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마 기자의 삶을 다룬 다큐가 나옵니다. 지난 여름, 제작팀에서 연락이 왔어요. 고인의 삶에 대해 인터뷰를 해달라고요. 문득 난감했어요. '이용마 기자가 떠난 후, 나의 삶은 어떠한가?' 세상을 떠난 친구에게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회사를 떠나 칩거중이라고 촬영을 피하고 도망다녔어요. 담당 피디의 전화를 피했더니, 문자가 왔어요.
'^^
아이고 형님, 형하고 나하고 무슨 원수도 아닌데
못할 말이 어디 있어요. 통화 좀 합시다요~~~'
내가 기억하는 이용마 기자의 삶에 대해 말해달라는 후배의 요청을 끝끝내 떨칠 수 없었어요. 결국 촬영에 응했지만, 살아남은 자로서 부끄러운 마음 한가득입니다.
피디가 물었어요.
"이용마에 대한 김민식님의 생각이 점점 바뀐 게 있다면 어떤 것인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처음 저는 이용마와 의견이 맞지 않았어요. 우리는 각각 의미와 재미를 좇습니다. 이용마는 일에 있어 의미를 중시하고요. 저는 재미나게 일하는 걸 중시합니다.
좋아하는 대본, 배우, 스태프들을 모아 즐겁게 일하는 게 피디로서 저의 목표입니다. 반면, 이용마는 항상 의미를 중시했지요. 공영방송의 의미. 노동조합의 의미. 우리 사회 언론의 역할. 제가 소소한 일상의 재미를 중시할 때, 이용마는 항상 사회라는 공동체에 대한 의미를 고민했어요.
노조 회의 시간, 이용마가 파업을 주장할 때 저는 반대했어요. 뉴스가 망가졌는데 왜 예능과 드라마 피디가 일을 접어야 하나. 평소에 기자들이 일을 더 치열하게 하면 되지 않나. 데스크의 부당한 지시가 있을 때마다 언론인으로서 자부심과 사명감을 갖고 싸우면 되지 않나? 일상의 공간에서 싸워야지, 굳이 총파업이라는 전체의 희생을 강요해야 하나? 예능과 드라마 피디로 일하며 저는,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드리는 게 공익이라고 믿었어요. 그래서 파업하기 싫었어요.
이용마가 그랬어요. 약자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언론이 망가지면, 약자를 대변할 사람이 사라진다. 조직 속에서 기자 한 사람 한 사람은 약자다. 개개인이 싸우기는 쉽지 않다. 기자가 자신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함께 싸워주는 동료가 필요하다. 노동조합이란 무엇인가. 약한 개인이 하나로 뭉쳐 권력에 맞서 싸우는 게 노동조합의 취지 아닌가. 제작 거부를 결정한 기자들이 회사에서 징계를 당하고, 해고를 당할 때, 피디나 다른 사람들이 외면한다면, 노동조합의 역할은 과연 무엇인가.
그의 말에 저는 설득되었죠. 딴따라에 불과했던 제가 파업에 동참한 이유입니다. 이용마가 말하는 파업의 의미를 대중에게 더 재미나게 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MBC 파업을 재미난 콘텐츠로 풀어낸 게 2012년에 만든 'MBC 프리덤'이고 2017년의 페이스북 라이브이죠.
싸우다 힘들 땐, 항상 용마에게 물어봤어요. 싸우는 이가 흔들리는 건 명분을 고민하기 때문이에요. 그때마다 용마는 싸움의 의미를 정확하게 짚어줬어요. 친구가 떠난 후, 이제는 물어볼 사람이 없네요. 삶이 힘든 순간, 문득 물어보고 싶어요.
'이렇게 힘들게 버티는 것도 의미가 있을까?'
삶의 의미를 고민한 친구의 마지막 리포트가 이번주 목요일에 방송됩니다.
12월 2일 목요일 밤 10시 50분
MBC 창사 6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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