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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인생 성취의 8할은 운

by 김민식pd 2024. 5. 6.

회사 선배께서 북카페를 창업하셨어요. 종로에 있는 오티움이라는 공간인데요. 제가 좋아하는 쿠르베 스피커로 음악을 들을 수 있어요. 선배님의 배우자이자 공동 창업자는 저자 정혜승님입니다. 평소 저는 혜승님이 SNS에 올려주시는 마냐 리뷰를 보며 다음에 읽고 싶은 책을 찾아요. 책을 좋아하는 부인과 음악을 좋아하는 사장님이 만나 멋진 공간을 만들어내셨네요. 북카페 놀러 간 김에 읽고 싶은 책을 찾아봤어요. 혜승님의 큐레이션이라면 믿을 만하거든요. 책을 고르는 안목이 좋으시니까요. 그래서 고른 책이 <경제학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저자 소개를 보니 지금 홍콩과기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김현철 선생님은 의사이자 경제학자네요. 어떻게 이런 경력을 갖게 된 걸까요? 추천의 글 중에서 눈에 띈 대목이 있어요.

‘전 세계은행 김용 총재는 하버드대 의대를 졸업한 의사였다. 의대를 졸업한 후 세상을 더 잘 이해하는 의사가 되고자 인류학 박사과정을 공부하였다. 그 후 김용 총재는 병원이 아닌 더 넓은 세상을 무대로, 사회를 고치는 의사가 되었다. 아이티에서 에이즈 환자들을 치료했고 커뮤니티 중심의 헬스케어 프로그램을 운영했으며, 페루에서는 약제내성 결핵 환자들을 성공적으로 치료해서 세계보건기구 WHO의 결핵 치료 지침을 바꾸는 데 기여하였다.

김현철 교수가 학생일 때 당시 WHO 에이즈 국장으로 일하고 있던 김용 총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자기도 세상을 고치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하자 김용 총재는 그렇다면 인류학보다는 경제학을 공부하는 게 좋을 거라고 조언해주었다. 자기 친구가 있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 공부를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함께 해주었다. 김용 총재의 조언대로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과정을 마친 김현철 교수는 자신의 바람대로 세상을 고치는 의사가 되었다.’

의사 시절 사회의 약자들이 더 많이 아프고 더 많이 죽어가는 현실을 목도하고 건강 불평등의 문제가 사회 경제적인 문제임을 깨닫고는 진료실을 나와 공공 정책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로 변신했다고요. 사람을 살리는 정책을 만들기 위한 경제학의 조언이 책 안에 가득한데요. 첫 번째 장에서 하시는 이야기가 마음에 남습니다. ‘인생 성취의 8할은 운’.

태어나면서 첫 번째로 만나는 운은 ‘어디서 태어났는가’입니다. 태어난 나라가 평생 소득의 절반 이상을 결정합니다. 저개발 국가에서 태어나면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성공할 가능성이 낮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난 것만으로도 우리는 상위 20% 안에 들어가는 운 좋은 사람들입니다. 

다음으로 만나는 운은 ‘부모’입니다. 사람의 성취와 행동에서 유전 요소와 환경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두고 많은 논쟁이 있었는데요. 부모는 유전과 환경 요소를 모두 제공합니다. 자녀는 부모에게서 유전자를 물려받고 부모가 자녀의 어린 시절 환경도 상당 부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성취의 또 다른 척도인 ‘건강’도 운이 중요합니다. 우선 태어난 나라가 기대수명을 크게 좌우합니다. 그 나라의 소득 수준과 의료 시스템이 기대수명에 영향을 주고요. 존스홉킨스대학의 연구 결과, 암 발생 요인은 크게 유전, 환경, 세포 분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적 요소인데요. 암 발생의 50% 이상이 우연에 기인했습니다. 게다가 부모가 물려준 유전도 운이지요. 사람의 노력으로 예방할 수 있는 환경 요인은 4분의 1에도 미치지 않습니다. 결국 사람의 건강도 운이 8할을 좌우합니다.

그럼 나머지 20%는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일까요? 우리가 노력할 수 있는 힘조차도 사실 상당 부분 타고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인생 성취의 대부분은 우리가 스스로 이루어낸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주셔도 좋습니다.

“인생 성공의 8할이 운이래. 우리 가족의 성취도 사실 대부분 운이야. 우리의 힘으로만 이룬 게 아니니까 겸손하게 살아야 해. 그리고 실패했다고 생각해도 좌절하지 말자. 운이 좀 나빴을 뿐이야. 또 운이 나빴던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도우며 살자꾸나. 혹시 스스로 성취한 것처럼 자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부러워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렴. 착각 속에 사는 사람이니까.”

승자 독식 사회는 건강하지 못합니다. 부모를 잘못 만난 불운, 살아가며 맞닥뜨린 이런저런 불운을 극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국가의 몫입니다. 골고루 나누어지지 못한 운을 좀 더 골고루 나누는 것이 국가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경제학이란 국가가 운 나쁜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자원을 배분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학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20년 동안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업적이 무엇인지 저자에게 묻는다면, “임신 기간을 포함한 다섯 살 미만 어린 시절 환경의 지대한 중요성을 밝힌 것”이라고 답하겠답니다. 영유아 프로그램부터 직업교육까지 평생 인적 자본을 연구한 헤크먼 교수는 삶의 주기에 따라 인적 자본 투자의 비용 효과성을 살펴봤는데요. 임신기, 아동에 대한 초기 투자가 직업교육 같은 성인기 투자보다 비용 면에서 더 효과적이랍니다. 

저소득층 아이들은 다양한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가난의 대물림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합니다. 양질의 영유아 프로그램 제공은 아이들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국가는 아이들의 미래에 우선 투자해야 합니다. 

서두에 나온 김용 총재가 요즘 한국에 와서 하시는 일이 있어요. 자살 예방 프로젝트입니다. 이를 위해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출연하여 강연도 하시고,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다양한 대책을 찾으십니다. 질병으로 죽어가는 가난한 나라의 국민도 안쓰럽지만, 부자 나라 한국에서 절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률이 이토록 높다는 것도 불행이지요. 이걸 바꿔야 합니다. 

아이에게 들려준 조언을 이제 우리 자신에게 돌려야 합니다. 잘 살고 있다면 운에 감사하며 겸손하게, 지금 삶이 힘들다면 운이 나빴을 뿐이니까 스스로 책망하는 대신 조금 더 자신에게 너그러워지기를 소망합니다. 

<경제학이 필요한 순간>, 재테크에 도움 될 경제 공부 욕심에 읽은 책인데요.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다루는 이야기였어요. 개인이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두가 함께 행복한 사회를 꿈꿉니다. 몸이 아플 때, 집이 없을 때, 실직했을 때, 임신했을 때, 경제학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개인의 불운을 행운으로 바꾸는 경제학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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