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PD로서 가끔 미드나 일드를 보며 연출에 대해 공부하는데 그러다 가끔 나를 좌절시키는 작품을 만나고는 한다. 최근에 본 미드 '왕좌의 게임'이 그랬다. '반지의 제왕'을 보면서, '저건 헐리웃 영화니까 뭐.'했는데, 젠장 드라마도 영화 뺨치게 잘 만드는구나.

 

 

 

더욱 좌절한건 원작소설을 보고나서다. 방대한 양의 원작을 드라마화한 과정이 탁월하다. 원작의 대사나 전개를 충실히 살려내면서도 드라마로 옮겼다는 점이 놀랍다. 소설을 본 후 드라마를 봤다면 실망했을지 모르나, 나처럼 드라마에 경도된 팬이라면 소설을 보며 각종 장면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왕좌의 게임'은 전자책으로 읽고있다. 어떤 이는 전자책이 종이책의 질감은 따라오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래도 전자책에게도 장점이 있다. 나는 아이패드의 북리더 어플인 아이북스와 갤럭시 노트에서 알디코 리더를 동시에 활용한다. 전철에서는 갤노트로 읽고, 집에 가서는 아이패드를 펼치는데, 둘 다 복사하기 기능이 있어, 읽다 뜻을 모르는 단어를 만나면 카피해서 인터넷 검색창에 붙여넣기를 하면 바로 뜻이 나온다. 

 

전자책을 읽다 멋진 대사를 만나면 바로 메모장에 카피해서 오래오래 그 뜻을 음미한다. 전자도서관에서 빌린 책 중 다시 보고 싶은 대목은 화면 캡처로 저장해두기도 하는데, 나는 글씨가 악필이라 노트 필기가 젬병인데 아이패드와 갤노트 덕에 살 맛난다.

 

'왕좌의 게임'에서 내가 좋아하는 대사는 극중 난장이로 나오는 타이리온 라니스터가 존 스노우에게 하는 말이다. 존 스노우는 스타크 가문의 서자다. 영주의 아들이지만, 배다른 자식이라 어머니가 누군지도 모른다. 존은 누가 bastard라고 부르면 발끈하지만, 욕처럼 쓰이는 이 말의 원래 의미가 서자, 즉 첩이나 하녀의 자식을 뜻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같은 서러운 운명을 타고난 스노우에게 타이리온이 하는 말. 

 

"Let me give you some counsel, bastard,” Lannister said. “Never forget what you are, for surely the world will not. Make it your strength. Then it can never be your weakness. Armor yourself in it, and it will never be used to hurt you."

 

"내 충고 하나 하지." 라니스터가 말했다. "절대 너 자신이 서자라는 걸 잊지 마. 왜냐하면 세상은 그 사실을 절대 잊지 않을 테니까. 그걸 너의 강점으로 만들어. 그럼 그게 절대 너의 약점이 되진 않은거야. 그걸로 스스로 무장한다면, 남들이 그걸로 너를 공격할 수 없단다." 

 

 

 

Jon was in no mood for anyone’s counsel. “What do you know about being a bastard?” “All dwarfs are bastards in their father’s eyes.” “You are your mother’s trueborn son of Lannister.” “Am I?” the dwarf replied, sardonic. “Do tell my lord father. My mother died birthing me, and he’s never been sure.” “I don’t even know who my mother was,” Jon said. “Some woman, no doubt. Most of them are.” He favored Jon with a rueful grin.

존은 충고를 들을 기분이 아니었다. "서자로 사는 것에 대해 당신이 뭘 안다고 그러십니까?" "모든 난장이는 아버지의 눈에 서자거든." "당신은 라니스터 가문의 적자잖습니까." "과연 그럴까?" 난장이가 비꼬듯 말했다. "우리 아버지에게 꼭 그렇게 말해줘. 어머니가 나를 낳다 돌아가신 바람에 아버지는 내가 누구 자식인지 궁금해하시는 눈치거든." "나는 어머니가 누군지도 모르거든요?" 존이 말했다. "당연히 어떤 여자겠지. 다들 어머니는 어떤 여자니까." 타이리온은 애처로운 웃음으로 존을 바라봤다.   

“Remember this, boy. All dwarfs may be bastards, yet not all bastards need be dwarfs.”

"이걸 기억해, 친구. 모든 난장이는 서자일지 몰라도, 모든 서자가 난장이일 필요는 없어."

 

강연을 할때  내 외모에 대한 자학 개그로 사람들을 웃기면, 가끔 "그렇게 못생긴 편이 아닌데 왜 자꾸 그런 농담을 하십니까?" 라고 물어오는 사람이 있다. (세상에 진짜 천사가 있다는 걸 그때마다 깨닫는다.^^) 고등학교 때 내 별명은 베트콩이었다. 마르고 까맣고 입술이 두꺼운데 심지어 턱에 커다란 화상 흉터까지 있어 생긴 별명이었다. 가뜩이나 예민한 사춘기에 외모 걱정에 주눅 많이 들었다. 왕따는 빠져나올 수 없는 모래지옥이다. 화를 내면 낼수록 아이들은 더 재미있어하니까. 가장 좋은 대처법은 무시하는 건데 어린 마음에 그게 너무 힘들었다.

 

서울로 대학을 오면서 이제 왕따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더이상 외모때문에 고민할 일은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소개팅 나가서 번번이 차이니까 다시 걱정이 도졌다. '나 진짜 못생긴 거야?' 그런데 외모 걱정에 기죽은 표정으로 소개팅을 나가니 차이는 횟수는 오히려 늘기만 했다. 나를 놀리는 친구들이 사라졌건만, 그들이 남긴 상처를 내 스스로 키우고 있었다. '애들이 놀려서 못난 놈이 되는 게 아니라, 그 놀림을 영원히 간직할 때 진짜 못난 놈이 되는구나.' 남들이 놀리면 상처가 되지만 스스로 그걸 갖고 놀면 웃음의 소재가 된다. 못생긴 왕따로 불행하게 사느냐, 못생긴 광대로 즐겁게 사느냐. 내 인생을 결정하는 건 남들이 아니라 나다. 못생긴 내 외모, 놀려도 내가 놀릴거야! ^^

 

얼마전 갑자기 함박눈이 서울 시내를 뒤덮은 날, 전철역을 묻는 맹인 아저씨를 만났다. 마침 가는 길이기에 전철까지 안내해드렸다. 내 팔을 잡고 따라오던 아저씨가 물었다. "눈이 많이 오나보죠?" "네, 이런 날은 길이 많이 미끄러워 힘드시죠?" "미끄러운 건 오히려 괜찮아요. 발바닥의 감각이 예민하거든요. 다만 저는 밝고 어두운 것으로 사물의 형체를 구분하는데, 이렇게 눈이 오면 온 세상이 하얘져서 길을 찾기가 아주 어렵답니다." "눈이 불편한데도 잘 다니시나봐요." "하늘이 참 고마운게요, 시력을 잃으면 다른 감각이 대신 발달한답니다. 발바닥으로 길을 찾거든요."

 

눈먼 아저씨의 밝은 표정을 보며 부끄러워졌다. '몸 불편한 것보다 더 불행한건 마음 불편한 건데, 우리는 왜 건강한 몸에 걱정을 키우고 살까?' 몸이 불편할 지언정 마음이 편안하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은 없다. 결국 세상 만사는 마음 먹기 나름이다.

 

 

내일 다들 투표하시리라 믿는다.

욕먹는 정치인보다 더 나쁜 사람은 투표도 안하고 욕하는 사람이다.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투표니까. 

 

투표를 않는 건 자기보다 못한 이의 지배하에 들어가 살겠다는 것과 같다 - 플라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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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코코 2012.12.18 17: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문리더 어플을 사용하는데 노트, 강조 이런 기능이 있는데..
    이번에 잘 어플 활용을 잘해서 책을 읽어야겠네요.
    오늘도 친구에게 전해줄 말이 생겼습니다. ^^

  2. 첨밀밀88 2016.04.23 14: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투표 살벌하게 해서 살벌한 결과가 나와서 좋군요 ㅋㅋ

  3. 첨밀밀88 2016.04.23 14: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참 키가 작아서 콤플렉스가 많았었는데
    나이 47이 되어 고등학교 반창회를 가보니 다 고만고만한데 뭐터러 그리 쫄았었는지 이해가 안가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