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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영어 단어 속 재미난 이야기들

by 김민식pd 2020. 11. 4.

영어 공부를 하라고 하면,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배워야 해서 힘들다고 하소연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건 우리가 학창 시절에 영어로 시험을 보던 시절 공부법이에요. 객관식 시험 문제로 영어 단어의 철자나 발음 기호를 물으니까 스트레스였지요. 성인이 되어 취미 삼아 하는 공부는 힘들지 않아요. 즐거운 영어 공부를 도와드릴 책 한 권 소개합니다. 

<걸어 다니는 어원사전> (마크 포사이스 / 홍한결 / 윌북)

영어 단어 교재인 줄 알고 펼쳤다가 배를 잡고 웃었어요. 우리가 흔히 쓰는 영어 단어의 어원을 소개하는데요. 일단 저자가 무척 유쾌해요. 학교 다닐 때, 이런 영어 선생님을 만났다면, 수업 시간이 무척 즐거웠을 것 같아요. 책을 펼치면 맨 처음 나오는 목차부터 빵빵 터집니다. 수지맞은 도박업자, 노예의 인사, 성스러운 팬티? 성서 속의 고환. 아니, 성…서..속..의.. 고환? (The Old and New Testicle) 성서 속의 ‘고환’이라니, ‘고환’ 니가 왜 여기서 나와? 성서와 고환, 이게 무슨 조합이죠? 어떻게 ‘성서’와 ‘고환’이 하나의 문장으로 엮일 수 있을까요?

고환은 영어로 testicle입니다. 성서의 구약과 신약을 가리키는 Testament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성서는 ‘하느님의 진리를 증명하는 (testify to God’s truth)’ 것이라서 testament가 되었어요. 그 어원은 ‘증인’을 뜻하는 라틴어 testis입니다. testis에서 유래한 영어 단어는 많습니다. 예를 들어 protest(무언가를 위해 증언하다→항의하다), detest(무언가에 반대하는 증언을 하다→혐오하다), contest(경쟁적으로 증언하다→경쟁하다), 그리고 testicle이 있습니다. testicle이 거기 왜 들어가냐고요? 그것이야말로 남성성을 testify, 즉 ‘증명하는’ 물건이니까요! 예전에 왕이 거주하는 궁궐 공간에 남자는 왕 혼자였어요. 왕보다 잘 난 남자가 있으면 안 되니까 거세를 하고 내시가 되어 입궐하지요. 혹시라도 왕이 질투를 하면 바로 바지를 걷어 증명합니다. ‘저 남자 아닌데요?’ 네, 남성을 증명하는 물건이 testeicle인 거죠.


 
일상에서 자주 쓰는 영어의 어원들이 가득 담겨있는 책이에요. 매일매일 한 챕터 씩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영어 단어를 외울 수 있게 되고, 인문학적 지식도 쌓을 수 있어요. 우리가 커피숍에서 자주 마시는 ‘아메리카노’는 이탈리아어입니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이탈리아가 1943년에 항복하였을 때 로마에 미군 병사들이 입성했어요. 그들이 이탈리아식 커피인 에스프레소를 마셨을 때 너무 써서 물을 타서 마셨대요. 그래서 이탈리아 사람들이 물을 탄 커피를 미국인을 뜻하는 아메리카노라 불렀지요. 

아메리카노가 ‘아메리카’에서 왔다면 아메리카라는 단어는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어원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원래 신대륙을 발견한 건 콜럼버스였죠. 하지만 콜럼버스는 자신이 발견한 게 인도인 줄 알았어요. 이탈리아 피렌체의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신대륙 탐험을 다녀왔고요. 돌아와서 여행기를 몇 권의 책자로 남겼습니다. 라틴어로 쓴 책자여서 저자명을 ’Amerigo’ 대신 라틴어식으로 ‘Americus’라고 적었습니다. 

'그중 한 권이 마르틴 발트제뮐러라는 지도 제작자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세계 지도를 만들면서 신대륙에 Americus라고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대륙 이름이 ‘-us’로 끝나는 건 이상했습니다. Africa, Asia, Europa는 모두 여성형인 ‘-a’ 형태였거든요. 그래서 America라고 하기로 했습니다.‘
(202쪽)

그게 아메리카노의 시작이죠. 프랑스 작가 발자크는 커피를 예찬하며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커피가 뱃속에 들어가는 순간, 전면적인 소동이 일어난다. 아이디어가 전쟁터의 대육군 대대들처럼 움직이기 시작하고, 전투가 벌어진다. (...) 직유가 떠오르고, 종이가 잉크로 빼곡해진다. 전투의 시작과 끝이 화약이듯 이 몸부림의 시작과 끝은 쏟아지는 검은 물이니.”
(257쪽)

이탈리아에 간 미군 병사들은 왜 커피에 물을 타 마셨을까요? 이탈리아에서는 에스프레소로 마셨거든요. 

‘espresso는 이탈리아어로, 기계에 곱게 간 커피 가루를 채워놓고 증기를 투과시켜 ‘짜낸(pressed out)’ 커피입니다(es가 out의 뜻입니다). 젖소에서 젖을 ‘짜낸다’거나 종기에서 고름을 ‘짜낸다’고 할 때 쓰는 영어의 express도 똑같은 어원입니다. 머릿속 생각을 입을 통해 밖으로 짜내는 것도 express이니 ‘표현하다’라는 뜻도 갖게 되었습니다.’
(258쪽)

뭐든지 표현하면 명확해지죠. 목적을 표현하다, 소망을 표하다, express purpose, express wish라고 합니다. 정확하게 명시한 거죠. 옛날에 편지를 보낼 때는 우편배달부가 동네마다 돌아다니며 수거하고, 모아서 보내고, 다시 방방곡곡 다니며 배달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간도 오래 걸리고 분실되기도 했죠. 어떤 편지를 보낼 때, 배달부 딱 한 사람을 명시해서 보내면, 훨씬 빠르고 정확하겠죠. 그렇게 보내는 메일을 express mail, 즉 배달부 한 명을 전용으로 쓰는 속달우편이 되었고요. 기차도 모든 역을 서는 대신, 특정 목적지 ‘전용’ 열차를 타면 훨씬 빨라지죠. 그것이 express train입니다.

영어 단어, 힘들게 외우는 것보다 재미난 수다에 귀기울이는 기분으로 책을 읽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도 즐겁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단어 공부도 즐거워요.

늘 공부하는 즐거움과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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