려고 노력을 한다. 이곳은 절대 그렇지 않다. 못 알아들으면 스페인어를 못하는 머리 나쁜 유색인종 취급 당할 뿐이다.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스페인어가 안 되면 말짱 꽝이다. 내가 내 돈 내고 이 먼 곳까지 와서 이 무슨 설움인가 싶다. 장기간 군부 독재가 지속된 나라답게 관광지 대부분이 독점 사업이다. 숙소도 버스도. 자리가 없으면 그냥 없는 거다. 엘 칼라파테에서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갈 때는 버스표가 매진이라 꼬박 이틀을 기다려야했다. 터미널에서 하루 종일 다음 버스만 기다린 적도 있다. 여행자 편의는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독점사업자가 왕이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경우, 예약없이 갔어도 한번도 숙소나 교통편의 불편을 겪은 적이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결론.

트레킹을 좋아하신다면, 가까운 히말라야를 두고 굳이 파타고니아부터 올 필요는 없다. 이곳에 온 후, 히말라야가 정말 고마운 산이란 걸 깨달았다. 다음 트레킹은 안나푸르나에 또 갈 거다.

또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을 마친 날, 어떤 분이 단체 카톡으로 북한산의 설경을 보내왔다. 사진을 보고 느꼈다.

역시 산 중의 산은 북한산이다.

비싼 비행기 표를 끊을 필요가 없다.
전철 타고 가면 된다.
휴가를 모을 필요도 없다.
언제든 당일 산행이 가능하다.
둘레길도 있고 갖가지 다양한 코스의 조합도 가능하다.

가까운 것부터 즐기자. 공짜로 즐길 수 있는 것부터 즐기자.
이제 한달간의 배낭여행을 마치고 내일 귀국이다.
한달간 집나와 고생해보니 또 깨달았다. 역시 집이 최고다. ^^
소중한 내것들을 더욱 귀하게 여기며 살 것이다.

몇년전 눈 온 다음날 북한산 둘레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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