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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의 경제 공부

진짜 부자, 가짜 부자.

by 김민식pd 2024. 2. 5.

가끔 던지는 질문이 있지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생물학자이신 최재천 교수님은 <생명 칸타타>라는 책에서 당연히 알이 먼저라고 하십니다. 알 속의 DNA가 닭을 만들어내고, 그 닭이 더 많은 알, 더 많은 DNA를 만들어낸다고요. 저도 알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알이 만들기 더 간단하잖아요. 닭은 달걀보다 복잡합니다. 쉽고 간단한 것이 먼저 생겨야 어렵고 복잡한 것이 만들어집니다. 생명도 단순한 아메바에서부터 진화를 시작하잖아요.

재테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축부터 할 것인가, 빚을 내어 투자할 것인가? 저는 단순한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모으는 게 우선입니다. 종잣돈을 모으는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건물주가 되겠노라 빚을 끌어모아 빌라를 사모기도 하는데요. 세입자의 전세자금을 끌어모아 하는 투자, 남의 돈으로 하는 투자는 위험합니다. 혼자 망하는 건 차라리 나아요. 다른 사람까지 망하게 할 수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큰 부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긴 시간 동안 조금씩 부를 쌓아가세요. 빚을 내어 씨암탉을 사기 전에 우선 달걀부터 하나둘 모아야 합니다.

코로나가 터지고 ‘빚투’, ‘영끌’이라는 말이 유행했어요. 빚을 내어 투자하거나 영혼까지 끌어모아 빚을 지는 데에는 3가지 위험이 있어요. 

첫째, 시장을 모릅니다. 지금이 상승장인지 하락장인지 알 수가 없어요.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순환합니다. 오를 때가 있고 내릴 때가 있어요. 이걸 정확하게 맞추는 건 전문가들도 불가능합니다. 자본 시장은 무수하게 많은 인간의 탐욕이 작동하는 곳이거든요. 

둘째, 세상일을 모릅니다. 회사에서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을 믿고 10년 상환 계획으로 집을 샀는데, 갑자기 회사가 어려워져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 있어요. 빚이 없는 상태라면 명퇴금으로 버틸 수 있는데, 매달 꼬박꼬박 300만 원씩 주택 구입 자금을 상환해야 한다면 구조조정은 가정을 흔드는 재난이 됩니다. 

셋째, 사람 일을 모릅니다. 재개발을 바라보고 지역에 있는 낡은 아파트를 전세를 끼고 샀어요. 10년 정도 느긋하게 장기 투자를 한 건데,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어요. 직장 근처의 깔끔한 신혼집이 필요한데요. 이미 빚을 내어 투자한 상태라면 결혼 자금을 마련하기 어렵고요. 모처럼 찾아온 인연을 놓칠 수도 있어요. 

우리는 이렇게 시장도 모르고, 회사 일도 모르고, 나의 앞날도 몰라요. 이렇게 불확실한 세상에서 나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건 오직 저축뿐입니다. 종잣돈을 모아 투자했다면 하락장이 와도 멘탈은 무너지지 않아요. 회사에서 갑자기 잘려도 불안하지 않고요. 갑자기 큰일이 닥쳐도 대응 가능합니다. 

그냥 저축만 하는 것도 답은 아니에요. 자본주의는 빚으로 굴러가고요, 은행은 대출을 통해 통화량을 늘려갑니다. 시중에 풀린 돈의 양이 늘어만 가기에 돈의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집니다. 은행에 돈을 묶어두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적당히 돈이 모이면 자산을 사야 합니다. 인플레이션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해요. 자산을 구입할 때, 저축과 대출의 비율이 반반은 되어야 합니다. 1억짜리 물건을 살 때, 자기 자본 5천만 원에 대출금 5천만 원이라면 가격이 하락해도 부담이 적습니다. 부동산도, 주식도, 하락장에서는 한 번에 20~30%씩 빠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나만 손해를 보면 됩니다. 50%의 내 지분에서 손실이 발생하니까요. 시장이 다시 상승할 때까지 버티고 견딜 여력이 있어요. 만약 자기 자본 10%에 90% 빚을 내어 투자했다면? 그럼 내 자본은 다 날아가고요. 내게 돈을 빌려준 이들이 (은행이나 세입자) 손해를 보게 됩니다. 인생이 고달파집니다. 빚쟁이들은 상승장이 올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거든요.

저축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월급을 타서 쓰고 남은 돈을 저축하는 것과, 월급을 받으면 저축부터 하고 남은 돈으로 생활하는 것. 지출과 저축 중에서 저축이 먼저입니다. 소비는 쉬워요. 저금이 어렵지. 우리는 모두 부자가 되고 싶어 해요. 부자가 되기는 쉽지 않으니 부자처럼 보이는 데 최선을 다하기도 합니다. 돈이 생기면, 부자들을 따라 소비를 합니다. 언뜻 보기엔 돈을 잘 쓰니 부자처럼 보이지만 정작 모은 돈은 한 푼도 없이 할부에 빚만 가득한 가짜 부자가 됩니다. 돈이 생기면 저축을 먼저 해야 진짜 부자가 됩니다.

두 명의 김민식이 있다고 생각해봐요. 돈이 생기면 저축부터 먼저 하는 민식 A와 돈을 쓰고 남는 돈으로 저축하는 민식 B. 대학생 시절, 한 달 용돈이 50만 원이었는데요. 첫 직장에서 월급 200만 원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좋아요. 부자가 된 기분이지요. 민식 A는 100만 원을 먼저 저축하고 남은 100만 원으로 살아가요. 그래도 대학생 시절보다는 배로 잘 쓰는 거지요. 민식 B는 카드부터 만듭니다. 

직장인이 되면 은행에서 카드며 마이너스 통장이며 다 만들어줍니다. 200만 원 월급인데, 카드 지출과 마이너스 통장 이용까지 더하면 한 달에 쓸 수 있는 돈이 월급의 두 배 세 배가 됩니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지기도 하는데요. 괜찮아요. 민식 B에겐 보너스 달이 있어요. 보너스가 없는 달에는 카드빚이 늘고, 보너스가 나오면 갚습니다. 카드 돌려막기에, 리볼빙 대출에,  마이너스 통장까지 동원하면 펑크나지는 않아요. 어느새 마이너스 통장의 액수가 점점 늘어납니다. 괜찮아요. 민식 B에겐 연말 인센티브가 있어요. 그리고 연초가 되면 연차 보상 수당이 또 들어오고요. 그럴 때마다 빚을 탕감하면 됩니다.

민식 A는 매달 저축부터 하고 급여의 절반만 갖고 살아요. 보너스 달에 갑자기 월급 통장에 배로 돈이 들어오면? 이제 보너스는 전부 저축할 수 있게 됩니다. 연말 인센티브나 연차 수당이 들어올 때는 더욱 신이 납니다. 얼마 전부터 눈여겨 보아둔 동네 수협의 고금리 예금 상품에 가입할 수 있거든요. 갑자기 목돈 통장이 하나 더 늘어납니다.

민식 B는 어느 날 깨닫습니다. 카드 할부 이자와 마이너스 통장 이자만 모아도 꽤 큰돈이 되겠는걸? 그렇다고 지출을 당장 줄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할부로 산 자동차에 들어가는 돈도 크거든요. 처음 월급을 받았을 때는 무척 큰돈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쥐꼬리같은 월급이라 느껴집니다. 그래, 진짜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돈을 더 벌어야겠어! 미친 듯이 노력해서 직업을 바꿉니다.

통역사가 되고, MBC에 들어가고, 작가가 되었습니다. 인세며 강연료며 급여 외 소득이 늘었어요. 이제 민식 B가 저축을 시작할까요? 글쎄요, 아마 지출이 따라 늘었을 겁니다. 갑자기 드라마 피디가 되니, 촬영장에 연예인들이 타고 오는 외제 차가 눈에 들어옵니다. 술을 마셔도 소주나 맥주를 마실 게 아니라 한 병에 수십만 원하는 양주를 마시게 됩니다. 그래, 사회적 지위가 바뀌었으니 품위 유지 비용이 늘어나는 거야 당연하지. 새로운 취미가 생깁니다. 골프를 치고, 비싼 명품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민식 A는 어떨까요? 그의 취미 생활은 대학 시절과 변함이 없어요. 여전히 주말 오전에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오후에는 한강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가고, 저녁에는 블로그에 올릴 글을 씁니다.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강연을 다니며 급여 외 소득을 올립니다. 인생 이모작 준비에 시간을 투자합니다. 책을 쓰고 강연 준비를 하느라 돈을 쓸 시간은 없고요, 인세가 들어오면 새로운 예금 통장을 하나 더 만듭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서울에 아파트를 한 채를 마련합니다. 어느 날 깨달아요. ‘아, 나는 스무 살의 꿈을 이루었구나!’

갑자기 회사에서 구조조정안이 발표됩니다. 드라마 시장의 변화로 공중파 드라마 방송 편성수가 줄었어요. 공중파 광고 시장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쉰둘의 나이에 갑자기 퇴직하게 됩니다. 민식 B는 당황합니다. 아직 아파트 대출금이 많이 남았는데? 외제 차를 사고 남은 할부는 어떡하지? 퇴사하면 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부터 없앨 텐데? 퇴직금을 받아도 빚잔치를 하고 나면 남는 돈이 없습니다. 이대로 나갈 수 없습니다. 버텨야 해요.

민식 A는 명퇴 소식을 접하고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대학 시절부터 늘 꿈이 있었어요. 종일 도서관에 틀어박혀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는 꿈. 세계 일주를 떠나 여행자로 사는 꿈.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강연을 하고 유람을 다니는 삶. 이제 그 꿈을 이룰 기회가 찾아왔어요. 30년간 급여의 절반을 저축한 덕분에 경제적 자유를 얻었거든요.

민식 A와 B의 삶, 어디서 갈렸을까요? 1992년 첫 월급을 받고 다음 날 은행에 달려가 적금 통장을 만든 순간 갈렸어요. 진짜 부자와 가짜 부자의 삶은 20대에 나뉘거든요. 모쪼록 소비보다 저축을 우선하는 진짜 부자로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짠돌이의 경제 공부,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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