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김민식이지만, 별명은 김민종이다. 잠깐, 거기 짱돌 집어드시는 분, 동작 그만! 내 외모가 원조 꽃미남 배우 김민종과 닮았다는 의미에서 붙은 별명이 아니니, 절대 오해마시길. 2012년 내가 MBC 노조 부위원장으로 일할 때, 당시 위원장이던 정영하 선배의 충실한 이란 뜻인지, 위원장이 무슨 말만 하면 딸랑 딸랑 맞장구를 친 덕분인지 분명치는 않지만 하여튼 집행부 내에서 내 별명이 김민이었다. ‘위원장님, 만세! 딸랑 딸랑~’ ^^

 

하지만 아무리 딸랑거려도 나는 정영하 선배에게 진 빚을 다 갚을 수 없다. 내가 청춘 시트콤 뉴논스톱으로 연출 입봉했던 2000년 당시, 정영하 선배는 더빙실에서 음향 효과 믹싱과 웃음 더빙을 담당하고 있었다. 신참 피디가 연출하는 프로그램에는 각 분야 최고 에이스를 투입하는 것이 MBC의 전통이다. 정영하 선배는 소리를 만지는 능력도 탁월하지만 무엇보다 어린 연출도 편안하게 배려해주기에 모든 연출들이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 1순위였다.

 

매주 5편씩 일일 시트콤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긴장된 순간은 방청객을 모아놓고 웃음 더빙을 할 때다. ‘썰렁하면 어떡하지? 재미없으면 어쩌지?’ 숙제검사 받는 피디만큼 외로운 이가 또 있을까? ‘뉴논스톱의 경우, 초반 시청률이 저조해 특히 마음 고생이 심했는데, 그때 더빙실에서 내 등을 지켜준 이가 정영하 선배다.

 

민식 씨, 너무 걱정하지마. 저 양동근이라는 친구가 하는 코미디, 재미있어. ‘딱 걸렸어 한 턱 쏴!’ 저거 다음 주에도 또 시켜봐. 밀면 유행어가 될 거 같아. 그리고 조인성인가? 그 신인도 괜찮은 것 같아. 집사람이 잘 생겼다고 좋아해. 이제 조금 있으면 재미있다는 반응 올 테니까 현장에서 배우들 힘 빠지지 않게 잘 해줘. 민식 씨 특기가 현장 분위기 띄우는 거잖아?”

 

훗날 그가 노조 전임이 되어 현업에서 빠지게 되었을 때 아쉬워하는 피디들이 많았다. ‘사람 좋은 양반이 거절 할 줄 모르는 성격 때문에 괜히 노조에 발이 묶였어.’ 하고. 2011년 봄, 그가 MBC 노조 위원장직을 떠맡았을 때, 나는 빚 갚는 마음으로 편제부문 부위원장직을 맡았고 1년 후, 우리는 기나긴 파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파업을 하며 집행부로서 가장 힘든 것이 투쟁의 수위를 조정하는 일이었다. 보도국이나 교양국은 김재철 체재에서 받은 탄압으로 열기가 뜨거웠지만, 내가 속했던 드라마국이나 예능국은 상대적으로 싸움에 대해 미온적이었다. 이럴 때, 누구 입장에서 싸울 것인가? 박성호 기자회장의 해고가 결정된 날, 우리는 모여서 긴 회의를 했다. ‘계속 1층 로비 민주의 터를 지킬 것인가, 분노한 보도국 조합원들을 이끌고 10층 사장실로 올라갈 것인가?’ 그때 정영하 선배가 한 말.

 

박성호 앵커는 MBC 보도국 사람들이라면 선후배고 좌우를 막론하고 누구나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입니다. 그런 이가 해고를 당했으니, 기자들이 느끼는 좌절과 분노가 클 것입니다. 누군가 고통에 울부짖을 때, 남은 이들이 그 아픔을 외면한다면, 공동체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노조는 가장 억울하고 아픈 사람의 입장에서 싸우는 곳입니다.”

 

박성제 기자가 쓴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를 보면, MBC 사장과 노조 위원장은 이렇게 갈린다. MBC 사장은 자리 구걸하느라, 정치권에 줄 대고, 청와대 불려가서 쪼인트 까이고, 후배를 자르기까지 하며 지키는 자리고, 노조 위원장은 누구도 하려 들지 않아, 다른 이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착하고 책임감 투철한 선배가 가는 자리다.

 

이렇게 좋은 사람이, 이렇게 좋은 선배가 회사에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법원의 복직 판결이 났는데도 그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나는 참을 수 있다. 해고자들이 대법원의 판결을 들고 함께 MBC로 돌아오는 날까지 나는 기다릴 것이다. 그가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나는 사타구니에서 방울소리가 날 정도로 달려갈 것이다. 그리고 MBC 정문 앞에 서서 외칠 것이다.

 

정영하 위원장님, 만세!” 딸랑 딸랑~ ^^

 

 

 

2012년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위해 남부 지법에 출석하는 MBC 노조 집행부,

가운데 키 크고 안경 낀 분이 내가 존경하는, 정영하 위원장입니다.

 

(해직언론인 복직 촉구를 위해 한국방송기자협회보에 쓴 글입니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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