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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꾸는 복수

by 김민식pd 2014. 2. 10.

몇 해 전, 20년 만에 처음으로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갔다. 고교 시절, 아름다운 추억이 별로 없는 탓에 동창과의 만남을 의도적으로 피해왔는데, 얼굴 한번 보자고 그래서 나갔더니 누가 그러더라.

, 이번에 내조의 여왕이라는 드라마 만든 피디가 우리 학교 동창이라더라? 누군지 아냐?”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거 난데?”

니가 누군데?”

김민식.”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 우리 학교에 김민식이라는 애도 있었냐?”

 

동창들이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나는 고교 3년 동안 이름으로 불린 적이 없다. 고교 시절 지독한 왕따였던 나는 늘 별명으로 불리는 신세였다. 따돌림을 주도한 악당이 둘 있었는데, 그놈들이 내 부족한 외모를 비꼬는 별명을 지어 집요하게 부르니 어느새 전교에 퍼지더라.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을 꽤나 불행하게 보냈다.

 

어른이 되어 피디가 된 나는 그들의 치 떨리는 우정을 갚아주기로 결심했다. 언젠가 내가 만드는 드라마에 악역이 나오면 그 친구들 이름을 붙여줄 거다. 조강지처 버리고 바람피운 놈이나, 권력에 눈이 멀어 선량한 사람들의 밥줄을 함부로 끊는 천하의 악당, 이런 놈들에게 그 친구들 이름을 붙이는 거다.

에라이, *** 같은 놈아.” “이런, ### 보다 못한 놈.”

친구들의 이름을 욕으로 만들어 온 국민의 유행어로 만드는 것, 그게 내가 꿈꾸는 복수다.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니, 나 자신이 참 못났더라. 고교 시절 짖궂은 친구들의 놀림을 중년이 되도록 한으로 품고 살다니. 이렇게 못났으니 왕따가 되지. 그 녀석들은 나를 까맣게 잊었을 텐데 왜 나만 괴로워하며 산단 말인가. 그냥 잊고 즐겁게 살기로 결심했다. 잘 사는 게 복수다.

 

지난 일은 잊고 즐겁게 살겠노라 다짐했는데, 얼마 전 또다시 평정심을 잃게 만드는 기사를 접했다. 김재철 전 MBC 사장이 사천시장 선거에 출마하겠단다. 새누리 당에서는 서울 쪽 보궐선거 출마를 권유했지만, 본인은 중앙정치보다 지방정치가 맞는다는 생각에 거절했다고. 그 소식에 나는 또 길길이 뛰었다.

이게 말이 돼?”

 

그러자 옆에서 보던 마님이 한마디 했다.

그게 화를 낼 일이야? 오히려 잘된 일 아냐?”

무슨 소리야?”

생각해 봐. 김재철이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나오는 건, 절대 나쁜 일이 아니야.”

 

! 난 역시 마님보다 한 수 아래다.

 

김재철 사장님의 용단에 박수를 보낸다. 사장님같이 훌륭하신 분께서 부디 지방선거에 출마하여 새누리당의 정치 수준을 온 국민에게 알려주는 기회로 삼기 바란다. 2012년 대선 보도를 망치고, MBC를 망가뜨리는데 있어 정치적으로 불순한 의도는 없었다고 말해온 사장님이 새누리당 깃발 아래 지방선거에 출마하면 많은 의문이 해소될 것 같다.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김재철을 서울 쪽 후보로 영입하려고 했던 새누리당 관계자가 누구였는지 꼭 밝혀주시기 바란다. 사장님이 혼자 허풍떨었다고 생각하는 그런 불손한 사람들이 주위에 있더라. 꼭 오해를 풀어주시기 바란다.

 

김재철 사장은 문화 예술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신 분이다. 특히 국악에 대한 그분의 지극한 사랑은 내가 보증한다. 부디 중앙무대에서 그 분의 정치적 역량이 활짝 꽃피기를 기대한다. 사장님 덕에 정직 6개월에, 대기발령에, 구속영장 2번 맞은 내가 이 정도 멘트는 날려줘야 대인배 소리 듣지 않겠는가.

 

 

 

비 온 후 뜨는 무지개야, 너 참 반갑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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