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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칼럼니스트의 비애

by 김민식pd 2014. 8. 14.

지난 630일부터 74일까지 피디 교육원에서 주최한 피디 글쓰기 캠프에 다녀왔다. ‘피디저널에 칼럼 쓰는 사람이 무슨 글쓰기 교육을 받고 그래.’ 하고 핀잔을 준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은 모른다. 무명 칼럼니스트의 비애를.

 

칼럼을 쓸수록 느끼는 건 내 글이 참 부족하다는 것이다. 313일자 피디 저널에 국정원에 종북좌파가 있다.’는 칼럼을 썼다. (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51324) 간첩 수사 증거 조작과 대선 댓글 공작은 모두 국정원 내부에 암약하는 종북좌파가 북한의 지령을 받고 일으킨 대한민국 정부 정통성 훼손 사건이라고.

 

나는 칼럼을 쓰면서 한참을 고민했다. 나의 가설이 사실이라면 북한 공작조의 표적이 될 것이요, 거짓이라면 국정원에서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할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한 욕이 당신은 빨갱이야!”. 그런데 일개 코미디 피디가 감히 국정원을 종북좌파로 지목하고도 무사할 수 있을까? , 무사하더라. 아무런 반응도 없더라. 그래서 난 국정원이 무척 대범한 조직인줄 알았다. 그러다 며칠 전 신문 기사를 보고 패닉에 빠졌다.

 

국정원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표창원 전 교수, 각하 처분

 

국정원은 표 전 교수가 지난해 1<경향신문>에 기고한 국정원은 위기라는 취지의 칼럼의 일부를 문제삼아 표 전 교수를 국정원 감찰실장 명의로 고소했다. 표 전 교수는 해당 칼럼에서 “(국정원이 위기를 맞은 것은) 정치관료가 정보와 예산, 인력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거나 국제 첩보 세계에서 조롱거리가 될 정도로 무능화·무력화돼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내용이 국정원과 국정원 직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720일자 기사)

 

국정원을 빨갱이라 지목한 내 칼럼은 놔두고 국정원의 무능을 지적한 표창원 교수의 글은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무명 칼럼니스트의 글이라고 국정원이 내 글은 싹 무시한 것이다. 천기누설을 각오하고 목숨 걸고 쓴 칼럼인데, 개그로 취급하다니! 글 못 쓰는 설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날리는 분들 중에 내가 배우고 싶은 두 사람이 서민과 표창원 교수다. 두 분 다 원래 글로 먹고사는 이들이 아니었다. 서민 교수는 기생충학자고 표창원은 범죄 심리 프로파일러다. 현미경으로 기생충만 들여다보던 사람이 어느 날 눈 들어 세상을 보니, ‘오호 통재라, 기생충이 사람 모양을 하고 권좌에 앉아 백성들의 고혈을 빨고 있구나. 내 기생충보다 못한 인간들에 대해 글을 쓰리라.’ 확대경으로 사건 증거만 들여다보던 이가 어느 날 눈 들어 세상을 보니, ‘통탄할지고 진짜 범죄자들은 법 위에 군림하고 있구나, 떼도둑보다 더한 저들을 내가 글로 징치하리라.’ 이것이 서민과 표창원이 칼럼니스트로 뜨게 된 배경이다. 그런 점에서 누구 말마따나 이명박과 박근혜는 계몽 군주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정치적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고마운 분들이시니 말이다.

 

정치라는 것이 개개인의 삶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인 줄 미처 몰랐다. 나는 요즘 정치 때문에 밥그릇의 위기를 심각하게 느낀다. 인터넷이나 소셜 미디어의 공세로 가뜩이나 제도권 언론의 입지가 좁아드는 마당에 친정부 뉴스만 쏟아내고 있으니 젊은 사람 중에는 공중파 뉴스를 본다는 이가 거의 없다. 언론을 꼼꼼히 챙기시는 높은 분들의 각별한 애정 덕분에 공중파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지난번 글쓰기 캠프, 알찬 프로그램이나 훌륭한 강사진에 비해 피디들의 참석률이 저조해 아쉬웠다. 나는 당분간 글쓰기 공부에 매진할 생각이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이나, 회사가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니, 다시 이력서 쓸 날이 머지않았다. 2의 구직활동을 위해서라도 다음번 피디 글쓰기 캠프는 성황리에 이루어지길 바란다.

 

피디 글쓰기 캠프가 열린 ES 제천 리조트, 며칠간 책 읽고 글쓰기 딱 좋은 곳이었어요.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만나는 시인들의 글귀도 좋았구요. 꼭 다시 가고 싶은 공간.

 

산책하다 만난 글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말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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