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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가 답이다

by 김민식pd 2014. 12. 9.

내게는 아내가 질겁하는 버릇이 하나 있다. 나는 전철에 타면 앞에 앉은 커플들의 애정 행각을 관찰한다. 아내의 후배가 결혼한다고 하면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사랑에 빠졌는지 캐묻는 게 버릇이다. 한국의 드라마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메인 테마다. 연애 감정을 연기하는 배우를 보고 NG를 외치느냐 오케이를 부르냐는 그가 인간 남녀의 애정 행태를 얼마나 진실하게 재연하는가에 달려있다. 동물생태학자가 야생동물의 짝짓기를 관찰하여 논문의 정확성을 높이듯, 드라마 피디인 나는 사람들의 애정 행각을 연구함으로써 내 드라마의 디테일을 보강한다.

 

진화심리학 (데이비드 버스 지음, 이충호 옮김, 최재천 감수, 웅진 지식하우스) 이라는 책을 보면, 연애에 있어 남녀의 심리가 다른 것은 정자와 난자에 투자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란다. 남자는 정자를 수많이 생산하는데, 시간당 약 1200만 개의 비율로 보충되는 반면, 여자는 평생 공급할 수 있는 난자의 수가 약 400개로 고정되어 있으며, 보충되지도 않는다. 고로 남자는 매우 저렴한 기회비용으로 성에 투자하는 반면, 임신과 출산을 담당한 여자는 최대한 신중하게 선택해야한다. 이러한 차이가 성선택에 반영된 결과, 여자는 남자의 경제적 자원, 사회적 지위, 야망과 근면성, 신뢰성과 안정성 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데 비해, 남자는 젊음, 육체적 미, 건강한 체지방 비율 등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심리가 발달했단다.

 

어떤 이성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우리 마음의 평가 기제는 수십만 년 동안 일어난 진화의 산물이다. 하지만 100년간 일어난 세상의 변화를 우리 마음은 아직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100년 전만 하더라도 남자가 오늘날 기준에서 매력적이라고 할 만한 여자를 평생 10명이나 보았을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요즘은 TV, 영화, 광고를 통해 하루에도 수십 명씩 아름다운 여성의 이미지를 본다. 그 결과 남자는 현실에서 만나는 이성에 대해 덜 만족하거나 덜 헌신할 수 있다. 여자는 미디어 속 연예인과 경쟁하느라 미용과 성형에 필요 이상의 투자를 하게 된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모든 생물은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기 위한 유전자 전달 기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성을 만나 사랑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생명으로서 가장 큰 과업인데, 요즘 젊은 세대는 마치 파업이라도 하듯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며 산다. 드라마에서 너무 예쁜 여배우를 캐스팅하고, 잘나고 멋있는 남자가 재벌 역할로 나오는 탓에 출산율이 떨어지는 건 아닐까 고민까지 해본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지구의 멸망 위기를 그린다. 나는 지구보다 한국의 미래가 더 걱정이다. 지금 한국의 출산율은 1.25명으로 세계 최하위를 달리고 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2750년에는 대한민국 인구가 소멸할 위기에 닥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지속되면 정치의 보수화는 가속화되고, 출산과 육아를 부담해야 하는 젊은 세대에게 정치 경제적 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그 결과 젊은이들은 다시 연애나 결혼, 출산을 포기하게 되어 한국 사회의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될 것이다.

 

아내가 눈치를 줘도, 나는 지하철에서 젊은 남녀의 애정 행각을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다. 아기를 안은 부부가 타면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나는 사랑이 세상을 구할 것이라 믿는 연애지상론자다. 지구의 종말을 다루는 영화를 봐도 마지막 해법은 항상 사랑이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봐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내 아이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고 마음먹게 하는 건 결국 사랑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통과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건 사랑이라 믿는다. 드라마에 넘쳐나는 로맨스 환타지에 빠지기보다 현실의 사랑에 더욱 매진해야 할 때다.

 

(PD 저널 연재 칼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두 딸은 내 뜨거웠던 청춘의 증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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