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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나무를 심은 어느 할머니의 사연

by 김민식pd 2013. 3. 6.

제주 올레길을 걷다보면 동백을 자주 만납니다. 아직은 2월, 서울에서는 보지못하는 꽃이 길가에 흐드러진 걸 보면 따뜻한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죠. 동백은 꽃잎이 하나 하나 지는 게 아니라, 송이째 뚝뚝 떨어져서 웬지 처연한 느낌을 주는 꽃입니다. 마치 이렇게 외치는 것 같아요.

"All or nothing!"

 

 

삶의 선택지가 어찌 전부 아니면 무, 이겠습니까. 때로는 꽃잎을 하나 하나 떨구고 비루함을 감수하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아야 할 때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다시 살펴보니 동백은 제주에서 방풍림의 기능을 합니다. 동백이 심어진 울타리 넘어로는 어김없이 귤나무 과수원이 펼쳐지거든요. 제주도 바람이 좀 매섭고 모집니까? 그 모진 바람을 견디는 방풍림으로 살려니 꽃잎 하나 하나 챙길 수는 없는거지요. 거친 바람에 살아내려고 제 살 깍듯 꽃을 송이째 떨군다고 생각하니, 살아야한다는 나무의 의지가 다시 보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올레길을 걷다 5코스 동백나무 군락지에 와서는 어떤 표말을 만났어요. 의자 모양의 저 표식은 혼자 걷는 올레꾼들에게는 좋은 길잡이이자 이야기 동무의 역할도 하지요. 이런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더군요. 

 

 

'한 할머니의 땀이 서린 땅. 17살에 시집온 현맹춘 1853~1933 할머니는 어렵게 마련한 황무지의 모진 바람을 막기 위해 한라산의 동백 씨앗 한 섬을 따다가 심어 기름진 땅과 울창한 숲을 일구었다.'

 

아, 이 얼마나 멋진 이야기입니까. 나무를 심은 한 여인의 노력 덕분에 100년 뒤 후손이 기름진 땅에서 수확을 얻고, 지나가는 나그네가 동백꽃 그늘에서 발품을 쉬어갈 수 있다는 것. 생각해보면 우리네 인생이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요? 당장 눈에 보이는 결실이 보이지 않아도 먼 훗날 울창한 숲을 이룰 나무를 생각하며 그 씨앗을 심는 일, 이게 우리네 하루 하루의 삶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매일, 아침에 블로그에 올리는 글은 내게 생각의 씨앗입니다. 나의 생각을 글로 다지고, 그 글을 보며 다시 내 행동의 지표로 삼고, 그 행동 하나 하나가 모여 나의 운명을 만들어가겠지요. 바른 나무로 쑥쑥 자라 먼훗날 오늘 뿌린 글의 씨앗들이 인생이라는 울창한 숲을 이루기를 희망합니다. 삶에 몰아치는 바람을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다면, 단단한 뿌리로 흔들리는 끊임없이 흔들리는 삶을 붙들 수 있다면!

 

하루의 글을 올리는 저의 소망입니다. 100여년전 할머니의 마음으로 오늘도 생각의 씨앗을 심습니다.

 

오늘 문득 프레데릭 백의 걸작 애니메이션, '나무를 심은 사람'이 생각나는군요. 다시 한번 보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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