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따라의 비애

2014. 1. 13. 04:51

고백하자면 나는 뼛속까지 딴따라다.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첫 직장에서는, 야유회 가서 기타 메고 사회 보며 노래하고 춤추고 사람들을 웃겼다. 통역대학원 다닐 때는 시청각실에서 남들 CNN 뉴스 받아 적을 때, 나는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틀어놓고 랩 가사 받아 적고 안무 동작 외웠다. 날더러 다들 오락 PD가 적성에 맞을 것 같다 해서 MBC 예능 피디에 지원했다.

 

타사 피디들께는 죄송하지만, 나는 KBSSBS 입사를 꿈꾼 적이 없다. KBS는 공무원 조직이라 갑갑해 보였고, SBS는 소유주가 있는 개인 회사라 윗사람 눈치를 봐야할 것 같아 싫었다. 역시 자유분방한 딴따라를 받아 줄 곳은 그래도 MBC가 아닐까. 그래서 MBC 한 군데에 원서를 쓰고 2주 동안 언론사 기출문제집 한권 풀어 입사시험을 봤는데 한 번에 붙었다. 완전 재수!

 

나 같은 딴따라 날라리를 피디로 뽑아준 것도 고맙지만, 시트콤 연출하고 싶다하면 시트콤 시켜주고, 드라마 만들고 싶다하면 드라마 맡겨준 회사에 늘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 고마운 회사에 빚 갚는 심정으로 맡은 직책이 노조 부위원장이었고, 오로지 MBC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170일간 파업을 했다가 6개월 정직을 받았다. 업무만큼이나 휴식도 확실하게 챙겨주는 회사, 역시 내 사랑 MBC.

 

미국 와튼 스쿨에서 MBA를 공부한 아내는 경영전략 컨설턴트로 일하는데, 내가 다닌 신천교육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MBC 아카데미로 교육 발령을 받아 6개월 가까이 업무 일선에서 배제된 이들 중에는 아내가 처녀시절 좋아했던 김상호 아나운서도 있고, 내가 존경하는 한학수 피디도 있었다. 아내가 한마디 했다.

 

오너가 있는 회사라면 꿈도 못 꿀 일이지. 그 사람들 인건비가 얼만데 그런 식으로 놀려? 20년 넘게 일한 베테랑 기자는 업무배제하고, 시용 기자 뽑아 뉴스 경쟁력을 살린다고? 경영 전문가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 그런 식으로 자기 회사 운영할 오너사장이 있는지.”

그리고 아내가 내게 뜨끔한 말을 던졌다.

그게 당신이 좋아하는 MBC의 치명적 약점이지. 주인이 없다는 건, 사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는 계기도 되지만, 낙하산 사장 하나가 작정하고 망가뜨리면 무너지는 것도 순간이라는 거.”

 

MB 정권하에서 망가진 게 어디 MBC 뿐이랴. 2012년 갤럽에서 발표한 세계 133개국의 언론 자유 지수에서 한국은 87위를 기록했다. 낙하산 부대를 앞세운 MB 정권의 방송 장악이 얼마나 지독했으면 2012년에 KBS MBC YTN 3사가 합동 파업을 다 벌였겠나. 기자 출신으로 대통령 언론 특보로 일한 이동관은 어느 라디오 인터뷰에 나와 이렇게 말하더라. ‘어떤 측면에서는 오히려 표현의 자유 과잉이다. 아니면 좀 방종이다.’라고.

 

언론 자유보다 권력이나 땅을 더 사랑하는 기자, 우리는 이런 사람을 사이비 기자라 부른다. 그런 그가 무슨 사이비 대학 총장이 되었다기에 뭔 소린가 하고 기사를 들여다보니 어느 사이버 대학의 총장으로 취임했다더라.

 

아니 사이버 대학이 사이비 대학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사람을 총장으로 뽑아! 언론을 말아먹은 전과를 생각하면 이제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땅으로 돌아가 농사나 지어야하는 거 아냐? 그 대학도 정말 섭섭하네.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인간을, 왜 총장까지 시키는 거야?”

신문을 보다 버럭 소리 질렀더니, 상 차리던 아내가 한마디 하더라.

참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그치? 진짜 웃기는 거지?”

아니, 당신 같은 날라리 딴따라가 신문 보며 나라 걱정을 다 하는 시국, 이런 상황이 더 웃기다고 본다, 나는.”

마님이 한마디 하실 때마다 난 정말 고민된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피디 저널 칼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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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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