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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가 틀렸다.

by 김민식pd 2015. 1. 12.

신년이다. 올해 운수가 어떨지 점쟁이라도 찾아가고 싶은 심정이다. 20년 전 어머니가 여동생을 데리고 점을 보러갔다. 동생의 결혼운과 취업운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나오는 길에, ‘참 얘한테 오빠가 하나 있는데.’ 하고 운을 뗐더니, 점쟁이가 눈을 지그시 감고 한마디 하더란다.

 

아들 걱정은 하지 마. 지금 공부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어머니는 그 말에 김이 팍 샜다. 당시 난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서 영업사원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용하다더니 복비만 날렸구나 싶어 그냥 나왔단다. 그런데 1주일 뒤 회사 다닌다는 아들이 갑자기 부모님을 찾아왔다. 그 시절 나는 퇴근하고 저녁마다 통역대학원 입시반을 다녔는데, 직장 일보다 공부가 더 재미있었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대학원에 가겠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펄펄 뛰며 반대하셨다. 그때 어머니가 나섰다.

 

그래,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점쟁이가 그러는데, 너는 공부 하면 더 잘 된다더라.”

 

덕분에 첫 직장에 사직서를 던질 때, 부모님을 설득하기가 쉬웠다. 참 용한 점쟁이도 다 있다 싶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모든 역술인들이 다 그런다더라. 일단 자신 있게 말하고, 틀리면 그냥 우긴단다.

 

어렸을 때 집 마당에 커다란 나무 하나 있었지? 없었어? 다행이야. 있었으면 큰 일 날 뻔 했어. 조상님 음덕이네.”

 

지난 대선이 끝나고 한 달 후, 피디저널로부터 칼럼 연재 청탁을 받았다. 그때 편집자가 제목을 뭐로 하겠냐고 묻기에 나는 어설픈 점쟁이 흉내를 냈다.

 

앞으로 한동안 어려운 시기가 계속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세월은 우리 모두에게 유머 감각을 키워 줄 절호의 찬스가 될 것이다. 힘든 때일수록 웃음의 힘으로 버텨야 하지 않겠는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때는 일단 웃고 보련다. 코미디 피디는 우리 시대의 광대라고 생각한다. 광대가 웃음을 잃어버리면, 희망은 어디에 있겠는가.’

(2013. 2. 25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첫 칼럼.)

 

대선이 끝나고 한동안 괴로웠는데, 나의 괴로움을 들여다보니 나라 사랑이 지나친 탓이더라. 어떤 일이든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내 일이 아닌 듯, 내 회사가 아닌 듯, 내 나라가 아닌 듯, 거리를 두고 보면 웃어넘길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2년이 지나고 보니, 내 점괘도 틀리고, 내 처방도 틀렸다.

 

비극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코미디더라. 그런데 코미디인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스릴러였고, 스릴러인줄 알았는데 결국엔 호러였다.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며, 언론이며, 나라가 망가져가는 게 점입가경이라 감히 앞날을 예측하기도 두려운 지경이다. 설마 했지만 이렇게까지 나빠질 줄은 미처 몰랐다. 어설픈 광대의 웃음으로 넘길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점괘가 틀렸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어설픈 점쟁이일수록, 틀렸을 때 우겨야 한다. 이렇게 괴로울 때일수록 웃어야 한다고 우겨야 한다. 저들도 자신의 죄를 모르는데 왜 굳이 내가 그들의 죄로 괴로워해야 한단 말인가? 여기가 끝이 아니다. 통역사 시절에 배운 영어 표현이 하나 있다. Expect the worst, but hope for the best. 최악을 각오하고, 최선을 꿈꾼다. 지금 이 순간이 아무리 괴로워도 언젠가는 오늘을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을 기약하며 버텨야한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때는, 그래도 웃는 게 낫다.

 

(피디 저널 연재 칼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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