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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짠돌이 육아 일기

70점 아빠를 꿈꾸며

by 김민식pd 2013. 12. 16.

아내는 가끔 나를 협박한다.

"육아일기? 당신이 평소에 어떻게 사는지 내가 블로그에 가서 확 다 불면 당신은 끝이야, 알지?"

그렇다. 블로그에 '요리배우는 남자' '살림 사는 남자' 운운하고 있지만 내가 집에서 하는 건 아내의 기준에 훨씬 못 미친다. 아이들에게 하는 것도 못마땅한 것 투성이다. 나는 피곤하면 아이들과 별로 놀아주지 않는다. 그냥 쉰다. 살림도 자기주도형으로 먼저 하고 그런 것 없다. 그냥 아내가 시키는 일만 하지 먼저 나서서 챙기는 법이 없다. 그런 점에서 나는 70점짜리 아빠다.

 

하지만 그게 내 목표다. 70점짜리 아빠. 기준이라는 건 스스로에게 정하고 노력하는 목표이지 상대에게 맞추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다. 아이와 부모 사이도 마찬가지 아닌가? 내 기준에 아이더러 맞추라고 할 수 없듯이 나의 기준에 배우자가 맞추라고 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난 아내의 기준인 90점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아버지의 눈에 나는 아들로서 70점이지만, 지금 나는 행복하다. 마찬가지로 아내의 기준에 90점 남편이 되기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불행해지는 것보다, 행복한 70점으로 사는 것이 나는 더 좋다. (오홀, 살짝 위험한데, 이거? ^^)

 

바깥에서 일하고 오면, 집은 일단 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한국처럼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밖에서도 피곤하고 집에서도 힘들면 쉴 곳이 어디있나. 집은 안식처다. 집에서는 휴식이 먼저고, 그 다음에 살림이나 육아를 살핀다. 피곤할 때 아이랑 놀면 자신도 모르게 짜증을 내기 쉽다. 물론 아내는 "일하는 여자들은 다 그렇게 살거든? 집에서라고 쉬는 줄 알아?"라고 한다. 일하는 엄마들 정말 성실하게 사는 거 알지만 난 때론 불성실한 엄마 밑에 행복한 아이가 있다고 믿는 편이다. 

 

 

블로거로 살며 살짝 불안하다. 혹시 마님이 와서 댓글이나 방명록에다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 김민식의 실체를 공개합니다.' 이런 글 올릴까봐. 하지만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도 내 나름의 다짐이다. 아빠로서 낙제점은 면하겠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직장인 남자의 경우, 일에 치어 육아를 포기하고 사는 이도 있다. 일단은 직장에 올인하고, 은퇴한 후 가정에 충실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것도 좀 위험한 생각이다. 아이와의 관계는 유년 시절에 형성된다. 아이가 힘든 사춘기를 보낼 때는 외면하다 은퇴한 후 스무살 넘은 아이 앞에 "짠!" 하고 나타나면 '쟤 뭐니?' 하는 싸늘한 시선만 받을 뿐이다. 아이와 아빠 사이는 어려서 잘 해두지 않으면 커서 관계 복원이 힘들다.

 

통계가 말해주듯이 한국에서 학생으로 산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은 중고생의 학업 성취도 및 학습 시간은 최상위권이고 행복지수 및 동기부여도는 바닥이다. 즉 우리 아이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하기 싫은 공부를 가장 오랜 시간 하는 아이들인 것이다. 자살율이 높은 것도 당연하다. 육아를 오로지 엄마에게만 맡겨두면 오히려 엄마와 아이 사이 갈등이 일어났을 때 아빠는 방관자가 되기 쉽다. 아이가 힘들 때 옆에서 아빠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줘야 한다. 3,40대에 일한다고 아이를 방관하면 자칫 은퇴 후 늙어서 40년 외톨이로 산다. (한국에서 노인들의 가정내 왕따 문제는 심각하다. 그분들이 오죽 말상대가 없으면 집회를 찾아다니며 소리지르는 걸로 분을 풀겠는가.)

 

나의 꿈은 70점 짜리 아빠다. 맹렬 아빠로서 육아에 올인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육아를 취미처럼 즐기며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자세는 되어있다. 일단 나는 그걸로 만족이다. 아이에게 좋은 친구로 사는 것. 그게 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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