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저는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이 좋은 삶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 앞에는 한 가지 아이러니가 놓여 있습니다. 먹고사는 데 큰 걱정이 없는데도 여전히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이지요. 이제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얼마나 평화로움을 느끼고, 성취감과 기쁨을 경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부조화가 생깁니다. 우리는 최첨단 문명사회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원시적 공포를 기반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 원시적 공포가 삶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두면, 우리는 투쟁과 도피, 불안과 공포, 좌절과 우울, 분노와 후회 같은 부정적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마음은 주변의 모든 자극을 생존을 위협하는 신호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믿지 말라> (조세프 응우옌 지음 / 박영준 옮김 / 서삼독)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게 정답입니다. 저는 요즘 책을 쓰고 강의를 다닙니다. 때로는 제가 강의하는 90분 내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이들이 눈에 띕니다. 그 순간, 제 마음속에서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왜 내 강의를 안 듣지? 재미가 없나? 내가 비호감인가? 나를 싫어하나?” 내가 말하는데 누군가 딴청을 피우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낍니다. 사실 이 반응은 유전자에 새겨진 생존 욕구입니다.
인간은 수십만년 동안 수렵채집을 하며 살았어요. 사냥과 채집은 운이 따라야 성과를 올립니다. 어떤 날은 성공해도 어떤 날은 공치고 빈손으로 돌아올 수 있어요. 그럴 때 누군가 먹을 것을 나누어줘야 나와 내 가족이 먹을 양식이 생깁니다. 위기의 순간마다 공동체는 생존을 지탱하는 안전망입니다. 혼자가 되고 밉상이 된다는 것은 생존의 위협이에요. 따돌림이 두렵고 외로움이 견디기 힘든 이유는 내가 유난히 멘탈이 약하거나 남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몸에 새겨진 생존의 기억 때문입니다.
예전에 사냥을 하거나 농사를 지을 때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같은 공동체 안의 사람들과 살았을 거예요. 한번 밉상이 되면 생존이 어려워지지요. 지금 우리는 교통의 발달과 경제의 발전 덕분에 무수하게 많은 사람들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요. 그 많은 사람들의 눈치를 일일이 살필 필요가 없어졌어요.
사냥이나 농사처럼 평생 같은 이웃들과 함께 일하는 것도 아니에요.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건 혼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물론 저의 글이나 강의에 대한 평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살아야지요. 생산자에게 소비자의 객관적인 평가는 늘 소중하니까요. 문제는 그 평가를 과도하게 신경 쓰면, 불안과 공포가 나를 잠식해 집필과 강의가 괴로운 노동이 되어버립니다. 나는 글쓰기와 강연을 참 좋아하는 사람인데, 이 일이 괴로워져요. 아,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요?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투쟁과 도피로 일관하는 마음의 목소리에 무조건 반응하는 습관부터 내려놓아야 합니다. 책에서 읽은 소중한 구절이 있어요.
‘우리가 부족한 존재라는 생각에 이끌려 우리 자신을 개선하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우리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착각을 내려놓는 것이다.’
부처님 말씀 중에 제가 좋아하는 건 두 대의 화살에 대한 비유입니다. 우리에게는 늘 두 대의 화살이 날아옵니다. 첫 번째 화살에 맞으면 아픕니다. 그건 고통의 화살입니다. 그 뒤에 날아오는 두 번째 화살은 첫 번째 화살에 대한 우리 자신의 감정적 반응이며 오히려 첫 번째 화살보다 더 아프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이 두 번째 화살이야말로 괴로움이 비롯되는 근원입니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첫 번째 화살을 늘 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두 번째 화살은 첫 번째 화살에 대한 우리 자신의 반응이다. 즉, 두 번째 화살은 선택의 대상이다.”
다시 말해 고통은 피할 수 없어도 그 고통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고, 그 반응에 따라 우리가 괴로움을 느낄지 말지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살다 보면 고난과 시련이 와요. 첫 번째 화살이지요. 이건 내가 피할 수 없어요. 중요한 건 그 다음에 꼬리를 물고 날아오는 두 번째 화살, 내 안에서 일어나는 부정적 사고 회로를 멈추는 일입니다. 그걸 위한 다섯 단계의 프로세스가 있어요. ‘멈춤’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PAUSE의 머리글자를 따서 각 단계를 정리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잠시 멈추고(pause) 깊은 숨을 들이쉬며 신경계를 안정시키는 것입니다. 호흡을 깊게 하며 생각 중심에서 몸의 감각으로 초점을 옮겨 우리를 현재에 머물게 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ask) 일입니다.
“나는 지금 이 괴로움이 계속되기를 바라는가?”
이 질문은 감정적 고통에 머무를지, 벗어날지를 선택할 수 있는 주체가 나 자신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세 번째는 사고를 멈추거나 내려놓을 선택권이 나에게 있음을 이해하는(understand) 단계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평화를 원하는지, 아니면 괴로움의 원천인 생각을 계속 붙잡고 싶은지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네 번째 단계는 “생각하는 것이 괴로움의 뿌리다”라는 문장을 반복해서 말하는(say) 과정입니다. 이 문장을 되뇌면 사고는 점차 힘을 잃고 다루기 쉬워집니다. 마음은 동시에 여러 생각을 할 수 없기에, 하나의 문장을 소리 내어 반복하는 행위 자체가 사고를 줄이거나 멈추게 합니다.
다섯 번째 단계는 지금 느끼는 감정을 온전히 경험하는(experience) 일입니다. 많은 해로운 습관은 감정을 회피하거나 억누르려는 데서 시작됩니다. 감정과 싸우지 말고 판단 없이 그대로 느껴야 합니다. 괴로움은 감정 그 자체가 아니라, 감정과 연결된 사고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삶의 목표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절박감에서 만들어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고요, 하나는 영감에서 비롯된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절박감에서 만들어진 목표는 언제나 결핍을 전제로 합니다. 지금의 나는 부족하며, 더 가져야 하고, 더 증명해야만 안전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그 뿌리에 깔려 있습니다. 반면 영감에서 비롯된 목표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닙니다. 그 목표는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됩니다.
해야 하는 일만 하고 살기보다는 좋아서 하는 일을 하나둘 늘려가는 게 좋은 삶입니다. 좋은 목표는 우리를 더 긴장시키는 목표가 아니라, 더 살아 있게 만드는 목표입니다. 당장 눈에 띄는 성취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오늘도 그 방향으로 한 걸음 걸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충분한 성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영감에서 출발한 작은 목표들이 모여, 우리는 어느새 ‘잘 버틴 삶’이 아니라 ‘잘 살아낸 삶’에 가까워지게 되니까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대신, 좋아하는 일을 하나 둘 루틴으로 만들어 무의식적으로 실행하는 습관으로 일상을 채우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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