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복수란 무엇인가

저의 독서 습관 중 하나는 전작 읽기입니다.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그의 모든 책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읽습니다. 때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데뷔작에서 끝이 나기도 하고요. 데뷔작부터 읽은 작가는 다음 책이 나올 때마다 찾아 읽기도 합니다. 새 책이 나오길 기다리는 작가 중 염기원 작가님이 있어요. 다음 책이 언제 나올까 궁금한 마음에 염 작가님의 사회적 관계망을 염탐하는데요. 드디어 소식이 올라왔어요. 텀블벅에서 새 책 후원하기 프로젝트를 한다고요. 사전 구매로 작가님의 친필 싸인이 들어간 크리스마스 카드까지 받을 수 있는 기회! 바로 신청했고요. 책을 받아 읽었어요.

<여고생 챔프 아서왕> (염기원 / 문학세계사) 

소설의 주인공 왕서아는 중학교 시절, 살을 빼려고 복싱을 시작합니다. 그러다 운동의 즐거움에 빠져들어요. 복싱은 체중을 줄일수록 유리한 시합이라 자기 관리가 필수지요. 식단 관리에 체력 훈련을 하며 여고생 아마추어 챔피언에 등극합니다. 

서아와 어머니는 비닐하우스에서 사는데요. 어릴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던 서아는 복싱을 통해 건강을 되찾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점점 더 아픈 곳이 많아져 결국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어느 날, 양복을 입은 낯선 남자가 서아를 찾아옵니다. 서아에게 오천만 원을 주며 비밀 거래를 제안합니다. 어머니의 항암 치료비를 대주는 대신, 자신의 딸이 저지른 폭력 사건에 대해 자수해달라고요.

서아는 경찰서에 가서 거짓 자수를 하고요. 어머니의 수술을 기다리는데요. 병원에 입원한 폭행 사건의 피해자가 사망하면서 갑자기 폭행치사로 혐의가 바뀝니다. 순식간에 살인범이 되어 구치소에 갇히게 된 여고생 챔프 왕서아, 과연 그는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까요?

흔히들 교도소에 가는 걸 범죄자들 은어로 학교에 간다고 합니다. 교도소는 나쁜 공부를 하기 좋은 곳이라고요. 하지만 왕서아에게 교도소는 다른 의미에서 학교입니다.

‘내게 교도소가 학교일 수 있는 이유는 감사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으니 비닐하우스에 불과한 집도, 지루했던 수학 시간도, 숨이 끊어질 것 같아 괴로웠던 복싱 훈련도, 내게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127쪽)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자산은 자유입니다. 다만 자유의 소중함을 우리는 평소에 깨닫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 자유를 잃어버린 후에야 아주 작고 단순한 것들이 주는 즐거움이 얼마나 크고 귀한 것인지 알 수 있지요. 신체의 자유를 잃는 두 가지 경로가 있어요. 하나는 교도소에 가는 것이고요, 또 하나는 병원에 가는 겁니다. 몸이 아파도 자유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결국 자유 못지않게 소중한 건 건강입니다. 건강을 지키는 노력이 필요해요. 

평범한 고교생으로 살던 주인공이 어느 날, 잘못된 선택을 받아들임으로써 교도소에 갇힙니다. 삶의 자유를 잃는다는 것은 삶의 모든 순간을 빼앗긴다는 뜻이지요. 이제 자신을 음모에 빠뜨린 악당에게 어떻게 복수를 해야 할까요?

교도소란 공간은 복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사적인 복수를 행하고 교도소에 갇힌 사람이 많거든요.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발한 탓에 폭력 전과를 안고 갇힙니다. 어쩌면 교도소란 공간 자체가 복수를 대행하는 곳입니다. 잘못을 저지른 개인에게 사적인 복수를 허용하지 않는 대신 국가가 대신해서 공적인 복수를 하는 거죠.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형식으로.

자, 그렇다면 최고의 복수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복수는 그냥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복수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하루하루 재미나게 최선을 다해 살 거예요.. 상대를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사는 삶은, 그 미운 상대에게 귀한 내 인생을 갖다 바치는 일이거든요. 나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어요. 상대를 미워할 것인가, 나를 더 사랑할 것인가? 저는 후자를 선택합니다.

과연 왕서아의 복수는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그 결말은 책에서 확인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 소설, 정말 재미있고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줍니다.

염기원 작가님은 책 끝에 이런 글을 남기셨어요.

‘내 글을 믿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다. 불안과 우울이 나를 삼키려 할 때마다 나는 늘 호수공원을 달렸다. 온몸이 땀에 젖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고통스러울 때까지 달렸다. 그러면 다시 글을 쓸 힘이 생겼다. 신해철이 만든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노래를 들으며 달린 적이 많았다. 
소년 시절부터 신해철의 음악을 좋아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신해철이라는 사람을 좋아했다. 그의 묘비에는 내가 보석처럼 생각하는 노래의 가사가 새겨져 있다.
“약속, 헌신, 운명, 영원, 그리고 사랑. 이 낱말들을 난 아직 믿습니다. 영원히.”

(252쪽)

<여고생 챔프 아서왕>을 읽고 염기원 작가님의 소설을 읽는 데 제 삶을 헌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년에 몇 권씩 새로운 소설을 내주시는 미친 필력의 작가를 만나는 건 책벌레로서는 감사한 운명이니까요.

재미난 소설 써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