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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력 부족도, 죄다

by 김민식pd 2014. 4. 7.

2012MBC 파업 때 일이다. 해직 언론인을 대거 양산한(?) 당시 파업에서 최초의 해고자는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기자들의 제작 거부를 이끈 박성호 기자회장이었다. 온건 합리주의자라는 평가를 들으며 동료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웠던 박성호 기자의 해고는 많은 보도 부문 조합원들의 분노를 불러왔다. 당시 노동조합 편성제작 부문 부위원장으로 일하며 집회 프로그램 기획과 연출을 맡았던 나는 딜레마에 빠졌다. 해고를 사주한 이는 김재철 사장인데, 파업 한 달이 지나도록 김재철 사장은 회사에 나타나지 않았다. 책임자가 자리에 없는 상태에서 해고에 격분한 조합원들의 분노는 어떻게 가라앉힐 것인가. 그때 떠올린 아이디어가 액땜 굿이었다.

어린 시절 경주에서 자란 나는 무당굿을 몇 차례 봤다. 돌림병이나 횡액 같은 흉사가 있으면 그 모든 걸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 탓으로 돌려 귀신을 쫓고 복운을 부르는 한 판 굿을 벌였다. 굿은 우선 마을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이롭고, 그렇게 편안해진 마음이 스트레스 억제와 면역력 강화로 이어져 미래의 질병이나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그래 선현의 지혜를 오늘에 되살려 굿을 벌이는 거야!

격앙된 기자들이 해직 기자 살려내라며 보도국 사무실에 몰려갔다가 자리를 지키는 애먼 동료들과 충돌이라도 벌어지면 안 될 일이다. 파업이 끝나고 MBC가 정상화되면 제작 현장에서 만나 뉴스 경쟁력 제고를 위해 어깨 걸고 일해야 할 동료들인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보도국 사무실로 달려갈 때 내가 앞장섰다. 나야 딴따라 코미디 피디이니 보도국 선배들에게 욕 좀 먹으면 어떤가. 원래 시위 현장에서 돌을 던지고 화염병을 던지지만 난 그냥 소금만 조금 뿌렸다. 분노의 화살을 귀신에게 돌리는 것이다. 이건 사람 탓이 아니다. 귀신 탓이다. ‘밥줄 끊는 해고 귀신 물러가라. 편파 보도 자행하는 왜곡 귀신 물러가라.’

며칠 후, 길놀이를 하고 굿판을 벌였다는 이유로 인사위에 회부되어 나는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약간 서운했다. 조합원들의 분노를 웃음과 풍자로 승화시킨 나의 기획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거다. 보도국 선배들이 나를 무척이나 미워한다는 소식에 좌절했지만, 나는 연출답게 이 모든 죄를 내가 다 짊어지기로 했다.

드라마 피디가 뭔가. 작품이 성공하면 모든 공은 작가와 배우와 제작진 모두에게 돌리고, 망하면 모든 책임을 혼자 오롯이 짊어지는 사람 아닌가.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만든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외면을 받았다면 문제는 연출력의 부족이지, 시청자의 이해력 부족이 아닌 거다. 연출력 부족도 죄니까, 벌도 달게 받아야지.

취임 후 주요사안에 대하여 내내 침묵을 지켜오던 박근혜 대통령이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통일은 대박이라 천명하고 독일까지 가서 한반도 통일에 대한 정책 구상을 발표했다. 하지만 드레스덴 선언 이후 남북관계는 되레 악화일로다. 한반도 통일 모델은 독일식 체제 흡수라 천명함으로써 북한지도부의 반발을 부르고 또 무력시위로 이어져 결국 한반도 전쟁 분위기 고조로 다가올 지방 선거에서 보수 정당이 유리하게 판세를 전개한다는 것이 애초의 기획 의도는 아니지 않겠는가. 내가 보기에 이건 그냥 연출의 실패다. 기획의도가 시청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거다. 원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고 진지하게 사과하는 게 옳다. 성희롱도 그렇지 않은가. 나는 호감의 표시로 한 행동이었지만 상대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면 그게 바로 성희롱이다. 나의 의도를 변명하기보다 상대가 느낀 불쾌함에 대해 사과부터 하는 게 우선이다.

그런 점에서 재작년 MBC 파업 당시 나의 치기어린 굿거리에 마음의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도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기획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다. 파업이 끝난 후, 일터에서 다시 만난 MBC 기자들이 웃으며 함께 일하는 모습을 바라는 마음에서 감히 코미디 피디가 건방지게 나선 거다. MBC 뉴스를 사랑하는 나의 충정을 부디 이해해주시길.

(피디 저널 연재 칼럼 '김민식 피디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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