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일정으로 아르헨티나 여행중입니다. 아르헨티나가 배출한 세계적인 유명인이 많습니다. 그중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디에고 마라도나? 리오넬 메시? 에비타 페론? 체 게바라? 제가 들은 답은 아주 의외의 인물이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1800년대 남아메리카는 스페인의 식민지였습니다. 그 시절, 스페인의 제국주의 통치에 맞서 남미 곳곳에서 독립운동을 위한 무장 세력들이 봉기합니다. 곳곳에서 게릴라 전투를 펼치죠. 그때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호세 데 산 마르틴이라는 독립군 장교가 있었어요. 그는 스페인 왕당파를 상대로 지리한 게릴라전을 펼치기보다 단번에 뱀의 머리를 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페루 리마에 있던 스페인 식민총독부를 공격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페루 리마로 진격하는데 문제가 하나 있지요. 그 사이에는 안데스 산맥이 있습니다. 길이가 7000km에 평균고도 4km, 히말라야를 제외하고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맥.

나폴레옹이 넘은 알프스보다 배가 더 높은 산을, 정규군도 아닌 식민지 치하의 의용군을 이끌고 넘습니다. 고산병을 이기려고 마늘과 양파를 씹으면서 행군했답니다. 페루 리마에 있던 스페인 왕당파가 안데스를 넘어온 독립군의 모습에 얼마나 놀랐을지 눈에 선합니다. 기선제압에 성공한 산 마르틴은 연이은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칠레와 페루를 차례로 해방시킵니다. 북에서 리마까지 내려온 또 한 사람의 남미 독립 영웅 시몬 볼리바르 장군을 만난 산 마르틴은 볼리바르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독립전쟁의 영웅들은 대개 이름을 남기고 권력을 얻습니다. 볼리바르 장군은 자신의 이름을 딴 볼리비아의 초대 대통령이 되고요. 미국 독립 전쟁의 영웅, 워싱턴 장군은 자신의 이름을 딴 수도에서 미국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합니다. 그러나 산 마르틴은 달랐습니다.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그는 조용히 낙향합니다. 고향에 오니 내전이 한창입니다. 스페인 제국주의가 무너지자 식민지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시작된거죠. 각 세력은 모두 독립 전쟁의 영웅 산 마르틴을 영입하여 기선을 잡으려고 혈안이 됩니다. 산 마르틴은 내전에 참전하라는 모든 요청을 거절합니다. 자신이 해방시킨 식민지 민중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눌 수는 없다고 말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내를 돌아다니다 산 마르틴 광장에서 그의 동상을 봤어요. 말을 탄 낯선 이름의 군인 동상에 처음엔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정치 군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지켜야할 사람들에게 총을 겨누는 이들이니까요. 남미의 불행한 현대사에는 유독 정치 군인이 많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나니, 산 마르틴은 정말 존경스럽더군요.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사나이.

해방자 산 마르틴, 그는 아르헨티나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습니다.

요즘 한국에선 역사논쟁이 한창입니다. 근대화의 아버지, 정부수립의 아버지, 온갖 이름의 아버지들이 난무하는 요즘, 아무것도 되지않은 한 사람의 생을 돌아봅니다. 이런 사람이 진짜 국민의 아버지죠.

부록~~~

Free Walks in Buenos Aires 부에노스 아이레스 공짜 걷기 여행을 했습니다. 무료라고는 하지만 마지막에 각자의 만족도에 따라 가이드에게 팁을 줍니다. 상당히 괜찮은 투어 시스템입니다. 유럽에서 생겨났다는데 나중에 가면 거기서도 꼭 해보고 싶네요.

걷기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가 레콜레타 묘지였어요. 인생의 종착지랑 같지요. ^^ 무슨 묘지가 건축박물관 같아요. 시대별로 다양한 건축양식이 묘지를 장식하여 들어서자 "우와 우와!" 하고 탄성을 질렀어요. 부에노스 아이레스 최고의 여행지!

그중 좀 튀는 묘지를 봤어요. 성의없이 저렇게 돌로 쌓아놓은 겁니다. 저건 뭐지? 토마스 귀도 장군이라고 산 마르틴 장군과 함께 안데스 산맥을 넘은 장교였대요. 그는 죽을 때 아들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시간을 보낸 안데스 산맥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막상 돌아가시고 나니 아들은 고민에 빠집니다. 안데스 산맥까지 어떻게 가지? 나중에 성묘는 또 어떻게 가지? 그러다 묘수를 생각해냅니다. 아버지를 안데스 산맥으로 모시기보다 안데스 산을 여기로 가져오자. 네, 안데스 산맥의 돌들을 가지고 와서 아버지를 그 돌무덤 아래 모십니다. 그래서 저렇게 독특한 무덤이 레콜레타에 생긴 겁니다. 감히 신의 한 수라고 부르고 싶네요. ^^

스페인어를 몰라도, 어느 정도 해석이 되지요?
In Memoriam... Al Brigadier General Tomas Guido
Procer de la Independen Americana

In memory of... The Brigadier General Tomas Guido
어쩌구... of American Independence

미대륙 독립전쟁의 영웅 토마스 귀도 여단장을 추모하며... 정도 아닐까요?

이렇게 영어만 해도, 다닐 때 큰 문제는 없어요.

여행은 영어공부의 보람이자 동기부여랍니다~^^

멋진 산 마르틴이라는 사람의 생애를 처음 알려준 Free walks 가이드 마리아노에게도 감사를!
알고나니 보이는게 달라지고, 다르게 보이고 나니 이 도시가 더욱 좋아졌어요.
Posted by 김민식pd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sugarlover 2015.11.17 1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존경스럽네요 꼭가보고싶습니다ㅎ
    좋은글잘보고있어요ㅎ 즐거운여행되세요ㅎ

  2. 박보영 2015.11.17 15: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끝부분의글이인산적이네요.모쪼룩행복한여행됫소.화이팅

    • 김민식pd 2015.11.21 15: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선생님, 매번 포스팅 공유해주시고 기운 팍팍 불어넣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산티아고 여행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