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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은퇴자의 세계일주

포르투갈 라고스 걷기 여행

by 김민식pd 2026. 7. 1.

포르투갈 남부 알가르브 지방의 작은 해안 도시 라고스(Lagos)를 아시나요?

솔직히 저는 처음엔 큰 기대가 없었습니다. 리스본과 포르투만 다녀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중간에 조용한 휴양지 하나쯤 넣어보자." 딱 그 정도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행이라는 건 늘 그렇습니다.

별 기대 안 했던 곳에서 가장 큰 감동을 만나곤 하지요.

이번 포르투갈 여행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풍경은, 뜻밖에도 라고스였습니다.



첫날에는 하루 종일 동네를 산책하며 서퍼들이 파도를 타는 해변을 걸었습니다. 

데크 산책로도 잘 만들어져 있고 바다도 예뻤어요.

그런데...

조금 심심했습니다.

"음... 이 정도는 제주 올레길에도 있고, 동해안에도 있는데?"


저녁에는 동네 사람들의 마을 축제도 열렸어요. 저는 이렇게 돈 한 푼 안주고 하는 공짜 구경을 좋아해요. 어디선가 스피커에서 음악 소리가 나면 달려갑니다. 무대가 있으면, 관객석도 있겠지요. 마침 리허설 중이었어요. 흠... 지금 리허설이라면, 1시간 뒤에 오면 본 무대가 있겠군. 10년 경력의 예능 피디로서 감이지요. ^^ 저는 객석에서 박수치는 거 좋아합니다. 무대를 꾸민 입장에서는 누구라도 한 사람 더 오는 게 고맙더라고요.

둘째 날 아침.

오늘은 어디를 걸을까?

구글 지도를 펼쳐 해안을 따라 살펴보다 Ponta de Piedade라는 곳을 발견했습니다.


사진을 보는 순간 혼잣말이 나왔습니다.

"어머, 여긴 가야 해!"

숙소에서 걸어서 한 시간.

도보 여행자에게는 최고의 거리입니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해안 데크를 따라 걷습니다. 가는 길 자체가 거대한 전망대입니다. 구시가지를 벗어나 가장 먼저 만난 곳은 Castle of Lagos 주변. 오래된 성벽과 항구를 바라보며 걷다 보니 문득 생각이 납니다.

수백 년 전 이곳에서는 수많은 탐험가들이 미지의 바다를 향해 출항했겠지요. 하지만 오늘 저의 모험은 훨씬 단순합니다. 배를 타는 대신 운동화를 신고, 신항로 대신 산책로를 따라갑니다.



조금 걷자마자 Praia de Batata가 나타납니다. 모래사장보다 먼저 시선을 빼앗는 건 바다입니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색 보정을 심하게 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실제 바다가 더 예쁩니다. 에메랄드와 청록이 뒤섞인 물빛. 너무 맑아서 바닥까지 훤히 보입니다.



'이게 정말 유럽 바다 맞나?'

혼자 몇 번이나 감탄했습니다.

절벽 위 산책로를 따라 계속 걸어갑니다.



길은 넓고 안전하게 정비되어 있고, 조금만 걸으면 또 전망대, 조금 더 걸으면 또 전망대입니다.

'아니, 포르투갈 사람들은 이렇게 좋은 풍경을 매일 보는 거야?'

알가르브가 왜 유럽 최고의 휴양지인지 두 발로 걸으니 이해가 됩니다.

다음은 Praia Dona Ana.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알가르브를 꿈꾸는 이유가 바로 이 풍경 때문일 겁니다.



황금빛 석회암 절벽. 에메랄드빛 바다. 그리고 바다 위에 불쑥 솟은 기암괴석. 풍경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사진을 찍고 또 찍습니다. 여행 가면 누구나 사진작가가 됩니다. 풍경 사진이 좋은 이유, 모델비를 청구하지 않아요. ^^

다음 목적지는 Praia do Camilo. 긴 나무계단으로 유명한 해변입니다.


참, 제가 지명을 일부러 영어로 적는 이유가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이 나중에 이 글을 다시 읽으며 여행을 준비할 수도 있으니까요. 명칭을 복사해서 구글 지도에 붙여 넣으면 끝.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여러분'에는 한 사람이 더 포함됩니다.

10년 뒤의 김민식. 제가 제 여행기를 가장 열심히 읽는 독자입니다. 지금도 대만 여행을 갈 때면 예전에 써둔 여행기를 펼쳐보고 "아, 여기 다시 가야지." 하고 추억을 따라 걷습니다.

블로그는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니까요.



계속 걷다 보면 Praia dos Pinheiros가 나타납니다.

6월의 라고스는 생각보다 햇살이 강합니다. 출발하기 15분 전에 미리 선크림을 바릅니다. 예전에는 끈적거리는 게 싫어서 선스틱만 썼는데요. 피부과 의사 선생님이 한마디 하셨습니다.

"선크림으로 바르세요. 그게 피부 건강에 더 좋습니다."

의사 말은 듣는 게 이롭습니다. 작은 튜브 하나를 가방에 넣고 다니며 몇 시간마다 덧바릅니다. 평생 건강하게 여행하려면, 피부도 평생 써야 하니까요.



그리고 드디어 오늘의 종착지.

Ponta de Piedade.

저는 이곳이 포르투갈 최고의 풍경이라 생각해요. 



수천 년 동안 파도가 깎아 만든 황금빛 절벽. 아치형 바위. 숨겨진 동굴. 빛에 따라 색이 계속 변하는 바다. 자연이 만든 조각 공원에 들어온 기분입니다.

저는 물가를 따라 걷는 길을 참 좋아합니다.

최애 코스는 2021년에 완주한 제주 올레길.

매년 빼놓지 않고 걷는 곳은 속초에서 강릉으로 이어지는 동해안 해파랑길.

하루 정도 시간이 나면 ITX 청춘을 타고 춘천 의암호 둘레길도 걷습니다.



가까워서 좋은 길이 있고,
멀어도 좋은 길도 있습니다.
라고스는 분명 후자입니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포르투갈 장기 여행을 계획하신다면, 저는 자신 있게 권하고 싶습니다.

하루 정도는 관광지를 줄이고, 바다를 따라 그냥 걸어보세요.

인생은 길고, 숨 쉬는 한 여행할 기회는 계속 찾아옵니다.



여행 정보

코스 : 라고스 구시가지 → Praia de Batata → Praia Dona Ana → Praia do Camilo → Praia dos Pinheiros → Ponta de Piedade
소요 시간 : 왕복 약 3시간
난이도 : 쉬움
추천 시간 : 오전 일찍. (아침 10시만 되어도 햇살이 따갑습니다.)
준비물 : 운동화, 물, 선글라스, 선크림, 풀 충전된 휴대폰 (사진을 엄청 많이 찍게 될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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