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아오며 가장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려서 도서관을 찾는 버릇을 길들인 일이다. 1990년에는 울산 남부 시립도서관에서 다독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한 해동안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200권이었다. 그럴만도 하지. 매일같이 도서관에서 살았으니까. 난 요즘도 틈만 나면 도서관을 찾는다.

 

도서관에 들어서면 나는 성탄절 아침에 아름다운 책으로 가득 찬 선물 상자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소설 '시간여행자의 아내' 첫 페이지에 나오는 표현인데, 정말 공감하는 말이다. 특히 요즘 서울도서관이 개관한 후에 더욱 그렇다. 외양은 오래된 서울 시청 건물이지만 내부는 새로 개조된 도서관이다. 높다란 서가에는 빼곡이 새 책이 꽂혀있다. 새 책으로 가득찬 새 도서관, 정말 행복하다.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는 것은 연애와 결혼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 수많은 책 중에서 무엇을 읽어야할까? 서가 사이 사이를 다니면서 내 손 끝에 와 닿는 무수한 가능성을 생각해본다. 나는 오늘 지구 반대편으로 도보 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수천년전 파라오의 시대로 역사 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일본의 도시 괴담 속으로 으스스한 공포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설레는 것은 연애를 앞둔 20대 같다.

 

그러나 나는 그 설레임만을 즐기는 것은 참된 독서가 아닌 걸 안다. 책을 고를 때의 설레임은 자리에 앉은 후 잊어야 한다. 책을 읽다 고개를 들어 눈 앞에 빼곡한 다른 책들에 눈길을 준다면, 내 손안의 책은 끝낼 기회가 없다. 책 한 권 온전히 끝까지 읽어내지 못한다면 도서관을 찾은 보람이 없다. 책을 선택한 후에는 설레임을 잊고 그 한권에 끝까지 몰입하고자 한다. 그게  서로에 대한 예의니까. 이제 마흔 다섯, 중년의 나이에 나는 내가 선택한 책에 대해,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한 책임을 실감한다. 어떤 이는 대선의 결과에 대해 두렵지 않느냐고 물어보는데, 올 한해 내가 내린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면 온 몸으로 갚아야겠지. 앞 날에 대해 두려움이 없는 이유는, 책을 읽는 즐거움은 어디에서나 늘 함께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날이 쌀쌀하긴 하지만, 요즘 나의 취미는 도서관과 걷기 여행의 복합 패키지 상품 개발이다. 돈 한 푼 안들고 즐기는 짠돌이의 취미랄까? 서울 도서관을 가면 청계천이며 광화문이며 인사동 거리를 걸으며 시내 관광에 나선다. 남들은 멀리서 관광도 오는 곳인데,  코 앞에 있는 문화를 즐기지 못한다면야.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국립 중앙 도서관을 찾을 때도 있는데, 위치가 참 마음에 든다. 서울시가 선정한 '가을에 걷기 좋은 길 10선'에 뽑힌 서리풀 공원 산책 코스 바로 옆이다. 3,7,9호선이 만나는 고속터미널 역에서 시작하는 산책 코스다. 서리풀 공원과 몽마르트 공원을 이어주는 누에다리 옆으로 나오면 국립도서관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언제든 1시간짜리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일산 아람누리 도서관도 내가 좋아하는 도서관 중 하나인데, 바로 옆에 있는 정발산 공원도 산책하기 좋은 아담한 산이다. (사실은 언덕에 더 가깝지만.) 정발산만 오르기에 너무 짧아 아쉽다고 느끼면 호수공원 산책로도 함께 걸어도 좋다. 플라타너스 길은 언제 걸어도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길이다. 

 

얼마전 찾은 하남시청 옆 하남시립도서관도 좋았다. 오래된 도서관을 찾으면 어린 시절 즐겨찾던 도서관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20대, 내게 하루 하루는 마냥 불안했다. 대학 전공은 맞지 않았고, 남은 평생 무슨 일을 하고 살아야할지 답이 보이지 않던 시절이었으니까.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으므로 그냥 그 순간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했다. 그게 독서였다.

 

며칠전 서울도서관을 찾았을 때, 스스로 그날 하루의 테마를 '만화 보는 날'이라고 정했다. 그래서 두 권의 만화를 봤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 그리고 '달토끼 서울을 그리다.'

여러분께도 권해드린다. 도서관과 걷기 여행을 함께 누리는 짠돌이 여행 패키지~ 즐기시라.

뜻이 없지, 길이 없으랴.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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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풀칠아비 2012.12.17 1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서관 책들 앞에 있으면 즐겁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지요.
    읽을 책이 이렇게 많아서 즐겁고, 읽어야 할 책이 이렇게 많나 싶어 두렵지요.
    저는 요즘 헌책방 뒤져 절판된 보물 도서 찾는 재미를 즐기고 있지요.
    서울도서관에 책 빌리러 가야겠네요.
    행복한 한 주 보내세요.

  2. 코코 2012.12.17 14: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피디님 글 보면 도서관! 가야지 하고 생각은 하는데 막상 가려고 하면
    반납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
    갈까말까 수많은 고민을 하게 되더라구요..
    제가 가는 도서관도 어릴때부터 다녔던 곳인지 올해 나름 같은 공간인데 좀 더 책을 수월하게 찾을 수 있고 읽을 공간도 많이 마련을 해놨드라구요!!!
    근데도 잘 안가게 되.....는 이유는.. 게으름때문일까요??..
    내일은 출근전에 꼭 들려서 책의 기운을 좀 받아봐야겠습니다

  3. 코코 2012.12.17 1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중에 여행을 가면 서울도서관도 함 들려봐야겠습니다.
    빼곡히높이 있는 책들은 어떻게 읽을 수 있는건지 해리포터의 기운이 필요한건지...ㅋ..;;

  4. 아자철민 2012.12.17 2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서관과 걷기여행
    둘 다 제가 좋아하는 아이템인데 결합할 생각을 못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