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을 걷다보면 동백을 자주 만납니다. 아직은 2월, 서울에서는 보지못하는 꽃이 길가에 흐드러진 걸 보면 따뜻한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죠. 동백은 꽃잎이 하나 하나 지는 게 아니라, 송이째 뚝뚝 떨어져서 웬지 처연한 느낌을 주는 꽃입니다. 마치 이렇게 외치는 것 같아요.

"All or nothing!"

 

 

삶의 선택지가 어찌 전부 아니면 무, 이겠습니까. 때로는 꽃잎을 하나 하나 떨구고 비루함을 감수하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아야 할 때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다시 살펴보니 동백은 제주에서 방풍림의 기능을 합니다. 동백이 심어진 울타리 넘어로는 어김없이 귤나무 과수원이 펼쳐지거든요. 제주도 바람이 좀 매섭고 모집니까? 그 모진 바람을 견디는 방풍림으로 살려니 꽃잎 하나 하나 챙길 수는 없는거지요. 거친 바람에 살아내려고 제 살 깍듯 꽃을 송이째 떨군다고 생각하니, 살아야한다는 나무의 의지가 다시 보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올레길을 걷다 5코스 동백나무 군락지에 와서는 어떤 표말을 만났어요. 의자 모양의 저 표식은 혼자 걷는 올레꾼들에게는 좋은 길잡이이자 이야기 동무의 역할도 하지요. 이런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더군요. 

 

 

'한 할머니의 땀이 서린 땅. 17살에 시집온 현맹춘 1853~1933 할머니는 어렵게 마련한 황무지의 모진 바람을 막기 위해 한라산의 동백 씨앗 한 섬을 따다가 심어 기름진 땅과 울창한 숲을 일구었다.'

 

아, 이 얼마나 멋진 이야기입니까. 나무를 심은 한 여인의 노력 덕분에 100년 뒤 후손이 기름진 땅에서 수확을 얻고, 지나가는 나그네가 동백꽃 그늘에서 발품을 쉬어갈 수 있다는 것. 생각해보면 우리네 인생이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요? 당장 눈에 보이는 결실이 보이지 않아도 먼 훗날 울창한 숲을 이룰 나무를 생각하며 그 씨앗을 심는 일, 이게 우리네 하루 하루의 삶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매일, 아침에 블로그에 올리는 글은 내게 생각의 씨앗입니다. 나의 생각을 글로 다지고, 그 글을 보며 다시 내 행동의 지표로 삼고, 그 행동 하나 하나가 모여 나의 운명을 만들어가겠지요. 바른 나무로 쑥쑥 자라 먼훗날 오늘 뿌린 글의 씨앗들이 인생이라는 울창한 숲을 이루기를 희망합니다. 삶에 몰아치는 바람을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다면, 단단한 뿌리로 흔들리는 끊임없이 흔들리는 삶을 붙들 수 있다면!

 

하루의 글을 올리는 저의 소망입니다. 100여년전 할머니의 마음으로 오늘도 생각의 씨앗을 심습니다.

 

오늘 문득 프레데릭 백의 걸작 애니메이션, '나무를 심은 사람'이 생각나는군요. 다시 한번 보아야겠어요.

 

 

 

 

 

 

 

 

 

 

Posted by 김민식pd
TAG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제니 2013.03.06 07: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최근에 제주도에 한달간 머물다 왔는데
    공기좋고 물좋은 곳에 있다보니
    건강이 저절로 찾아와서 깜놀랐답니다 ^ ^;;
    집 바로 옆에 있어서 자주 갔었던
    모이세해장국 집의 육계장과
    김서방재첩해장국 집의 재첩국이
    정말 많이 그리워지네요 ^ ^;;
    참고로 이 두 집은
    신제주에 있는 롯데마트 정문을 마주 본 상태에서
    오른쪽보면 길이 보이는데 그 길로 진입해
    3분 정도 걸으면 오른쪽에 두 집이 다 보인답니다 ^ ^;;

  2. 하늘은혜 2013.03.06 09: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비디오를 보면서 새삼....
    많은 걸 생각했습니다...

    결론은...

    아... 캐나다 가고싶다.... ㅎㅎ

  3. 이미식 2013.03.06 1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무를 사람은 사람"
    감동적이네요!!!

  4. 캔사이다 2013.03.06 12: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할머니 덕분에 여행객이 참 즐거운 봄을 보내겠어여..
    우리가 지나치는 모든것들이 누군가에 의해 행복을 느끼는 것들인것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